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공항 사람들] (22)애로사항도 직업병도 '날씨'…"오직 안전운항 생각뿐"
입력
수정
항공기 이륙전부터 착륙후까지 모든 비행상태 감시·점검
운항관리사·운항담당자 "첫눈 봐도 무덤덤…안전운항 첨병"
[※ 편집자 주 = '공항'은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충만한 공간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주공항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 의미가 각별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지나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으로 이어지는 이 시대에도 '쉼'과 '재충전'을 위해 누구나 찾고 싶어 하는 제주의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연간 약 3천만 명이 이용하는 제주공항. 그곳에는 공항 이용객들의 안전과 만족, 행복을 위해 제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비록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며 제주공항을 움직이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 이야기와 공항 이야기를 2주에 한 차례씩 연재합니다.
] 반갑지 않은 태풍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7∼10월에 집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태풍 탓에 우리나라에선 해마다 인명·재산피해가 반복됐다.
태풍의 길목 제주 역시 바짝 긴장한다.
제주에선 태풍이 북상한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 누구보다도 관광객들이 큰 불편을 겪는다. 가족여행을 왔다가도 태풍 탓에 일정을 다 마무리하지도 못하고 서둘러 돌아가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태풍으로 모든 항공기가 결항하면 태풍특보가 해제될 때까지 제주에서 꼼짝도 못 하고 갇혀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태풍이나 폭설 등 악기상으로 인한 항공기 결항은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하는 것일까. ◇ 최적의 비행 관리 '운항관리사'
우선 항공기 결항은 각 항공사가 자체적으로 결정해 국토교통부에 결항 신고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부가 일일이 통제한다기보다 각 항공사의 자율 결정에 맡기는 셈이다.
그렇다면 항공사 내에서 결항 결정은 누가할까.
항공사 내 많은 관계자의 의견을 종합해 최종적인 결정은 운항관리사가 한다고 보는 게 타당할 듯하다.
운항관리사는 항공기가 안전한 비행을 할 수 있도록 계획에서부터 비행의 개시·실시·변경·종료까지 전체 비행단계에서 비행상태를 감시하고 비행여건의 변화에 따른 정보를 종합 관리하면서 최적의 안전 비행이 이뤄지도록 지상에서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늘길의 안내자인 관제사나 항공기 조종사·정비사 등과 함께 자격증을 요하는 항공 관련 전문직 중 하나다.
매우 중요한 업무인 만큼 운항관리업무는 대부분의 항공사가 본사에서 중앙 통제식으로 이뤄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한항공은 전 세계 운항 중인 모든 항공기에 대한 운항관리 업무를 본사 종합통제본부 내 통제센터에서 관리한다. 통제센터 내에는 운항관리사를 비롯해 기상 담당, 항공기 스케줄 담당, 승무원 스케줄 담당, 정비 담당, 운항승무원 등 항공기 운항에 필요한 전 부문의 직원들이 파견돼 합동 근무를 한다.
의사결정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제주공항에 악기상이 발생하면 운항관리사가 운항결정회의 개최를 요청한다.
기상담당이 제주의 기상 추이를 확인해 공유하고, 운항관리사가 센터 내 전 부문 직원들의 협의를 통해 결항·지연 여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이후 제주의 운항담당자가 국토부에 결항 신고를 한다.
운항관리사 국가 자격을 갖추고 대한항공 제주지점에서 운항담당 업무를 하는 30년 경력의 현준연 차장은 "태풍과 같은 예측가능성이 높은 악기상인 경우 24시간 내지 12시간 전에 결항 여부 결정을 한다"면서도 "급변풍이나 해무 등 예측이 힘든 악기상의 경우 가급적 항공기 출발 4시간 전에 결정해 승객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간이 변화무쌍한 날씨를 모두 예측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탓에 간혹 승객들이 탑승수속을 한 뒤에도 갑작스레 항공기가 결항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이는 주로 해무와 같은 저시정, 그리고 바람의 영향이 크다. ◇ "첫눈을 봐도 무덤덤…오직 안전운항!"
운항관리사와 운항담당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기상조건은 무엇일까.
현 차장은 "겨울에는 북서풍이 불잖아요.
하지만 봄이 들어서고 여름으로 가면서 남동풍이 불기시작하는데 바람이 한라산을 타고 제주공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발생하는 급변풍과 양배풍이 항공기 이착륙에 가장 큰 지장을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항공기는 양력(揚力ㆍ뜨는 힘)을 얻기 위해 항상 맞바람을 안고 운항한다.
그런데 바람이 항공기 옆이나 뒤에서 불 경우 양력을 얻기가 어려워져서 이ㆍ착륙에 지장을 초래한다.
항공기를 기준으로 앞면에서 부는 바람은 '정풍', 뒷면에서 부는 바람은 '배풍', 옆면에서 부는 바람을 '측풍'이라고 한다.
특히, 제주에선 활주로 양 끝단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양배풍이 큰 문제가 된다.
