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바람이 지휘하고 풀벌레가 협연…우리들의 '클래식 썸머'

클래식 마니아 유혹하는 올여름 음악축제

7월 한달간 슈베르트 연주하는 '줄라이'
대관령 고도에서 즐기는 '평창대관령페스티벌'
'한국의 BBC프롬스' 만드는 롯데클래식레볼루션
여름은 모든 생명이 저마다의 에너지를 한껏 내뿜는 계절이다. 내리쬐는 태양, 녹색이 한껏 짙어진 잎사귀들, 쏟아지는 빗줄기까지…. 눈 닿는 모든 곳에 지금이 ‘절정의 시간’임을 알린다.
수백 년 전부터 그런 계절의 변화에서 영감을 받은 이들은 클래식 작곡가들이다. 클래식 음악은 그래서 자연을 닮았다. 베토벤은 도시 근교로 나가 산책하고 사색하는 걸 즐겼다. 교향곡 6번 ‘전원’엔 각 악장마다 시냇가의 풍경과 폭풍우의 묘사가 담긴다. 멘델스존은 이탈리아의 웅장한 자연과 로마의 아름다움, 찬란한 태양을 사랑했다. ‘사계’로 기억되는 비발디도, 탱고의 거장 피아졸라도, 하이든과 차이콥스키도 계절에서 받은 영감을 음표로 담아냈다.

어쩌면 여름은 우리가 클래식 음악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기 가장 좋은 계절이다. 긴 장마와 무더위에 지친 이들에게 ‘잠시 쉬어가라고’ 열리는 축제들이 국내와 해외에서 7~8월 내내 이어진다. 녹음이 짙고 시원한 강원도 대관령에선 클래식 기타 선율을, 시원한 콘서트홀에서 듣는 장대한 오케스트라의 선율, 도심 속 프라이빗한 공간에서 귀를 간지럽히는 리듬까지…. 성악과 기악, 독주 실내악 오케스트라까지 다양한 편성과 수천 곡의 레퍼토리는 망망대해다. 이 무궁무진한 음악으로 함께 한다면 누구보다 더 넓고 깊은 여행을 떠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오랜 역사와 명성을 지닌 클래식 축제가 지역 명물로 자리잡았다. 영국의 BBC프롬스, 미국의 아스펜 음악제,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축제 기간에는 아티스트와 클래식애호가뿐 아니라 모든 시민이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풍경을 볼 수 있다.

국내에서도 이같은 풍경이 더이상 생소하지만은 않다. 올해부터 본격적인 앤데믹과 함께 국내 클래식 축제가 활기를 띄면서다. 지난 4월 개막한 서울스프링실내악 축제는 '다다익선(多多益善)'을 주제로 전에 드물던 6중주·8중주 등 대편성 실내악을 선보였다.

서울 스프링실내악축제의 시그니처인 윤보선 전 대통령의 안국동 고택에서 열리는 ‘고택 음악회’ 역시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지난 5월 사흘간 열린 평창 계촌클래식축제는 해발고도 700m 산골마을로 전국에서 6500여 명을 불러 모았다. 지난달 열린 서울 예술의전당의 교향악축제 역시 2만 5000여명의 관객을 끌어모았다. 올해는 특히 공연전 프리토크로 흥미와 깊이를 더하고, 음악당 특별 전시실 포토존 등을 마련해 축제 무드를 더했다. 더욱 뜨거워지는 여름 날씨처럼, 클래식 축제도 한층 달아오를 예정이다. 국내 대표 음악축제로 자리매김한 강원도 평창대관령음악제, 롯데문화재단의 '클래식 레볼루션', 더하우스콘서트의 '줄라이페스티벌' 등 굵직한 축제들이 이어진다.


자연을 닮은 클래식

"모든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다."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의 말. 실제로 비발디의 사계, 베토벤의 전원 교향곡 등을 보면 음악가에게 자연은 끝없는 영감과 몰입의 원천이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19)은 과거 언론 인터뷰에서 "산에 들어가 피아노만 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자연 속에서 순수하게 음악에만 몰두하고 싶다는 의미에서다.

