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한 페어? 우국원 보드 그림·접는 이우환…도쿄 겐다이가 보여준 매력

[arte] 한국신사 유람일기
초보 컬렉터의 눈으로 본 日 도쿄 겐다이 아트페어
폭스 젠슨 갤러리 부스에 걸린 Imi Knoebel 작품들.


규모나 의미 면에서 일본에서 열리는 제대로 된 첫 아트 페어로 평가되는 도쿄 겐다이. 7월의 도쿄, 녹아 내릴 듯한 열기와 숨막히는 습기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에서 방문한 2만명의 방문객들은 요코하마의 페어장을 흥분으로 가득 채웠다. 쿠사마 야요이, 무라카미 다카시 같은 세계적 작가들과 요지 야마모토, 이세이 미야케 같은 패션디자이너는 물론 오에 겐자부로 같은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여럿 거느린 동북아시아의 문화 중심지이자 일본의 수도 도쿄에 그 동안 국제규모의 아트페어가 없었다는 것도, 그리고 이 새로운 시도가 코로나 팬데믹이 끝난 2023년에야 실현되었다는 것도 의아했지만, 언제나 의아함은 호기심과 맞닿아 있는 법. 가깝고도 먼 나라 이웃 일본의 미술시장에 대한 호기심과 무비자 입국 시절 자유롭게 드나들던 도쿄에 대한 향수를 안고 ‘그 동안 달려졌다, 전 같지 않다’는 도쿄의 현재를 확인하려고 떠났다.
조현화랑 부스의 이배 작품들.

도쿄 겐다이(Tokyo Gendai·東京 現代)를 우리식 한자음으로 읽으면 동경 현대다. 아트 페어 이름이 ‘동경 현대’라고? 현대미술의 뜨거운 격전장이길 염원했던 것일까? 아니면 어딘지 문화적으로 존재감을 조금씩 상실해가는 동북아시아 문화 수도로서의 도쿄의 존재감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고 싶었던 것일까? 제법 조직적인 홍보메일과 함께 페어의 날짜가 다가올수록 호기심은 증폭되었고, 이른 아침 첫 비행기에 몸을 싣고 요코하마에 위치한 퍼시피코의 페어장에 도착했다.

첫날은 VIP 초대를 받은 컬렉터와 관계자들을 위한 프리오프닝 날, 서로에게 인사를 건네며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길다란 행렬 중에는 다양한 외국어가 들리고 현지인 컬렉터들과 미술 관계자들에겐 묘한 흥분감이 느껴졌다. 문이 열리고 쏟아지듯 페어장으로 들어서자 익숙한 격자 형태의 부스들이 펼쳐졌고 필자는 우선 빠르게 돌아보고, 두번째에는 관심 가는 작품들과 작가들은 조금 더 집중해서 살피고, 세번째는 한국 작가들을 찾아보는 재미를 찾는 순서로 관람해 보았다.
끌로드 비알라의 작품으로 부스를 가득 채운 쎄송&베네티에.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세 번이나 페어장 전체를 돌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아담했고 전세계 미술 시장을 불호령하는 소위 대가의 작품도, 세계시장을 움직이는 큰 손 화랑들도 거의 참가하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시장이 가진 다양함에 대한 너그러움 때문인지, 한국의 페어에선 잘 등장하지 않는 액자 없는 형태의 작품들, 형식을 깬 작품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아시아 미술 시장의 패권이 홍콩 아트 바젤이 열리는 홍콩으로 진작에 넘어가고 작년 프리즈와 키아프의 흥행 대성공으로 또 다시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 이동이 서울로 예견된 가운데 도쿄 겐다이의 행보는 사실 그다지 편안해 보이지는 않았다.

컬렉터들이나 갤러리들 모두 곧 9월에 있을 프리즈와 키아프를 위해 예산과 에너지를 아끼고 있는 눈치였고 게다가 개최지가 도쿄에선 상당히 떨어진 위성 도시 격인 요코하마라는 점, 여행 하기엔 망설여지는 무더운 도쿄의 7월에 개최되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어려움은 이미 예견된 상황이었다. 페어에 참가한 한 국내 갤러리 관계자는 조명의 선택권이나, 전시자의 입장에서의 편이 등이 국제적인 수준이 아님을 언급하였는데 취재를 위해 협조를 구하는 필자도 적지 않은 기다림의 시간이 요구된 것을 보면 역시나 첫 개최라는 약점이 존재하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근 30년만에 처음으로 개최된 규모와 형식을 가진 아트페어이고, 일본 정부(문화부)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 그리고 다양한 부대행사와 흥미로운 이벤트가 강화될 전망을 고려하면 도쿄겐다이의 미래는 흥미롭다. 찬란한 문화적 전통 그리고 서양인들의 무조건적인 문화적 편애를 받아온 세계 3대 부자나라인 일본, 그리고 그 수도인 도쿄는 분명히 저력을 가졌다.
알민 레시 갤러리 부스의 귄터 표르그(Günther Förg) 소품.

