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하나의 중국' 원칙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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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 중소기업부장지난달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주한중국대사관저를 찾은 자리에서 “대한민국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싱하이밍 주한중국대사의 ‘중국이 패배하는 쪽에 베팅하면 한국은 후회할 것’이라는 폭언에 묻혔지만, 국제 외교 무대에선 싱하이밍의 무례보다 이 대표의 발언이 더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한국 정부는 단 한순간도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원칙'과 '정책'은 천지 차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지한다는 것은 좁게 해석하면 정치적 실체로서 대만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부인한다는 것이고, 넓게 바라보면 신장위구르와 티베트, 홍콩 등지에서 불거지는 인권 탄압을 묵인하겠다는 얘기와 다름없다.일제 식민 지배의 아픔을 겪은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자유와 인권 보장, 평화로운 교류와 협력 확대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중시하는 민주사회의 일원이라면 섣불리 뱉을 수 없는 말이다.한국 정부는 중국이 ‘하나의 중국’을 주장하는 것을 ‘알고 있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밝혀왔을 뿐이다. 한국이 발신하는 외교 수사에는 줄곧 ‘원칙’이 빠진 ‘하나의 중국’이라는 문구만 거론됐다. 한·중 수교 공동성명에서 “오직 하나의 중국만이 있고 대만은 중국의 일부분이라는 중국의 입장을 존중한다”고 명시된 게 대표적이다. 최영삼 외교부 차관보도 최근 중국을 방문해 “한국의 ‘하나의 중국’ 존중 입장은 1992년 수교 이후 변함없이 견지돼 왔다”고 확인했다.
한국 정부는 ‘하나의 중국’과 관련해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해왔다. 이런 모호성은 미국, 일본과 유럽 주요국 등 서방세계가 보조를 같이해온 것이기도 하다. 서방 국가 대다수는 하나의 중국 ‘원칙(principle)’이 아니라 하나의 중국 ‘정책(policy)’을 택했다.1972년 미국은 중국과 수교를 위해 발표한 공동 코뮈니케에서 중국의 ‘하나의 중국’ 주장을 ‘인지한다(acknowledge)’고 밝혔다. 동시에 대만과는 비공식 관계를 유지하며 대만에 대한 중국의 주권(sovereignty)을 인정(recognize)하지 않는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일본과 영국, 캐나다는 중국의 대만 영토 주장을 ‘이해하고 존중한다’고 표현했을 뿐이다. 호주는 “대만에 대한 중국의 주장을 지지하지도 않고 반대하지도 않는다”고 못 박기까지 했다. 명시적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에 동조하는 나라는 감비아, 남아프리카공화국, 파나마 등 소수에 불과하다.
'망언 제조기'로 불려서야
‘외교의 언어’는 세심하게 읽고, 신중하게 발화돼야 한다. 이 대표는 이미 대선 기간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두고 “초보 정치인이 대통령이 돼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을 공언하고 러시아를 자극하는 바람에 결국 충돌했다”고 실언을 해 우크라이나 국민 가슴에 못을 박은 전력이 있다. 이번 ‘하나의 중국 원칙 적극 지지’ 발언은 대만 국민에겐 큰 모욕이 되는 ‘망언’으로 여겨졌을 것이다.‘원칙’과 ‘정책’을 구별하지 못하고, ‘존중’과 ‘적극적 지지’의 간극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외교 정책에 영향을 끼치는 공적 인물로서 자격이 없다. 정확히 모르는 사안에는 차라리 입을 닫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