이처럼 자연과 예술은 서로 닮아있고, 자연 속에서 우리는 음악의 본질에 한층 가까워진다. ‘진또배기’ 음악이 듣고싶다면 엄숙한 콘서트장을 떠나 신선한 바람과 풀벌레 소리가 반겨주는 이 곳, 강원도 평창을 찾아보자. 국내 대표 클래식 음악 축제 ‘평창대관령음악제’가 이달 26일부터 8월 5일까지 강원 평창군 알펜시아 콘서트홀 등 강원도 일대에서 열린다.
올해 20회를 맞은 음악제의 올해 주제는 자연. 비발디의 ‘사계’, 메시앙의 ‘새의 카탈로그’, 야나체크의 ‘수풀이 우거진 오솔길에서’, 베토벤 교향곡 6번 ‘전원’ 등 풀내음이 느껴지는 레퍼토리로 가득하다. 양성원 감독(첼로)과 양인모(바이올린), 윤홍천(피아노)의 협연으로 개막한다. 세 협연자는 지휘자 최수열이 이끄는 경기필하모닉과 베토벤 ‘삼중 협주곡’을 들려준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존재감이 큰 세 악기가 어떻게 조화를 이뤄갈지가 관전 포인트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알프스 교향곡’도 연주한다. 한 악장으로 구성된 이 곡은 새벽부터 해질때까지 산이 변화하는 모습이 담겼다. '등산 매니아'라면 알프스 산맥의 정취를 음악으로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 아티스트들로는 임지영(바이올린), 김상진(비올라), 김정원(피아노), 김태형(피아노) 김한(클라리넷), 유해리(호른), 서예리(소프라노)와 피아노 듀오인 신박 듀오, 현악사중주단 노부스 콰르텟, 아레테 콰르텟 등이 참여한다.

로데릭 채드윅(피아노), 호세 마리아 가야르도 델 레이(기타), 기욤 쉬트르(바이올린),미치아키 우에노(첼로) 등 신선한 해외 연주자도 다수 포함돼 눈길을 끌었다. 스페인 출신의 세계적인 기타리스트 호세 마리아 가야르도 델 레이는 강원도와 스페인이 어우러진 독특한 정취를 들려줄 예정이다. 탁 트인 대관령 야외공연장에서 평창의 맑은 밤공기과 함께 미누엘 데 파야의 ‘스페인 민요’, 알베니스의 ‘스페인 모음곡’ 등 온화한 에스파냐의 정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특히 화제가 된 아티스트는 우크라이나 악단 ‘키이우 비르투오지 스트링 오케스트라’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탓에 이탈리아에서 체류 중인 이 악단은 음악제의 공식 초청으로 한국을 찾는다. 세계 평화를 위한 축제가 되겠다는 포부에서 이들을 초청했다는 게 음악제 측 설명이다.

전체 프로그램에서 초연곡도 두 곡 포함됐다. 첼리스트 드미트리 야블론스키가 바루크 벌리너의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 ‘야곱의 꿈’을 아시아에서 최초로 들려준다. 국내 대표 현악사중주단 아레테 콰르텟이 들려줄 디눅 위제라트네의 ‘리사 게라르디니의 실종’ 역시 아시아 초연이다.

한·일 차세대 첼리스트가 대미를 장식한다. 2022년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우승자 첼리스트 최하영과 2021년 제네바 콩쿠르 우승자인 우에노 미치아키가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을 선보인다. 최하영이 1악장, 미치아키가 2, 3악장 연주를 들려준다. 이 무대에서는 첼리스트인 양성원 감독이 지휘봉을 들고 평창 페스티벌오케스트라를 이끌며 특별함을 더한다.

레너드 번스타인 집중 탐구

'한국의 BBC 프롬스'를 내건 롯데문화재단의 최대 페스티벌, 2023 클래식 레볼루션이 8월 11일~20일 열린다. 올해는 베를린필 클라리넷 수석이자 지휘자인 안드레아스 오텐잠머가 예술감독을 맡아 화제가 됐다. 오텐잠머는 현재 클래식 레볼루션과 스위스 뷔르겐스톡 페스티벌의 예술감독을 맡고있다. 그는 축제 개막 5개월 전부터 프로그램북 인사말을 준비하는 등 축제에 진심으로 임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2020년 신설된 클래식 레볼루션은 전통과 혁신의 조화를 이룬 런던의 BBC 프롬스처럼 클래식 공연계에 신선함을 불러일으키겠다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첫해 베토벤을 시작으로 2021년 ‘브람스와 피아졸라’, 2022년 ‘멘델스존과 코른골트’ 등 특정 작곡가의 음악을 집중탐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특징이다. 교향곡과 협주곡뿐 아니라 체임버 뮤직 데이를 통해 실내악 공연까지 다룬다.