가파른 상승세의 독일의 화가 귄터 표르그(Günther Förg)의 소품 한 점을 알민 레쉬(Almine Rech) 갤러리 부스에서 발견했을 땐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 시켜야 했다. 뜻밖에도 호주와 뉴질랜드에 적을 둔 화랑 폭스 젠슨(Fox Jensen)갤러리는 부스에 걸린 모든 작품을 쓸어 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Imi Knoebel, Erin Lawlor, Gideon Rubin 등의 작가들은 관심리스트에 추가했다. 액자형 작품이 아니기에 국내에서 절대적인 저평가를 받고 있는 끌로드 비알라(Claude Viallat)의 작품으로만 부스를 가득 채운 쎄송&베네티에 (Ceysson and Bénétière)에서는 마음에 둔 작품을 다른 컬렉터에게 빼앗겨 너무도 아쉬웠다.
카마쿠라 갤러리에서 출품한 이우환의 접이식 작품과 소품들.

한국 작가를 찾아 다니는 재미도 쏠쏠했는데, 카마쿠라 갤러리(kamakura gallery)에서 출품한 이우환의 커다란 접이식 작품과 소품, 역시나 한국에선 본 적 없는 도상의 하종현의 작품이 알민 레쉬(Almine Rech)에 전시되어 눈길을 끌었고, 313 아트 갤러리에 출품된 우국원의 작품은 한국에선 보기 힘든 형태로 서핑보드에 작업한 독특한 작품이어서 역시 다양함에 관대한 일본 시장에 적절한 선택이였다. 가나아트, 조현 갤러리, 그리고 갤러리 바톤에서 만나는 한국 작가들의 모습도 해외에서의 한국 미술의 위상을 확인하는 의미 있는 모습이었다.
313아트갤러리가 출품한 우국원의 서핑보드 작품.
미술 애호가와 컬렉터가 가져야 할 미덕이라면 다양한 장르에 대한 너른 이해와 포용심이 아닐까? 도쿄 겐다이가 일본 미술과 도쿄의 현대를 대변하진 못하더라도, 적어도 대한민국의 아트페어들과는 조금 다른 시선으로 작품을 보는 좋은 기회가 되리라 확신한다.

비행기로 두 시간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은 이젠 적어도 현대미술에선 우리의 적수가 되지 못한다. 무조건 적대감을 갖기보단 그들이 켜켜이 쌓고 발전시킨 전통 위에 펼쳐갈 현대미술의 행보에 관심을 갖는 것은 어떨까? 내년 두번째 도쿄 겐다이에는 우동이나 스시도 즐기면서 재미난 작품들을 구경하러 함께 떠나보면 어떨지. / 한국신사 이헌 칼럼니스트





[인터뷰] 타카네 에리 도쿄 겐다이 아트페어 디렉터
▶ 도쿄 겐다이의 의미와 가치는 무엇인가?

-2023년에 처음으로 선을 뵌 도쿄 겐다이는 새로운 아트 페어이자 국제적인 예술계의 만남의 장입니다. 예술과 디자인 영역에서 가장 역동적인 행보를 보여온 73개의 특별한 갤러리들을 함께 모음으로서 도쿄 겐다이는 상업적, 예술적, 그리고 지적 교류 측면에서 흥미진진한 플렛폼이자, 복합문화 개발의 연결고리가 되길 원합니다. 국제적인 지명도를 가진 현대 예술가들을 선별적으로 제안함과 동시에 일본의 재능 있는 차세대 예술인들을 국제적으로 소개하는 특별한 플렛폼을 지향합니다..

▶ 페어의 타이틀을 도쿄 겐다이라고 지은 이유는 무엇인가?

-‘겐다이’는 동시대, 현대를 지칭하는 일본어입니다. 이 단어는 지난 주 페어를 통해 소개된 이미 저명한 전세계의 탁월한 현대미술 작품들과, 날 선 감성의 떠오르는 신흥 예술을 아우르는 대표성을 띈 단어입니다.▶ 한국 미술에 대한 당신의 생각은?

-이번 도쿄 겐다이에는 한국에서 313 아트 프로젝트, 갤러리 바톤, 가나 아트, 그리고 조현 갤러리가 출품하였고 몇몇 한국 작가들의 작품들도 소개되었습니다. 한국 갤러리들과 예술가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환영합니다. 다음 페어에서도 뵙게 되길 고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