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30번, 불멸의 연인을 향한 無言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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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임성우의 클래식을 변호하다
베토벤의 마지막 세 개의 피아노 소나타는 아시다시피 베토벤이 거의 같은 시기에 작곡을 진행한 작품들로서, (그와 비슷한 과정을 거쳐 작곡된 모차르트의 마지막 세 개의 교향곡, 슈베르트의 마지막 세 개의 피아노 소나타 등과 같이) 작품들을 관통하는 어떤 공통적 정서가 느껴집니다.
즉, 그의 세 개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의 경우 (베토벤의 여느 작품에서 느끼기 어려운) 독특한 서정적 분위기가 공통적으로 감지되는데, 이는 세 작품들이 모두 그의 소위 '불멸의 연인'과 관계가 있다는 점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이 작품과 '불멸의 연인'과의 관계에 대하여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기에 앞서, 우선 이 곡의 구성 및 태동 과정을 간략히 살펴보기로 하지요.
작품의 태동 과정과 구성
아시다시피 이 곡은 (월광 소나타와 비슷하게) 전 3악장 가운데 상대적으로 1악장과 2악장이 간소한데, 그러한 구성상의 특수성이 이 곡의 경우는 해당 작품이 태동하게 된 과정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베토벤은 하머클라비어 소나타를 작곡한 이후 한 동안 장엄미사, 합창 교향곡 등의 작업에 몰두하느라 피아노 소나타를 더 이상 작곡하지 않고 있었는데, 1820년에 출판업자 슐레징거로부터 새로운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해달라는 요청을 받습니다.당시 베토벤은 피아노 교습을 준비하던 친구 슈타르케(Friedrich Strake)의 부탁을 받고 짧은 피아노 작품을 써준 적이 있는데, 베토벤의 또 다른 지인인 올리바(Franz Oliva)는 새로운 피아노 소나타 작곡을 의뢰받은 베토벤에게 바로 그 작품을 새로운 피아노 소타나의 일부로 사용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합니다. 베토벤은 그러한 제안이 좋아보였는지 이를 받아들였고, 그 대신 슈타르케에게는 다른 소품인 바가텔(Op.119의 마지막 5개 작품)을 선물합니다.
그 후 베토벤은 기존에 작곡되었던 위의 작품을 1악장으로 하고, 거기다가 나머지 2악장과 3악장을 추가로 작곡하여 전체 곡을 완성하기에 이르는데,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중에 악장별로 살펴보겠지만, 거시적인 관점에서 곡의 통일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1악장에서 사용한 동기가'불멸의 연인'과의 관계나머지 악장에 채용되는 등 베토벤이 나름대로 노력한 흔적은 보이지만) 1악장은 그 후에 추가로 작곡된 나머지 두 개의 악장과는 약간 이질적인 느낌이 드는 것은 어찌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곡의 구성과 관련하여 중요한 것은, 이 작품의 무게중심이 3악장에 쏠려 있다는 점과 (베토벤의 소나타로서는 매우 특이하게도) 그 3악장이 변주곡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이라고 하겠습니다.물론 교향곡 제3번('영웅')과 같이 베토벤이 작품의 마지막 악장에 변주곡을 배치한 선례가 전혀 없지는 않지만, 피아노 소나타 작품의 경우에는 이는 전례 없는 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이처럼 변주를 마지막 악장으로 하는 패턴은 베토벤의 마지막 32번 소나타의 아리에타에도 다시 채택되지요.
이처럼 베토벤이 노년에 이르러 피아노 소나타 곡을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위와 같이 변주곡 양식을 택한 것은 주목할 만한 점인데, 이는 변주곡에 대한 노 작곡가의 어떤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겠지만, 은밀한 개인적 감정이나 정서를 곡에 보다 분명히 담아내는 데에는 (어떠한 형식이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자유롭게 악상을 펼칠 수 있는) 변주곡보다 더 나은 양식을 찾기 어려워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 베토벤이 이 피아노 소나타 30번의 종악장의 변주를 통해 담아내고자 했던 것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요?
