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놀자] 기술·지식 융합하려는 생각이 창의성 끌어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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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융합할 결심산업계에선 오래전부터 융합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모색하는 경우가 많았다. 빵만 팔던 상점이 카페를 겸하는 추세가 대도시에선 이미 상식처럼 됐고, 냉장고나 정수기 같은 가전제품에 통신 분야의 기술을 융합하는 경우도 많아져 스마트폰으로 집안의 정수기나 냉장고를 점검하기도 한다.2016년 1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처음 언급한 ‘4차 산업혁명’이란 개념이 있다. 이는 디지털혁명 또는 지식정보혁명으로 정의되는 3차 산업혁명을 기반으로 수학, 물리학, 생물학 등의 기초과학과 정보통신기술의 융합으로 이뤄지는 지식혁명 시대를 의미한다. 4차 산업혁명에서 자주 언급하는 기술로는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로봇공학, 무인 운송 수단, 3차원 인쇄, 나노 기술 등이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를 살펴보면 새로운 산업 발달을 위한 인재 양성에서 기초과학에 대한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새로운 것을 위해 융합이 필요하다는 점은 첨단과학 분야도 예외가 아니다. 2010년 물리학 연구를 위해 남극에 세운 아이스큐브 연구소에선 물질과 거의 반응하지 않는 중성미자라는 미시 입자가 우주의 어느 방향에서 날아오는지 검출하고 있다. 이를 위해 연구소는 1450~2450m 깊이의 구멍들을 뚫고 광센서 5160개를 설치했다. 이 시설은 미국, 독일, 벨기에 등 10개 나라의 과학재단에서 연구비를 조달해 운영한다. 아이스큐브를 만들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연구비를 확보하기 위해 물리학자들이 여러 나라의 과학재단 관계자들을 만나 열심히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설득 과정은 대개 물리학 이외의 것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게다가 남극이라는 혹한의 지역에서 아이스큐브를 설치하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기술이나 지식은 물리학 연구 결과만으로 얻을 수 없는 것도 많았을 것이다.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이라는 새로운 성능의 망원경을 우주에 설치해 아무도 본 적 없는 우주의 모습을 관찰하려면 로켓에 망원경을 싣고 성공적으로 발사해야 한다. 로켓이 잘 발사돼 우주에 망원경이 설치돼도 지상의 안테나를 통해 지구에서 약 150만㎞ 떨어진 곳에 있는 망원경을 운용하는 일도 잘 진행돼야 최종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지구과학 종사자가 우주의 새로운 모습을 관찰하고 싶다면 로켓이나 통신에 관한 지식도 융합할 결심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동시 접속자 수가 4명 이하인 초간단 WiFi 웹서버를 만들 수 있는 마이크로컨트롤러가 판매되기 시작했다. 필자는 이 회로로 측정한 온도센서값을 다른 무선 기기에서 다운로드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인터넷 통신에 관한 기초 지식을 공부해야 했고, 마이크로파이썬이라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사용해야 했다. 필자가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이 회로가 세상에 출시된 지 1년이 안 됐기 때문인지 어느 나라에서도 아직 이렇게 만든 사람은 없었다. 이 장치의 제작 과정을 돌이켜보면 물리학을 가르치는 필자가 필요한 지식은 무엇이든 융합하겠다는 열린 생각을 했기에 가능했다.
융합형 인재 양성을 위해 우리나라는 현재 모든 고등학생이 ‘통합과학’이라는 과목을 이수한다. 융합형 인재는 융합형 과목만을 통해 성장하는 것도 아니니, 모든 교과목이 융합형 인재가 되는 데 필요한 지식을 담았다고 생각해도 좋을 것이다. 하지만 교과서 지식을 습득하는 공부만으론 융합형 인재가 나타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융합은 새로운 것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도움이 되는 지식을 과목의 경계 없이 활용하는 활동이 핵심이기 때문에 미래에 필요한 지식을 지금 모두 알 수는 없다.남극 같은 오지나 로켓 관련 시설에서 융합형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결과를 지향하는 열망이 강할 것이다. 따라서 융합형 인재로 성장하길 원하는 학생이나 그런 학생을 지도하려는 사람은 새로운 과학·기술의 결과물을 보고 듣는 기회를 많이 마련해 흥미와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먼저다. 그 과정에서 ‘융합할 결심’을 하면 좋겠지만, ‘융합을 안 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게 더 우선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