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사는 여자' 신디 셔먼에게 속고 있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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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신지혜의 영화와 영감
# 이 장면, 기억하나요?
여자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는 걸까.
여자를 내려다보는 카메라의 시선은 관람객을 불편하고 긴장하게 만든다.
언젠가 보았던 영화의 한 장면 같아서 계속 바라본다. 생각해내려 애쓴다.
어디서 봤지?
무슨 영화였지?
하지만 당신의 기억과는 다르게 이 장면은 그 어떤 영화의 장면도 아니다.
연출된 프레임.
연출된 사진.
신디 셔먼의 사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사진 / 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 Cindy Sherman on stage part 2 전시장 입구
신디 셔먼의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다.에스파스 루이 비통 서울에서.
Cindy Sherman on stage part 2.
어쩌면 국내에서는 내로라하는 작가군 중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이미 유럽과 미국에서 그의 이름은 유명하고 최고의 작품가를 받는 작가라는 데 이견을 낼 사람이 없을 정도이다.
조금 민감한 사람이라면 이미 2015년, 천수림 편집장이 <사진예술>을 이끌 당시, 신디 셔먼과 그의 작품이 갖는 독창적이고도 특별한 점에 주목해 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해 그를 소개했던 것을 기억할 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2020년 루이 비통은 몇 가지 프로젝트를 통해 신디 셔먼을 선보였고 올해 두 번째 전시에서는 근작을 포함해 신디 셔먼의 핵심작을 관람할 수 있도록 했다.
# 영화 스틸처럼 보이는 사진
그의 사진은 영화의 스틸 컷 같다.
분명히 어느 영화에서인가 본 듯하다.
히치콕의 영화 <마니>에 나오는 티피 헤드렌 같은 이미지도 있고
<나이아가라>의 마릴린 몬로 같은 느낌의 이미지도 있다.
영화 <그것>의 삐에로를 닮은 광대 사진은 분장 이면의 정체를 알 수 없어 섬뜩하고
작은 트렁크를 옆에 두고 자동차를 기다리는 듯 보이는 여자의 뒷모습은 그대로 60년대 미국의 풍경을 담은 어느 영화에서 보았던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정도는 사실 양호한 편이다.
어떤 사진들은 관람자를 불편하게 하고 기괴한 인상을 남기며 컬트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하니까.
어쨌거나 신디 셔먼의 사진은 영화의 한 장면을 닮아 있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작품들은 위에 언급한 티피 헤드렌이나 마릴린 몬로의 이미지는 아니다. 잔 모로, 브리짓 바르도의 한 장면을 떠올리는 모습이다. 그러나 도슨트를 통해서 전시작보다 조금 더 많은 이미지를 볼 수 있고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사진* untitled #107, 1982 *untitled film still #27-B, 1979 * untitled #99, 1982 /
고전 영화들에서 보았던 듯한 사진들. 그러나 당신은 이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영화는 가공의 이야기를 연출 한 뒤 편집을 통해 한 편의 작품으로 만들어진다. 사진의 경우는 대체로 있는 그대로의 어떤 것, 실제의 순간을 포착한다는 느낌이 강하다. (물론 의도되고 연출된 사진도 있고 다큐멘터리 영화도 있지만 말이다)고전 영화들에서 보았던 듯한 사진들. 그러나 당신은 이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셔먼의 작업은 대체로 회화의 인물이나 사진 속 인물을 변형시킨 이미지이거나 두꺼운 분장으로 원래 얼굴 (이미지)를 알 수 없게 만들어 실체를 왜곡, 과장, 확장한다. 그래서 셀프 포트레이트이지만 낯설고 이질적인 느낌을 줄 뿐더러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하지 않음에서 비롯되는 불편함과 기이함을 가지고 있다.
셔먼의 사진은 가공된 이미지를 담는다. 아니 가공된 이미지를 흉내 낸 이미지일 수도 있다. 그러나 실재하는 무엇과 일면 관계를 가지고 있으되 모방이나 복사라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에 흉내라는 것과는 또 다르다.
# 가공과 현실 그 어디쯤, 영화를 닮은 사진 : 시뮬라크르
인간의 기억은 시간과 함께 만들어진다. 실제로 경험했던 것이 기억이 되고 그 기억들이 축적되면서 한 사람의 자아를 이루게 되는데 신디 셔먼의 사진들은 마치 어디선가 본 듯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에 일면 시뮬라크르의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관람자가 작품을 보고 예전에 어떤 영화에서 이 장면을 본 적이 있다고 거짓말을 한다면 그것은 허구이다. 반면 작품을 보고 어디선가 본 듯했다는 느낌을 (실제로) 받고 어떤 영화의 한 장면 (물론 그것은 우연히 비슷한 분위기나 미장센을 가진 장면일 뿐이다)을 기억해 낸다면 그 작품은 실제로 관람자의 기억의 징후를 만들어낸 것이다.
모사할 원본을 가지고 있지 않는 파생실재.
신디 셔먼의 작품은 그래서 더욱 흥미롭다.
사진 / untitled #602, 2019
/ 낯설지 않은 장소,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의 피사체.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장소 또한 기묘한 대칭을 이루고 있어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 낯설지 않은 장소, 어딘가 이질적인 느낌의 피사체.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장소 또한 기묘한 대칭을 이루고 있어 비현실적인 느낌을 준다.
# 마무리
영화는 현재와 현실의 영향을 받는다. 아무리 판타지적 요소가 강하고 미래의 어느 시공간을 그려낸다 해도 결국 이야기의 배경과 흐름, 상황과 인간의 행동은 우리가 경험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것들을 바탕으로 펼쳐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영화는 현실이며 가공이고 허구이며 실제일 것이다.
신디 셔먼의 사진은 그래서 영화와 많이 닮아 있다고 생각된다. 그의 작품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허구이지만 원본을 가지고 있는 듯 하고 그 원본 또한 실제가 아닐 확률이 높다. 단순한 모방과 복제가 아닌 그래서 더 많은 이야기의 층위를 가지고 있는 신디 셔먼의 작품들은 지금도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
사진 * untitled #411, 2003
/ 이 삐에로의 표면 아래에는 어떤 얼굴이 있을지 우리는 아무런 정보를 얻을 수 없다.
*이미지 제공
루이 비통 재단 미술관 컬렉션 / Courtesy of Fondation Louis Vuitton, Paris
ⓒ2023 Cindy Sherman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tro Pictures, New York
*참고 서적
- <시뮬라시옹> 장 보드리야르 / 민음사
- 사진예술 2015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