슬픔을 숨기자, 순교자들의 빛이 남았다

[arte] 배세연의 스페이스 오디세이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2019년 6월에 개관하여 그 해 서울시 건축상을 수상하였고, 이 공간에 대한 좋은 글이 여러 매체에 많이 게재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나까지 무언가를 더할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이곳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학생들과의 대화에 있다. 학생들에게 요즘 어디에 놀러 다녀왔는지, 어디가 좋았는지 물어보면 절반 정도는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이라고 대답한다. 그래서 무엇이 좋았냐고 물어보면 감동 가득한 눈빛으로 ‘공간이 좋았다’고 대답한다. 그래서 또 그 공간이 무엇을 기념하는 곳인지 아느냐고 물어보면 대다수는 ‘정확히 모른다’고 대답한다. 왜 그럴까.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성지로, 과거 잔혹했던 박해 속에 순교당한 천주교인들을 기념하는 곳이다. 본 글은 이 ‘기념’에 초점을 맞추어 해당 공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돌을 쌓아 무언가를 기억하는 것은 인간만이 하는 일이다. 기념형식으로 지칭되는 이것은 시대마다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고, 현대에는 미니멀리즘이 이 형식을 지배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대 기념형식을 결정지은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 911 메모리얼, 베를린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이러한 형식에 대한 비판 의견은, 모든 것을 너무 추상화한 형식이 어떻게 기억을 전달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올바른 정보 없이는 올바른 기억도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추상성은 과거를 기억하는 공간들이 현대인들에게 다가가기 위한 하나의 접근방식이다. 누구나 선입견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단순한 조형성은 더 이상 현대인과 상관없는 과거에 이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하려는 목적을 갖는다. 또한 이는 특정 계급에 종속되거나 그들을 위하지 않는 민주적인 디자인으로 잊혀진 개인들을 기념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다만 직접적인 상징성이 부족한 이유로 정보전달의 기능이 떨어지는 문제는 있다.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은 전체적으로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며 모든 공간이 전시에 매몰되어 천주교의 수난사를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곳은 길게 나있는 길을 걷게 하고 공간 자체의 공간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경험을 제공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공간이 좋았다고 기억하게 된다. 박물관을 구성하는 각각의 공간에 기념을 위한 의미는 분명히 있으나 이곳에 들어오기 전까지 서울 한복판의 풍경을 보고 온 사람들에게는 복잡한 도심 속에서 다른 감각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임이 더 크게 와닿는 듯하다.
이 중 사람들이 특히 좋았다고 이야기하는 곳은 지하 3층의 하늘광장과 콘솔레이션 홀이다. 18m 높이의 공간이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하늘광장은 네 면의 벽과 바닥까지 모두 적벽돌이 촘촘하게 쌓여있는, 무게감이 확실한 공간이다. 붉은 공간 속에서 하늘만을 보고 있자면 고요함이 깃든 엄숙함에 에워싸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하늘광장의 맞은편에는 어둡고 거대한 매스가 바닥에서 2m 떠있는데, 이 매스를 머리 위에 두고 내부로 들어서면 3개 층 높이의 거대공간이 나타난다. 콘솔레이션 홀인 이곳에서는 공중에 떠있는 벽에 흘러다니는 영상으로 인해 마치 다른 세상에 들어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또한 어두운 공간의 중앙에서 떨어지는 한 줄기 빛만이 공간을 밝혀 신성함과 엄숙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학생들이 감격에 마지않는 눈빛으로 이야기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현대 기념공간들이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택하는 또 다른 방법은 공원과의 연계이다. 지하에 위치한 이 박물관 또한 지상의 공원에서 접근할 수 있으며 박물관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공원까지 연계되기도 하여 사람들이 큰 결심을 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접근할 수 있다. 이 공원은 일상의 공간과 과거의 공간, 다른 두 세계를 유연하게 연계해주는 매개공간이기도 하다.

이러한 현대의 기념공간을 제대로 경험하기 위해서는 사실 관람객의 역할이 중요하다. 공간에서 느낀 것을 단순히 ‘좋았다’라는 감상으로 끝내지 않고 그 좋음이 의미하는게 무엇인지 궁금해 하고, 정보를 찾아보고, 각자의 방식으로 해석해보는 일이 필요하다. 이는 특정 주체가 선별한 역사에 기대는 것이 아닌,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역사를 세워보는 일이다. 그것이 현대인들이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이어야 하고 현대의 기념공간들이 지지하고 있는 방식인 것이다.

공간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콘솔레이션 홀에 떨어지는 빛은 성인들의 유해함을 밝히고 있고 하늘광장의 조형물들은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을 상징하고 있다. 우리가 보고, 좋다고 느끼는 그 곳에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대상들이 정확하게 있다. 과거를 기념하는 공간이 중요한 이유는 과거를 잊지 않고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함이다.너무 뻔한 말이지만 너무 중요한 말이기도 하다. 나의 학생들이,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기억해야 하는 것을 정확하게 인지하고 공간을 통해 무엇을 알게 되었는지 스스로 생각해봄으로써 과거의 기억을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