동서로 길게 뻗은 제주공항 활주로에서 동쪽과 서쪽 어느 한쪽에서 바람이 불어온다면 그에 따라 항공기 진행 방향을 바꾸면 되기 때문에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동과 서에서 수시로 바람이 바뀌어 불어 결과적으로 어느 방향으로 이착륙을 해도 뒷바람을 받게 되는 양배풍이 불면 비행기 이착륙 자체가 어려워진다.
기종과 다른 기상 여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배풍인 경우 바람이 10노트(초속 5.14m) 이상, 측풍인 경우 30노트(초속 15.43m) 이상이면 항공기 이착륙이 어렵다.
이러한 변화무쌍한 제주의 날씨는 항공기에 주입되는 연료 등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운항관리사가 작성한 비행계획서를 보면 항공기 운항의 모든 변수를 고려한 세심함이 묻어난다.
제주와 김포공항을 오가는 대한항공 여객기 에어버스 330(A330)의 비행계획서에는 총 연료가 2만8천 파운드로 기록돼 있다.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이동에 필요한 연료(1만2천200 파운드) 외에도 날씨 문제로 불가피하게 회항하는 데 필요한 연료(1만500 파운드), 목적지 공항 공중에서 체공할 경우에 대비한 연료(5천600 파운드), 지상 활주로 이동에 필요한 연료(800 파운드) 등이 포함돼 있다. 심지어 어떠한 이유로든 목적지 공항에 착륙할 수 없을 때 사전에 지정된 교체 공항까지 비행하는 데 필요한 연료(3천800 파운드)뿐만 아니라 계산상의 부족함을 보정하는 데 필요한 여분의 연료(4천 파운드)까지 고려해 넣는다.
제주에서 김포까지 55분의 비행시간을 7개의 주요 포인트로 나눠 각 지점까지의 거리와 비행조건, 비행시간, 소모 연료량을 매우 자세하게 기록한다.
모두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조치다.
이렇다보니 운항관리사와 운항담당자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도, 직업병도 '날씨'다.
현 차장은 "슬픈 일이지만 한겨울 내리는 첫눈을 봐도 특별한 감정이 안 난다"며 "눈이 내리면 항공기·활주로 제설작업이 먼저 떠오르고 항공기 지연·결항에 따른 승객과 항공기 안전만 먼저 떠올라 감성을 느낄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 운항을 위해 정보를 주고받으며 상황이 마무리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퇴근하고 나서야 무언가 안전 운항의 첨병이 된 듯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운항관리사·운항담당자 "첫눈 봐도 무덤덤…안전운항 첨병"
[※ 편집자 주 = '공항'은 여행에 대한 설렘과 기대로 충만한 공간입니다. 그중에서도 제주공항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 의미가 각별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을 지나 엔데믹(endemic·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으로 이어지는 이 시대에도 '쉼'과 '재충전'을 위해 누구나 찾고 싶어 하는 제주의 관문이기 때문입니다.
연간 약 3천만 명이 이용하는 제주공항. 그곳에는 공항 이용객들의 안전과 만족, 행복을 위해 제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연합뉴스는 비록 눈에 잘 띄진 않지만,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며 제주공항을 움직이는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 이야기와 공항 이야기를 2주에 한 차례씩 연재합니다.
] 반갑지 않은 태풍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7∼10월에 집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태풍 탓에 우리나라에선 해마다 인명·재산피해가 반복됐다.
태풍의 길목 제주 역시 바짝 긴장한다.
제주에선 태풍이 북상한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 누구보다도 관광객들이 큰 불편을 겪는다. 가족여행을 왔다가도 태풍 탓에 일정을 다 마무리하지도 못하고 서둘러 돌아가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진다.
태풍으로 모든 항공기가 결항하면 태풍특보가 해제될 때까지 제주에서 꼼짝도 못 하고 갇혀 지내야 하기 때문이다.
태풍이나 폭설 등 악기상으로 인한 항공기 결항은 누가 어떤 과정을 거쳐 결정하는 것일까. ◇ 최적의 비행 관리 '운항관리사'
우선 항공기 결항은 각 항공사가 자체적으로 결정해 국토교통부에 결항 신고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정부가 일일이 통제한다기보다 각 항공사의 자율 결정에 맡기는 셈이다.
그렇다면 항공사 내에서 결항 결정은 누가할까.
항공사 내 많은 관계자의 의견을 종합해 최종적인 결정은 운항관리사가 한다고 보는 게 타당할 듯하다.
운항관리사는 항공기가 안전한 비행을 할 수 있도록 계획에서부터 비행의 개시·실시·변경·종료까지 전체 비행단계에서 비행상태를 감시하고 비행여건의 변화에 따른 정보를 종합 관리하면서 최적의 안전 비행이 이뤄지도록 지상에서 관리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늘길의 안내자인 관제사나 항공기 조종사·정비사 등과 함께 자격증을 요하는 항공 관련 전문직 중 하나다.
