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대신 주인공 된 초현실주의 여성 작가들…몽마르트서 만나다
입력
수정
[arte] 신미래의 파리통신
몽마르트 미술관 ‘여성적 초현실주의?’전
파리 몽마르트 미술관. ‘여성적 초현실주의?(Surréalisme au féminin?)’ 라는 다소 생소한 제목의 이 전시는 의문으로부터 시작된다. 포스터 제목 끝에 퀘스천 마크는 초현실주의(Surréalisme)와 여성(Féminin) 두 단어를 아우르고 있다. 두 단어의 모호한 경계를 만드는 물음표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말이나 글, 또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의 실제 기능을 표현하는 순수한 심적 자동기술법(Automatisme). 심미적 또는 도덕적 고정관념과 이성에 의한 통제가 없는 상태에서 생각에 의해 받아쓰는 것이다.”
전시의 서문에는, 1924년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이 그의 첫 번째 선언문에서 언급한 초현실주의의 정의가 적혀 있다. 1차 세계대전의 참상 이후, 잠재의식과 꿈,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함으로써 인간에 대한 총체적인 인식을 추구하고자 했던 초현실주의가 유럽 전역에서 성행했다. 특히, 이 시기에 여성들은 자신들의 노동권과 선거권을 위하여 투쟁했고, 사회 각계각층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여성들이 문화, 예술계로 진출하면서 초현실주의운동에서도 활동을 했지만, 박물관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예술 시장에서 과소평가 됐다. 여성 초현실주의자들은 작가나 예술가로서보다는 남성 초현실주의자들의 작품에 영감을 준 그들의 부인이거나 뮤즈로 알려져 있었다. 달리, 마그리트, 에른스트와 같은 남성 작가들이 초현실주의 운동의 중심을 이루었으며, 20세기 초반 남성의 작품 속에서 여성들은 여신처럼 신비한 존재, 아이 같은 순수한 여성(Femme enfant), 에로틱한 뮤즈로서 존재했다. 또한, 여성작가들의 작품은 종종 그룹의 창립자들(André Breton, Louis Aragon, Paul Éluard, Philippe Soupault 등)이 시작한 주제를 차용하고 확장 함으로써 표현됐다.
여성 작가들은 이러한 남성중심주의적 여성 편견과 여성의 수동적 역할에 반감을 가졌다. 만 레이(Man Ray)의 작품 모델에서 벗어나 사진가로 활동한 리 밀러(Lee Miller)와 같이, 여성작가들은 뮤즈라는 이름에 예속되지 않고 점차 예술가로 거듭났으며, 남성 작가들과는 차별화된 독창성과 창조성을 가지고 예술계에서 자리매김 하였다.
전시 제목의 물음은 이러한 초현실주의 내 여성의 기여를 재정의하고, 여성작가들의 작품 속 무한히 복잡하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 탐구해 나가도록 제안한다. 몽마르트 미술관은 초현실주의 그룹이 해체된 공식 날짜(1969년)를 넘어 1930년에서부터 2000년대까지, 약 50명의 초현실주의 여성 예술가, 사진작가, 시인의 작품들을 한데 모았다. 전시는 초현실주의 역사의 연대기와 무관하게 주제별 섹션(초현실적인 별자리, 자연, 복수의 여성성, 키메라, 건축, 실내의 밤, 구상 넘어)에 따라 전개된다.
“괴로워하는 자, 반항하는 자(나는 당신과 같은 사람이 아닙니까?) - 우리는 꿈, 발톱 또는 부드러운 발을 요구합니다.”
전시장 첫 벽면에 선명히 적혀 있는 클로드 카엥(Claude Cahun)의 글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클로드 카엥 ‘자화상’ (연도 미상)
클로드 카엥은 자신의 이미지들을 이용해 자신의 정체성과 사회에서의 젠더 구조를 탐구해 나갔던 예술가이자 정치 활동가였다. 대부분의 사진 작품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변장한 채로 노출시키는데, 이는 레즈비언 작가였던 그녀의 정체성을 모호하게 표현하는 하나의 방법이었다. 그녀는 자신을 감추기보다 어떻게 드러내는지에 대해 고민하였고, 불안한 자아로 현존하기 위한 자신만의 통로를 모색해 나갔다. ‘우리 사이(Entre nous)’라는 제목의 사진 속에는, 사람 형상의 가면 두 개가 모래 위에 놓여 있다. 얼굴과 몸, 어떠한 명확한 형태 없이 서로를 응시하는 표정만이 드러날 뿐이다. 그녀는 형태를 변형, 생략하는 비가시성으로써 가면만을 쓴 익명의 자화상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녀가 가면을 통해 파괴, 은닉하는 표현 전략은, 오히려 성적 경계를 탈주하고자 하는 그녀의 자아를 더욱 또렷하게 반영한다. 가면은 그 자체로 그녀인 것이다.