'불멸의 연인'과의 관계
이 변주곡에서 느껴지는 매우 서정적이고 센티멘탈한 감정으로 인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본능적으로 이 곡이 '불멸의 연인'과 모종의 관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합니다. 다만 이는 어디까지나 심증일 뿐 그 밖에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어떤 물증이 있는 것일까요?이와 관련하여 자주 간과되는 점은 이 곡의 3악장 변주의 음악적 소재가 베토벤의 가곡 '멀리 있는 연인에게'로부터 차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아래 3악장 변주곡의 주제 후반부 선율(아래 피아노 소나타 30번 동영상 7:08 이하 부분)과 가곡 '멀리 있는 연인에게'의 1절 중 'Und ein liebend Herz erreichet' 부분의 선율(아래 가곡 동영상 2:28 이하 부분)을 비교하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위와 같은 음악적 동기는 사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피아노 소나타 발트슈타인의 2악장으로 작곡되었다가 요제피네에게 몰래 헌정된 안단테 파보리와 연결되는데, 이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이전의 글 ‘불멸의 연인을 다시 생각하다’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베토벤의 가곡 '멀리있는 연인에게'는 그 제목 자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연인에 대한 사모의 감정을 노래한 가곡입니다. 베토벤은 오래전에 연인에 대한 사모의 감정을 노래할 때 사용한 선율을 위와 같이 이 피아노 소타나 30번의 가장 중요한 변주곡의 주제에 차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베토벤이 남긴 3악장 변주의 주제 스케치를 보면 원래 아예 '멀리있는 연인에게'의 한 소절을 고스란히 쓰려고 했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는데, 이 역시 두 작품의 연관성을 매우 명확히 나타내주는 내용입니다.
이 뿐만 아니라 사실 베토벤이 이 피아노 소나타를 작곡할 때 위의 '멀리있는 연인에게'를 참조하고 그로부터 차용한 음형이나 음악적 아이디어는 밤을 세워 이야기해도 모자랄 정도로 많습니다만, 이해하기 쉽게 단적으로 설명드리자면, 이 피아노 소나타 30번의 3악장의 6개의 변주와 그에 대응되는 가곡 '멀리있는 연인에게'의 6개의 곡들은 각각 그 빠르기 표기나 박자까지 거의 일치합니다.
이러한 모든 사정들은 작곡가가 (그것이 위 가곡을 지을 당시에 베토벤이 염두에 둔 대상으로 알려진 안토니 브랜타노는 꼭히 아니라고 하더라도 최소한) 어떤 연인에 대한 사모의 감정을 이 피아노 소나타에 담아내려고 하였다는 것에 대한 중요한 물적 증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노년의 베토벤이 자신의 피아노 소나타 작품에 담을 정도로 그가 흠모한 연인은 누구일까요? 이는 아무래도 그가 남긴 편지에서 언급된 소위 '불멸의 연인'과 부득이 연결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베토벤의 '불멸의 연인'이 누구인지에 대하여는 이미 다른 글에서 잠깐 이야기 나눈 것처럼 다양한 주장이 존재합니다.
