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 김기찬, 이명래 고약의 동네 [성문 밖 첫 동네, 중림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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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연재를 시작하며
사진=한이수
나는 30여 년간 중림동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그런데 서울 사람들은 중림동을 잘 모른다. 어디지? 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다 2호선 충정로역 근처라 하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인다. 충정로역 4번 출구를 나와 오른쪽으로 한 번 꺾으면 나타나는 곳, 한국경제신문사이다. 나의 20대, 30대, 40대, 50대의 모든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2호선 충정로역이 있는 곳, 중림동. 그러나 5호선이 통과하는 지역은 충정로 3가에 있다. 충정로역은 2호선과 5호선이 교차하는 역이라서 이 일대에 넓게 포진해 있다.

이 칼럼의 대부분은 충정로역이 점유한 중림동과 충정로 일대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전철이 들어오기 전의 모습은 땡땡거리며 지나가는 기차에 그 이야기의 조각이나마 물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땡땡거리며 지나간다고 해서 붙여진 땡땡 사거리. 스치며 지나가는 기차. 차단기 앞에 선 차들은 열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정차해 있다.서울역을 지나서 수색을 통과하여 한때는 신의주까지 갔다는 경의선 철도가 부설된 지 100년이 흘렀지만, 이 일대의 풍광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리 크게 변하지 않았다. 철길이 서울을 동서로 갈랐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서울로 7017'에서 이 일대를 둘러보면 서울은 동과 서로 나뉜 것을 알 수 있다. 철길의 동쪽은 많은 고층빌딩이 들어섰다. 서쪽은 상대적으로 발전이 덜 된 곳이다. 동쪽에 중요한 시설들이 포진하여 철길의 서쪽은 상대적으로 낙후하게 보인다. 우리나라의 지형처럼 동고서저의 형태이다. 서쪽의 중심을 차지하는 곳이 중림동이다. 중림동을 통과하는 이 기차의 종착지는 신의주였다. 신의주에서 기차를 갈아타고 단둥을 지나서 수많은 사람이 만주로 갔고 더러는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유럽까지 갔다. 서울역 다음의 경의선 역은 지금은 없어진 서소문 역이다. 시인 윤동주는 서소문 역 근처 합동에서 살았다. 서소문 역에서 몇 정거장이면 신촌역이고 거기서 내려 연희전문에 등교했다. 그보다 10년 남짓 앞선 1936년 8월, 이 기차를 타고 올림픽의 영웅 손기정은 신의주에서 내려 열차를 갈아타고 베를린에서 세계를 제패했다. 1919년 3.1운동의 만세부대는 땡땡 사거리를 지나 프랑스 공사관에 가서 공사의 면담을 요구했다. 그들은 왜 프랑스공사관을 가야만 했는가?

조선시대에 이 일대는 최고의 민간 시장인 칠패시장이 있었다. 정약용은 이 일대가 수레와 사람들이 너무도 많아서 서로 어깨를 치지 않으면 다닐 수 없는 동네라 했다. 숭례문과 서소문, 서대문을 둘러싼 한양도성의 바깥, 첫 동네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 칼럼의 제목을 '성문 밖, 첫 동네'라고 했다. 물론 다루는 곳은 중림동을 중심으로 행정구역을 조금씩 넘어가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가려고 한다. 서울역과 염천교가 있는 봉래동의 서쪽이다. 만리동의 동쪽, 충정로의 남쪽이다.

땡땡 사거리 차단기에 서서 일대를 돌아보면 서소문아파트, 서소문 역사공원, 약현성당, 한국경제신문사가 보인다. 서울 다른 곳에 비해서 개발이 덜 된 곳, 그러다 보니 많은 역사의 흔적들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이야기들이 숨죽이고 바깥세상에 나올 날만을 기다린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이 동네 이야기의 보따리를 풀어보자. 복개된 만초천 위에 세워진 서소문아파트가 없어지기 전에.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인 충정 아파트 지하에서 있었던 양민 학살의 이야기도 알아야 한다. 충정로 일대를 수십 년간 작은 카메라 하나 메고 돌아다니면서 중림동의 골목을 누볐던 김기찬 화백처럼 나는 스마트폰 하나 들고 이 일대를 누비려고 한다. 그나마 골목길의 흔적이라도 남아있을 때, 지금이 적기이다. 중림종합사회복지관 앞의 허름한 한옥 터가 정말 이완용이 살았던 곳인지 알아볼 요량이다. 이명래 선생의 고약 집 흔적이 사라지기 전에 이 일대를 스토리로 복원하여야 한다. 만초천의 복개된 도로와 철길을 건너며 다 쓰러져 가는 붉은 벽돌집이 정말로 중림동에 있었다는 고무신공장이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정말 소설가 조세희가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의 주 배경이 이곳이었는지…너무도 시간이 없다. 시대의 흔적은 이제 희미해져 가는데, 그 위로 고층빌딩이 들어서면 아마도 돌덩이로 만든 표석조차 세울 가치가 없는 서민들의 이야기라도, 성문 밖 첫 동네는 너무도 많은 스토리가 산재해 있다. 역사적 지평이 다 평평한 아파트의 화단으로 바뀌기 전에 한 번 나서보기로 했다. 여러분이 동행해 주기를 바란다.

<한경닷컴 The Lifeist> 한이수 엔에프컨소시엄에이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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