▲클로드 카엥 ‘우리 사이’ (1926)
미미 페런(Mimi Parent)의 입체 작품들은 평면 작품들 사이에 풍요로움을 더하고 있다. 그녀는 마르셀 뒤샹과 함께 ‘경고 상자(Boîte Alerte)’라는 제목의 작품을 함께하기도 하였는데, 전시장 입구에서 두 남녀를 앞치마로 익살스럽게 형상화한 작품 ‘앞치마의 커플(Couple de tabliers)’을 만나 볼 수 있다.
▲미미 페런& 마르셀 뒤샹 ‘앞치마의 커플’ (1926)
이 작품은 마르셀 뒤샹의 작품을 카피하여 제작하였다. 미미 페런은 약 20cm의 상자에 작품을 표현하기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녀가 ‘사물 그림’이라고 표현한 작은 상자 안에는 일상적 오브제, 그림, 조형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다. 일반적인 물건과 석고로 조각된 풍경을 혼합 배치해 입체감을 더하여, 신화의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한다.
▲ Mimi Parent, Léda (1997) / Mony Vibescu @photo by Mirae Shin
작품 ‘레다(Léda)’에서는 초현실주의적 친숙한 환상 주제 중 하나인 새와 여자를 사용함으로써 에로틱한 상징주의를 꼬집었다. 또한, 그녀는 일상적인 장신구를 변형시킴으로써, 여성의 몸에 대한 신성화와 진부한 에로틱한 표현을 전복시키고자 하였다. 작품 ‘지배자(Maîtresse)’ 속 채찍 끝에는 여자의 머리 털이 달려있다. 종속의 이미지인 채찍을 사용하여 가정 질서를 왜곡함과 동시에 관음증적 집착을 유머러스하게 변형시켰다.
▲ 도로시아 태닝 '정말 행복한 그림 (1945)'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초현실주의 예술가 중 한 명이었던 도로시아 태닝(Dorothea Tanning)은 뉴욕 예술계에 깊은 인상을 남긴 예술가이다. 그녀의 대담한 모티프는 에로틱한 환상과 유머가 없는 성적 은유, 자서전적 암시로 가득 차 있다. 특유의 비현실적인 공간 구조와 초 자연적인 상황 설정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한 감정을 느끼게 한다. 불길한 한편의 꿈같은 작품들은 보수적인 사회, 환경의 억압, 여성들의 욕망과 투쟁, 개인적 경험, 가정 내 폭력, 강박관념 등의 다양한 주제를 시사하고 있다. 그녀는 인간, 동물, 식물, 사물들이 융합된 몽상적 세계를 섬세하고 치밀한 세부 묘사력으로 표현하였으며, 1950년대 이후에 들어서 강력한 에너지가 느껴지는 추상화로 표현하였다. 특히, 뉴욕에서 활동하던 초현실주의 화가들과의 활발한 교류는, 그녀의 작품 세계의 무한한 확장을 가능케 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도로시아 태닝의 환상적 표현기법이 돋보이는 작품 ‘정말 행복한 그림(Un tableau très heureux)’을 만나 볼 수 있다.
▲ 미미 페런 '남성성-여성성' (1959). 부모님의 실제 머리칼로 만든 작품.
초현실주의의 여성화가들은 자신의 삶의 주체로서, 주변 사회 환경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축적된 경험들을 예술로 표현하였다. 그녀들은 당대의 남성 예술가들의 작품에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았던, 자신 그대로를 자화상으로 등장시키기도 하였으며, 여성성을 대표하는 오브제들을 있는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차별화된 예술 경향성을 보였다. 그녀들의 작품 속에는 리얼리티가 존재했으며, 사회의 고정관념에 반하는 독립심과 자유에 대한 욕구는 작품의 리얼리티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 도로시아 태닝 'Maternity (1946~1947)'
그녀들은 초현실주의 운동에 있어, 자신들만의 독창적 시선을 통한 또 다른 창의적 틀을 제공하였다. 초현실주의의 여성작가들의 결코 포괄적이지 않았던 기록들을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 되지 않을까? ‘여성적 초현실주의?(Surréalisme au féminin?)’ 전시는 몽마르트 미술관에서 9월 10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