이번 페스티벌 주제는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레너드 번스타인'. 그의 작품에는 재즈의 영향이 반영됐고, 북미와 남미의 그루브가 등장한다. 번스타인의 '캔디드 서곡'과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의 춤곡'으로 축제의 시작과 끝을 장식한다. 번스타인에게 영향을 준 브람스의 작품을 비롯해 번스타인의 친구이자, 스승, 그리고 그들의 작품에 큰 영향을 준 슈만, 거슈윈, 차이콥스키, 말러, 드보르작의 작품도 포함됐다.

실내악을 선보이는 체임버 뮤직 콘서트 데이는 예술감독이자 클라리네티스트인 오텐잠머를 비롯해 레이 첸(바이올린), 윤홍천(피아노), 한재민(첼로), 조진주(바이올린), 김사라(비올라) 등이 함께 무대를 꾸린다. 이외에도 신창용(피아노), 김유빈(플룻), 황수미(소프라노) 등 전세계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는 국내 정상급 연주자들이 대거 출연한다.마지막 무대는 예술감독인 오텐잠머가 지휘와 협연을 함께 선보이는 특별한 무대를 선사할 예정이다.

연주자의 호흡과 떨림까지… 가장 가까운 음악회

무대와 객석의 최소 거리는 불과 2m. 연주자의 표정은 미세한 숨결과 떨림까지 전해진다. 마루로 된 바닥에서 악기의 진동마저 느껴진다. 7월 한달간 서울 동숭동 예술가의집에서 열리는 더하우스콘서트 여름 음악축제 ‘줄라이 페스티벌’이다.

이 축제는 음악가들의 아지트 역할을 톡톡히 하고있다. 한 달간 축제에 참여하는 연주자만 190명에 달한다. 피아니스트 문지영, 박재홍, 신수정(서울대 명예교수), 이경숙(연세대 명예교수), 바이올리니스트 김현미(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백주영·김다미(서울대 교수) 등 거물급 연주자가 대거 참여한다.

축제는 매년 한 명의 작곡가를 꼽아 그의 작품으로 레퍼토리를 채우는 방식으로 열린다. 2020년 탄생 250주년을 맞은 작곡가 베토벤을 시작으로 2021년 브람스, 2022년 버르토크가 축제의 음악가로 선정됐다. 올해 축제의 주인공은 오스트리아 대표 작곡가 프란츠 슈베르트다.

축제는 위필하모닉오케스트라(지휘 김재원)의 슈베르트 교향곡 5번과 8번 ‘미완성’ 연주로 문을 연다. 매주 수요일에는 피아니스트 김정자 김도현 정지원 문지영이 차례로 슈베르트의 피아노 독주곡을 연주하며 두 명의 피아니스트가 슈베르트의 ‘포핸즈’ 곡을 월요일 마다 들려준다.

슈베르트의 실내악곡 연주도 만나볼 수 있다. 한수진(바이올린), 강승민(첼로), 문지영(피아노)이 선보이는 슈베르트 피아노 3중주 2번이 대표적이다. 마지막 날에는 낮 12시부터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전곡(21곡)을 릴레이로 연주하는 공연이 펼쳐진다. 전체 연주에 10시간이 소요될 예정이다. 줄라이 페스티벌은 도심 속 작은 공간에서 쉼 없이 클래식 팬들을 찾아갔다는 점, 어려운 시기 속에도 작곡가 시리즈와 생중계를 하며 예술의 장벽을 허물어 왔다는 데 그 의미가 있다. 2020년 베토벤 이후로 페스티벌의 주제는 브람스(2021), 버르토크(2022)를 거쳐 슈베르트(2023)로 이어지고 있다. 생중계는 자체 유튜브 채널에서 지금껏 단 한 차례도 빠짐없이 진행된다.

최다은/김수현 기자 max@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