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개인의 자유…쿤데라의 문학세계

포스트모더니즘 대표작가…'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90년대 대학가 필독서
"역사란 개인의 삶만큼이나 가벼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바람에 날리는 먼지처럼 가벼운, 내일이면 사라질 그 무엇처럼 가벼운 것이다. "
지난 11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작고한 작가 밀란 쿤데라의 대표작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한 구절이다.

이 소설은 1968년 체코의 민주·자유화 운동과 소련의 침공으로 이어지는 '프라하의 봄' 시기를 배경으로 현대인의 삶과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1984년 발표된 이 소설은 무거운 시대적 상황과 각각의 상처를 짊어진 네 남녀의 각기 다른 사랑 방식에 생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오가는 현대인의 모습을 투영시켜 인기를 끌었다. 작가는 네 주인공을 통해 진지함과 가벼움, 책임과 자유, 영원과 찰나 등 사랑의 서로 모순되는 본질을 짚어 인간 존재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소설의 주제 의식에 녹아든 니체의 영원회귀 사상과 교묘히 짝을 이루는 시간 파괴적 서술방식 등으로 인해 이 작품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적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국내에는 1988년 처음 소개됐다. 당시 계간 '세계의 문학' 가을호에 전재된 후 그해 11월 단행본으로 출간됐는데 첫 출간 당시 독문학자 송동준이 독일어 판본을 옮겨 펴냈다.

이어 11년 뒤인 1999년 불문학자 이재룡이 옮겨 번역본이 새로 나왔다.

불어판 번역본 출간은 불어 판본을 번역하는 게 원작에 가장 충실한 것이라는 작가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그는 원래는 모국어인 체코어로 글을 썼지만, '프라하의 봄' 이후 1975년 프랑스로 망명한 뒤 1993년부터 프랑스어로 작품 활동을 해왔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를 거치면서 동구권 공산주의의 몰락, 냉전체제 종식 등 시대 상황과 맞물려 국내 대학가에서는 약칭인 '참존가'로 불리며 두루 읽혔다.

또한 소설은 1988년 필립 코프먼 감독에 의해 대니얼 데이루이스, 쥘리에트 비노슈가 출연한 영화(한국 개봉 제목 '프라하의 봄')로도 제작돼 인기를 끌었다.

국내에는 쿤데라의 소설과 에세이 대부분이 번역돼 나와 있다.

비뚤어진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인간관계를 묘사한 첫 장편 '농담'을 비롯해 '생은 다른 곳에', '불멸', '정체성', '무의미의 축제' 등의 소설이 번역돼 있다.

산문집으로는 '소설의 기술', '커튼', '만남' 등이 있고, 가장 최근에 번역 출간된 책으로는 지난해 11월 나온 에세이 '납치된 서유럽'이 있다.

쿤데라의 작품들은 전반적으로 역사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으려는 개인의 자유와 사랑, 에로스적 욕망을 풍부한 아이러니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첫 장편 '농담'의 불역판 서문에서 프랑스의 초현실주의 작가 루이 아라공은 쿤데라를 "금세기 위대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소설이 빵과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임을 증명해주는 소설가"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