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설명과 설득 그리고 영업

김홍일 케이유니콘인베스트먼트 대표
스타트업 창업자에게는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와 열정은 가득하지만 이를 실행할 연료인 자본은 늘 부족하다. 부족한 자본 조달을 위해 다양한 형태의 기업설명회(IR)를 한다. 데모데이를 통해서 다수 관객 앞에서 하는 경우도 있고 투자회사 심사역 등을 대상으로 본인의 아이디어와 가능성을 설득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의 자료를 만든다. 발표 연습에도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새로운 질문보다는 주어진 문제에 한 가지 정답을 잘 골라내는 것을 능력이라고 여기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남 앞에서 자신의 생각과 본인이 해결하고 싶은 문제를 설명하고 상대방을 설득해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것을 폄하하는 현실을 자주 맞닥뜨리게 된다. 우리 교육 시스템의 발표와 토론 교육 부재 때문일 수도 있고,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남 앞에 나서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정서적 동일성 추구 문화의 산물일 수도 있겠다.설명과 설득을 다른 의미로 정의하면 ‘영업’이다. 설명, 설득, 영업의 사전적 의미를 보면 ‘설명’은 어떤 일이나 대상의 내용을 상대편이 잘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설득’은 상대편이 이야기를 따르도록 깨우쳐 말하는 것이다. ‘영업’은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이라고 정의돼 있다. 창업가들이 마주하는 IR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본인의 서비스와 제품을 상대방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서 그들이 본인의 이야기를 따르도록 함으로써 스타트업이 영리의 목적을 달성하게 하는 일련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창업자들이 마주하는 대부분의 심사역은 현재 사회가 요구한 ‘정답’을 아주 잘 암기한 좋은 대학 출신으로, 분석적인 성향을 가진 가장 합리적인 관찰자라고 정의할 수 있다.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창업자는 ‘일지오르날’을 차리기에 앞서 242명의 지인 및 업계 전문가와 상담했는데, 무려 217명이 반대했다고 회상했다. 슐츠가 217명의 합리적인 분석가의 반대에 좌절했다면,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당시 500원권 지폐에 그려진 거북선으로 조선소 설립 차관 도입을 설득하지 못했다면,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가 합리적인 반대를 넘어서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우리는 아마도 스타벅스의 커피 문화를 즐기지 못했을 것이고, 현대자동차의 차와 삼성 휴대폰이 아니라 다른 것을 사용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창업자는 IR을 준비하고 질의응답하는 과정에서 평범한 사람은 결코 겪을 수 없는 인생의 성숙을 경험할 수 있다. 연속되는 투자 거절로 인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인의 인격이 부정당하는 경험을 하기도 하지만, 최소한 217번은 견뎌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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