우선, 유력한 후보로는 베토벤의 후원자이자 친구였던 프란츠 브렌타노(Franz Brentano)의 부인이었던 안토니 브렌타노(Antonie Brentano)를 들 수 있습니다. 실제로 베토벤은 그의 피아노 소나타 30번을 안토니 브렌타노의 딸에게 헌정을 했고, 그 후 디아벨리 변주곡은 아예 직접 안토니 브렌타노에게 헌정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와 달리 불멸의 연인이 헝가리 백작 부인 안나 브룬스비크(Anna Brunswick)의 딸로서 베토벤이 피아노를 가르친 요제피네 브룬스비크(Josephine Brunswick)라는 주장도 만만치 않게 주장되고 있고, 특히 요세피네 브룬스비크는 베토벤의 아이를 낳은 여인으로 주장되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 더 신빙성이 있는지는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사실이야 어떠하든 분명한 것은 베토벤이 열렬한 사랑의 편지를 남긴 불멸의 연인이 분명히 존재했었고 그들의 사랑은 불행하게도 이생에서 부부의 연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이 피아노 소나타 30번의 마지막 악장의 경우, 위와 같이 작곡가가 아예 주제 선택 자체를 통하여 이 곡에 담긴 서정적이고 센티멘탈하고 나아가 애절한 감정이 어떤 연인을 향한 것임을 다소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따라서, 굳이 피아노 소나타와 같은 이른바 '절대음악'에 접근할 때, 반드시 그 곡의 의미나 표현하고자 하는 정서 등을 '표제적'으로 분석할 필요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이 곡을 듣고 이야기할 때 그의 '불멸의 연인'에 대한 애절한 사랑과 연관시켜 파악하는 것은 어찌보면 불가피하고도 자연스런 귀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러한 기본적인 이해를 바탕으로 이제 이 곡의 내용을 악장별로 좀 더 깊이 들여다 보기로 하겠습니다.1악장
이 곡은 마치 두 사람의 발레리나가 손에 손을 잡으며 사뿐사뿐 우아한(dolce) 춤을 추며 등장하듯 시작합니다.그리고 위의 악보에서 보이듯이, 이 오른손의 첫울림의 상행 3도는 이어지는 하행 4도 음형과 계속하여 대화하는 분위기이기도 하지만, 항상 오른손의 움직임에는 왼손이 화답하듯 그림자처럼 따라 붙는 것도 재미있습니다.
많은 연주자들이 이 오른 손과 왼손에 의한 아름다운 2중주의 느낌을 실제 연주에서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하지만, 아래 쉬프의 연주나 길트버그의 연주에서는 비교적 그러한 느낌이 잘 표현되고 있습니다.
쉬프
그리고 이 음형은 베토벤의 G장조 피아노 소나타 25번의 마지막 Vivace 악장과 너무나 흡사한데, 마치 나비 두 마리가 사이좋게 날라다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실제로 쇼팽의 연습곡 '나비' Op.25 No.9도 분위기가 비슷하지요.
어디에선가 홀연히 날개짓하며 날아 들어오는 나비 한 쌍 같은 이미지를 풍기는 도입부의 음형을 감안하면, 아마도 베토벤이 당초 이러한 분위기의 곡을 이 피아노 소나타의 1악장으로 채택할 때부터 이미 '불멸의 연인'을 위한 노래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1악장의 피아노의 첫 울림을 이루는 음형은 상행 3도(G#-B)인데, 주목할 점은 이 곡의 3악장의 피아노의 마지막 울림을 이루는 음형은 그와 반대로 하행 3도(B - (A) - G#)로 마무리 된다는 점입니다.
1악장의 이 비바체 마 논 트로포의 사뿐한 동작은 얼마지 않아 곧 전혀 다른 아다지오 에스프레시보에 의해 금방 중지됩니다. 흔히 비바체는 세게 연주되고 아디지오는 느리게 연주되는 것이 일반적이라면, 여기서는 역전이 되어 비바체는 여리게 시작하고 아다지오는 오히려 세게 울리는 아르페지오로 시작합니다. 이 아다지오에서 (마치 사랑의 상징인 하프의 음향과도 같이) 펼쳐진 화음들은 피아노의 높은 레지스터의 거의 한계까지 올라갔다가 별처럼 쏟아져 내리는 등 요동칩니다.
그리고 이렇게 비바체와 아다지오가 번갈아 나오다가 마지막은 처음의 선율이 갑자기 여리게(p) 줄어들면서 뭔가 충족되지 못한 듯이 갑자기 끝을 맺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내용은 1악장의 마지막 여리게(p) 치는 코드는 페르마타에 의해 연장되도록 되어 있고 페달 표시가 부기되어 있는데, 이 페달은 2악장의 첫음에서 중지하도록 악보상 표기가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아울러 베토벤의 자필 악보를 보면 이 1악장의 마지막 부분에 attaca 표시를 했다가 확 지워버린 것이 드러납니다.이러한 사정을 종합하면 연주자는 (많은 연주가 그러하듯이) 1악장 끝에서 바로 attaca로 2악장에 연결할 것이 아니라, 마지막 여린 음에 페달을 밟은 다음 그 공명이 자연적으로 다 사라질 때까지 최대한 기다렸다가, 2악장 연주를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나 생각됩니다.
