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에코프로 때문"…증권사 떠나는 애널들 [돈앤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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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떠나는 애널들…왜"재능있는 젊은이들이 애널리스트 직종으로 몰리지 않는다. 우수한 보고서를 내놓아도 몸값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이런 환경에선 애널리스트층이 빈약할 수밖에 없다."
"노력 대비 보상 적다" 금전적 불만
"공매도 결탁했냐" 사회적 압박도 이직 계기
1998년 7월 14일 어느 국내 신문에 실렸던 기사 중 일부입니다. 기사가 나온지 꼭 25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크게 바뀐 게 없습니다. 최근에도 금융투자분석사(애널리스트)들이 증권사를 자발적으로 떠나 바이사이드(Buy-Side)인 운용사 등으로 향하는 '이직 러시'가 거셉니다.14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약 3년 경력의 한모 하나증권 주식시황 담당 애널리스트는 이달 말 다올자산운용 벤처캐피탈(VC) 부문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최모 유안타증권 지주사 담당 애널리스트는 약 23년간의 리서치 생활을 접고 지난 3일부터 칸서스자산운용에서 프라이빗에쿼티(PE)본부장으로 출근했습니다.
파생·패시브전략을 전담한 허모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5월 대체거래소인 넥스트레이드 시장운영본부 책임으로 옮겼습니다. 김모 하나증권 크레딧 부문 보조 애널리스트(RA)는 올 2월 한국투자신탁운용의 인하우스 리서치팀으로 갔습니다.
또 김모 유안타증권 퀀트 애널리스트는 작년 7월 PTR자산운용 주식운용부문으로 옮겼습니다. 2018년부터 하나증권에서 보고서를 펴내며 직전까지 해외 크레딧을 담당했던 김모 애널리스트는 작년 6월 삼성자산운용 자산배분운용팀으로 이동했습니다.떠나는 이유야 저마다 다양하겠지만,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래도 공통된 고민이 있었습니다. "인풋 대비 아웃풋(노력 대비 보상)이 미비하다"는 게 주된 이유였습니다. 증권사 내에서 리서치센터는 수익을 내지 못하는 '비용부서'의 이미지가 굳은지 오래라 대우가 예전만 못하다는 불만입니다.
운용사로 이직한 애널리스트 A씨는 "주 52시간제가 시행된 지 5년이 흘렀지만 우리에겐 평일 야근과 주말 출근이 너무 당연했다"며 "일하는 시간 대비 보상을 못받는다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퇴사를 결심했다. 특히 젊은 보조 애널리스트(RA)들 사이에서 퇴사 결정이 많이 이뤄지는 편이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애널리스트를 포기한 B씨도 "운용사에선 여의도 생리를 잘 아는 사람들이 필요하니 애널리스트가 영입 1호 대상 중 하나"라며 "증권사 재직 때보다 돈을 올려서 오긴 쉽지 않지만, 차이가 크지 않다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챙길 수 있는 운용사를 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했습니다.
'금전적' 이유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최근 애널리스트들이 '사회적' 압박에도 시달리고 있단 점입니다. 일단 '매도' 의견을 찾아보기 힘든 증권사 리포트에 투자자들 원성이 높아지면서 당국도 엄포를 놓은 상태입니다. 함용일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최근 증권사 사장들을 불러모아 "증권사들이 (매수 일색의) 관행에 대한 자성 없이 시장 환경만 탓하고 있다"며 "올바른 리서치 문화 정착을 위한 증권업계의 문제 인식과 자정 노력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하지만 이런 비판 시선에 증권가는 "매도 보고서를 내놓아도 비판에선 벗어날 수 없다"고 반박합니다. 목표가·투자의견 하향과 수급이 맞물리면 "공매도 세력과 결탁했느냐"는 음모론까지 쏟아진다는 겁니다.
올 들어서만 주가가 약 10배 폭등한 '에코프로'가 이런 주장을 뒷받침하는 대표적 예입니다. 김현수 하나증권 애널리스트는 올 4월 에코프로에 대해 매도 의견을 내며 "위대한 기업이나 현 주가는 과도하다"고 밝혔는데요. 김 애널리스트 포함해 '배터리 아저씨'로 불리는 박순혁 전 금양 이사가 추천한 에코프로를 깎아내리는 분석을 내놓은 애널리스트 일부는 이른바 '박지모'(박순혁을 지키는 모임) 투자자들로부터 악플 세례를 받았습니다. 수십년 경력의 애널리스트 출신 운용사 한 임원 C씨는 "회사의 실적과 사업영역들을 따져보고 냉정하게 분석하는 게 애널리스트 역할이지 않느냐"며 "우리가 봤을 때 멀티플(배수)이 말도 안 되는데…투자자들이 미디어에 나오는 전문가들에 열광하면서 우리가 소신있는 분석을 내놓으면 이를 평가 절하하고 비난하는 일이 많아지니 우리로서도 한계를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솔 한국외대 교수는 "수많은 논문들에서 입증됐듯 애널리스트가 추천한 종목들로 꾸린 포트폴리오는 시장을 못이긴다. 애널리스트의 역량탓이라기보다는 목표가와 투자의견을 하향하기 어려운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애널리스트가 매도의견을 소신있게 내고 추후 그게 주가로 입증됐을 때 보상을 하는 등 증권사 자체적으로 보상체계가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일례로 카카오뱅크 공모 당시 매도 보고서를 냈다가 투자자들로부터 큰 반발을 샀던 김인 BNK투자증권 애널리스트의 입지는 요즘 '예언 적중가'로 크게 반전됐습니다. 2021년 상장한 직후 한때 9만4400원까지 치솟았던 카카오뱅크 주가는 약 2년 만인 현재 2만5000원선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radi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