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환자도 뺑뺑이 도는데…취객 응급실로 보내자는 국회

입법 레이더

의료기관에 보호·치료 떠넘긴
'주취자 보호법' 잇달아 발의
의료계 "병상·인력 부족해 무리"
경찰이 술에 취해 의식을 잃었거나 통제 불능 상태가 된 주취자를 의료기관에 넘길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국회에서 잇따라 발의됐다. 경찰의 주취자 대응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경찰청이 적극적인 입법 홍보를 펼친 결과다. 의료현장에서는 병상 및 인력 부족으로 응급 환자도 치료받지 못하는 현실을 무시한 법안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1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국회에선 지난달 이후 총 4건의 ‘주취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발의됐다. 대표 발의자는 윤준병·임호선·전재수(더불어민주당) 이주환(국민의힘) 의원이다. 이들 법안은 제목과 세부 내용은 제각각이지만 공통적으로 지역응급의료센터·응급의료기관 가운데 주취자응급의료센터·기관을 지정하고 경찰이 주취자를 해당 기관에 인계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이 같은 법이 나온 배경에는 경찰의 적극적인 입법 홍보활동이 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주취자 보호조치 개선 태스크포스(TF)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경찰청은 올초 주취자가 경찰의 대응 실패로 저체온증과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자 지난 2월 TF를 출범시켰다. TF는 “최우선으로 의료계와 지방자치단체를 주취자 대응체계에 참여하도록 법제화해야 경찰의 현장 부담이 최소화된다”는 취지의 결론을 내렸다.

경찰은 이에 4~5월 국회에서 간담회를 열고 입법 필요성을 강조했다. 법안을 발의한 한 의원실 관계자는 “경찰의 요청에 따라 법안을 제출한 것은 아니고, 작성 과정에서 일부 피드백을 받긴 했다”며 “보건복지부와 의료계는 어차피 반대할 것이기 때문에 따로 의견을 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의료계와 복지부는 응급실 병상과 인력이 부족해 ‘응급실 뺑뺑이’로 사망하는 환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주취자 대응까지 떠안는 것은 무리라며 반발하고 있다. 복지부 응급의료과 관계자는 “응급실은 주취자를 보호하는 곳이 아니다”며 “주취자 보호 책임을 부여하기에 앞서 인력 확충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경찰청 측에 거듭 밝혔는데 법안이 나온 것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경찰청 TF에 복지부는 전혀 참여하지 못했다”며 “법안에 매우 강력하게 반대한다”고 덧붙였다.경찰청에 따르면 이번 TF에는 현장 경찰관 7명과 경찰행정·정책 전문가 3명, 변호사 3명이 참여했다. 의료계와 복지부, 지자체 측 의견이 반영될 수 없는 구조다.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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