한편, 이러한 다소 특이한 1악장 마지막 부분에 대하여, 어떤 학자는 베토벤이 '불멸의 연인'에 대하여 쓴 편지 내용 가운데 아래 질문과 관련을 짓기도 하던데 상당히 재미있더군요.
"Is not our love truly a heavenly structure,
우리의 사랑은 진정으로 천상의 구조물이 아니던가요
and also as firm as the vault of heaven?"
또한 푸른 하늘과 같이 견고하지 아니한가요
2악장
1악장의 마지막 여리게 친 음이 공간에서 아쉬운 여운을 남긴 후 서서히 사라지기가 무섭게 바로 2악장은 아주 세고(ff) 빠른 피아노의 타건과 함께 시작합니다.마치 1악장을 부정하는 듯한 이러한 급작스런 분위기의 변화와 관련하여 어떤 이는 위에서 본 베토벤의 편지 속의 질문에 대하여 베토벤이 "아니야!!"라는 답으로 절규하는 것으로 보기도 하더군요.
이처럼 2악장은 어찌보면 1악장에서 형성된 분위기를 격렬히 부정하는 듯한 분위기를 띄지만, 2악장은 (1악장이 먼저 만들어진 이후 추가로) 2악장과 같이 만들어진 3악장과는 오히려 동질성 또는 연결성을 찾을 수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왼손이 연주하는 피아노의 베이스 음형인데요, 베토벤이 악보에 ben marcato로 강조하여 표시하여 둔 이 음형은 2악장의 전반을 지배합니다.
그런데 이 음형의 리듬을 자세히 들어 보면 (매우 빠른 템포이기는 하지만 그 리듬의 템포를 안단테로 늦추면) 이어지는 3악장의 주제의 내재적 리듬과 매우 비슷함을 알 수 있습니다.
땅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고 하늘에서만 성취될 수 있는 사랑에 대한 작곡가의 애절함과 안타까움이 2악장의 거친 표효로 나타났다면, 3악장은 그 사랑의 아픔을 내면으로 삭이며 감수하려는 몸짓으로 바뀐 것일 뿐 본질은 비슷한 것임을 베토벤이 (2악장과 3악장의 위와 같은 유사한 리듬 채용을 통해)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고 풀이한다면 저만의 지나친 상상일까요?
3악장
드디어 베토벤의 30번 피아노 소나타의 핵심이자 결론에 해당하는 3악장에 이르렀습니다.
베토벤은 자필 초고에는 노래를 의미하는 Gesang이라는 독일어 단어를 이 3악장 맨 앞에 표기하였습니다. 그 후 출판 과정에서 Gesangvoll이라는 단어로 변경이 되었고 이는 이탈리아어로 같이 기재한 '칸타빌레'와 더 유사한 표현이기는 하지만, 사실 원래 베토벤이 기재한 노래를 의미하는 Gesang이 이 작품의 본질을 더 분명히 드러내주는 단어라고 생각됩니다.주제와 6개의 변주로 되어 있는 이 다소 긴 악장에는 (Gesang이라는 베토벤의 말 그대로) '불멸의 연인'에 대한 베토벤의 무언의 노래가 절절히 담겨져 있습니다. 외적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니라 내면으로 파고드는 친밀한 느낌(innigster Empfindung)을 가지고 부르는 이 노래에는 '불멸의 연인'과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에 애타며 그 정념을 속으로 삼키는 한 남자의 내면이 그림처럼 다양한 화폭으로 형상화됩니다.아래에서는 Goode와 Levit의 연주가 (악보와 함께) 담긴 위의 유튜브 동영상을 중심으로 3악장의 각 변주들을 살펴보겠습니다(아래 표시된 시간은 이 동영상에 관한 것입니다).