매우 중요한 업무인 만큼 운항관리업무는 대부분의 항공사가 본사에서 중앙 통제식으로 이뤄진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대한항공은 전 세계 운항 중인 모든 항공기에 대한 운항관리 업무를 본사 종합통제본부 내 통제센터에서 관리한다. 통제센터 내에는 운항관리사를 비롯해 기상 담당, 항공기 스케줄 담당, 승무원 스케줄 담당, 정비 담당, 운항승무원 등 항공기 운항에 필요한 전 부문의 직원들이 파견돼 합동 근무를 한다.
의사결정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렇다.
제주공항에 악기상이 발생하면 운항관리사가 운항결정회의 개최를 요청한다.
기상담당이 제주의 기상 추이를 확인해 공유하고, 운항관리사가 센터 내 전 부문 직원들의 협의를 통해 결항·지연 여부를 결정하는 시스템이다.
이후 제주의 운항담당자가 국토부에 결항 신고를 한다.
운항관리사 국가 자격을 갖추고 대한항공 제주지점에서 운항담당 업무를 하는 30년 경력의 현준연 차장은 "태풍과 같은 예측가능성이 높은 악기상인 경우 24시간 내지 12시간 전에 결항 여부 결정을 한다"면서도 "급변풍이나 해무 등 예측이 힘든 악기상의 경우 가급적 항공기 출발 4시간 전에 결정해 승객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인간이 변화무쌍한 날씨를 모두 예측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이러한 탓에 간혹 승객들이 탑승수속을 한 뒤에도 갑작스레 항공기가 결항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이는 주로 해무와 같은 저시정, 그리고 바람의 영향이 크다. ◇ "첫눈을 봐도 무덤덤…오직 안전운항!"
운항관리사와 운항담당자들이 가장 우려하는 기상조건은 무엇일까.
현 차장은 "겨울에는 북서풍이 불잖아요.
하지만 봄이 들어서고 여름으로 가면서 남동풍이 불기시작하는데 바람이 한라산을 타고 제주공항으로 돌아오는 과정에 발생하는 급변풍과 양배풍이 항공기 이착륙에 가장 큰 지장을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항공기는 양력(揚力ㆍ뜨는 힘)을 얻기 위해 항상 맞바람을 안고 운항한다.
그런데 바람이 항공기 옆이나 뒤에서 불 경우 양력을 얻기가 어려워져서 이ㆍ착륙에 지장을 초래한다.
항공기를 기준으로 앞면에서 부는 바람은 '정풍', 뒷면에서 부는 바람은 '배풍', 옆면에서 부는 바람을 '측풍'이라고 한다.
특히, 제주에선 활주로 양 끝단에서 바람이 불어오는 양배풍이 큰 문제가 된다.
동서로 길게 뻗은 제주공항 활주로에서 동쪽과 서쪽 어느 한쪽에서 바람이 불어온다면 그에 따라 항공기 진행 방향을 바꾸면 되기 때문에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동과 서에서 수시로 바람이 바뀌어 불어 결과적으로 어느 방향으로 이착륙을 해도 뒷바람을 받게 되는 양배풍이 불면 비행기 이착륙 자체가 어려워진다.
기종과 다른 기상 여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배풍인 경우 바람이 10노트(초속 5.14m) 이상, 측풍인 경우 30노트(초속 15.43m) 이상이면 항공기 이착륙이 어렵다.
이러한 변화무쌍한 제주의 날씨는 항공기에 주입되는 연료 등 모든 부분에 영향을 미친다.
운항관리사가 작성한 비행계획서를 보면 항공기 운항의 모든 변수를 고려한 세심함이 묻어난다.
제주와 김포공항을 오가는 대한항공 여객기 에어버스 330(A330)의 비행계획서에는 총 연료가 2만8천 파운드로 기록돼 있다.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이동에 필요한 연료(1만2천200 파운드) 외에도 날씨 문제로 불가피하게 회항하는 데 필요한 연료(1만500 파운드), 목적지 공항 공중에서 체공할 경우에 대비한 연료(5천600 파운드), 지상 활주로 이동에 필요한 연료(800 파운드) 등이 포함돼 있다. 심지어 어떠한 이유로든 목적지 공항에 착륙할 수 없을 때 사전에 지정된 교체 공항까지 비행하는 데 필요한 연료(3천800 파운드)뿐만 아니라 계산상의 부족함을 보정하는 데 필요한 여분의 연료(4천 파운드)까지 고려해 넣는다.
제주에서 김포까지 55분의 비행시간을 7개의 주요 포인트로 나눠 각 지점까지의 거리와 비행조건, 비행시간, 소모 연료량을 매우 자세하게 기록한다.
모두 승객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조치다.
이렇다보니 운항관리사와 운항담당자들의 가장 큰 애로사항도, 직업병도 '날씨'다.
현 차장은 "슬픈 일이지만 한겨울 내리는 첫눈을 봐도 특별한 감정이 안 난다"며 "눈이 내리면 항공기·활주로 제설작업이 먼저 떠오르고 항공기 지연·결항에 따른 승객과 항공기 안전만 먼저 떠올라 감성을 느낄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 운항을 위해 정보를 주고받으며 상황이 마무리될 때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퇴근하고 나서야 무언가 안전 운항의 첨병이 된 듯한 뿌듯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