우선, 제시되는 주제(06:32)에서부터 세상의 그 어떤 '안단테 칸타빌레'보다도 깊은 감정이 느껴집니다. 혹자는 이 주제에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의 아리아가 어른거린다고도 하지만, 베토벤의 이 주제는 훨씬 더 상처받기 쉬운 영혼의 숨결을 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주제의 첫 하행 3도의 음형은 이 3악장의 변주를 통해 계속 나타나며 곡에 통일감을 부여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합니다만, 악구에 대한 기술적 분석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합니다.)
제1변주(08:15)는 템포의 변경은 없지만 (마치 비창 소나타의 안단테 칸타빌레에서처럼) 꾸밈음에 의해 도약하는 피아노가 표현하는 애타는 그리움과 함께 서서히 슬픈 왈츠를 시작합니다.
제2변주(10:25)는 그 안에 다시 3가지의 작은 변주를 담고 있는데, 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쉬프가 이 부분을 그림으로 치면 모자이크와 같다고 한 것에 크게 공감이 되더군요. 감정의 파편들이 하나씩 둘씩 드러난 후 반복되는 트릴을 통해 마법과 같이 어떤 기억이 눈 앞에 떠오르는 둣한 느낌들이 베토벤의 천재적 터치로 펼쳐지는 모습이 신비스럽기까지 합니다.
제3변주(11:56)에서는 속도가 알레그로 비바체로 변경되며 호흡이 가빠지다가, 제4변주(12:22)는 오히려 주제보다 더 느리게 바뀌면서 후반부에는 더욱 내면에서 애간장을 태우는 간절함이 드러납니다.
제5변주(14:53)는 코랄풍의 선율에 이어 푸가가 진행되는데, 안드라스 쉬프는 이 부분이 (당시 베토벤이 작곡 중이던) 장엄미사의 크레도 부분 및 글로리아 부분의 멜리스마 음형과 일치한다고 하면서 경건한 느낌을 언급하지만, 제 생각에는 푸가의 기법을 차용하기는 하였으나 (어떤 경건한 신앙심을 노래하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솔직한 인간적 감정을 신에게 호소하는 듯 느껴집니다.
마지막 제6변주(15:45)에서는 원래의 주제의 템포로 돌아오지만, 여기서는 원래의 템포를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단지 음표를 4분음표 - 8분음표 - 16분음표 - 32분음표 등으로 쪼개고 급기야 트릴까지 가세시키면서 곡은 급격히 클라이막스로 치닫습니다. 이처럼 동일한 펄스로 진행하면서 음표의 음가를 쪼개어 텐션과 유동성을 심리적으로 일정한 방향으로 생성시키는 변주 기법은 열정 소나타의 2악장 등에서도 적용되었고, 그러한 음의 분할을 통해 마치 모든 상념을 잘개 쪼개어 우주로 날려보내는 듯한 느낌을 창출하는 32번 소나타의 아리에타에서 절정을 이룬 기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여기 30번 소나타의 종악장의 마지막 변주에서는 32번 소나타의 아리에타가 주는 초월의 느낌보다는 오히려 어떤 간절함이나 애절함이 도가 넘어 결국 신음하며 감정의 경련을 일으키는 듯 들립니다.모든 감정을 다 쏟아 부은 듯한 제6변주가 끝나면 (마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서 마지막에 첫 아리아로 돌아오듯) 곡은 원래 주제(17:50)의 간절한 노래(cantabile)로 다시 돌아옵니다. 폐부에 예리하게 파고드는 후반부를 거쳐 노래는 마지막 마디의 ritard.에 의해 잦아 듭니다.
그리고, 마지막 공간에 뿌려진 여린음(p)이 악보의 마지막에 베토벤이 기재한 페달을 연주자가 끝까지 밟고 있는 사이에 점차 흐려지면서 이 노 작곡가가 부르는 '불멸의 연인'을 향한 무언가(無言歌)는 함께 허공으로 사라집니다.
선우예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