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엄마는 어떻게 할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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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은서의 이유 있는 고전소셜미디어에서는 요즘 바퀴벌레 질문이 유행입니다. “엄마, 내가 바퀴벌레가 되면 어떻게 할 거야?” 질문을 던진 뒤 반응을 보는 거예요. ‘바퀴벌레 질문 놀이’의 원조는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변신>입니다. 1915년 출판된 이 소설은 ‘어느 날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벌레가 된 사람’의 이야기예요.
프란츠 카프카
소설의 첫 문장은 강렬합니다.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 흉측한 해충으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다.” 그레고르의 등은 장갑차처럼 딱딱하게 변해버렸죠. 간신히 고개를 들자 껍데기로 둥글게 싸인 갈색 배가 보이고, 형편없이 가느다란 여러 개의 다리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 와중에 그레고르는 출근 걱정부터 합니다. 외판원으로 일하는 그가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거든요. 그런데 진짜 변신한 건 그레고르가 아니라 그레고르의 가족들인 것 같아요. 그레고르를 대하는 태도가 이전과는 딴판이 돼 버렸어요. 남들과 다른 겉모습을 갖게 된, 그래서 의사소통이 힘들고 더 이상 돈도 못 벌어오는 그레고르를 가족들은 대놓고 멸시합니다.그레고르가 애틋하게 여기던 누이동생은 급기야 부모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게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이렇게 흉측한 존재가 오빠일 리 없고, 만약 저 벌레가 오빠라면 “사람이 이런 동물과 함께 살 수 없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차리고 자기 발로 떠났을 것”이라고요. 다음날 가족들은 죽어 있는 그레고르를 발견합니다. 가족들은 어쩐지 홀가분해 하며 소풍을 나서요.
소설은 ‘인간성’이란 무엇인지 묻습니다. 소설에서는 그레고르의 겉모습이 변하고 말이 통하지 않으니 더 이상 인간이 아닌 존재로 취급받죠. 불쑥 이런 반감이 듭니다. ‘외모가 다르고 말이 잘 안 통한다고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무시해도 되는 걸까.’
그레고르가 출근하지 못하는 몸이 됐다는 것도 의미심장합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 벌 줄 아는 것, 근로자로서 능력은 사람됨의 조건으로 여겨집니다. 소설은 ‘일벌레’이던 그레고르가 그저 ‘밥버러지’가 돼 버린 상황을 통해 묻는 듯합니다. ‘돈 벌지 못하는 사람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닙니까.’이런 카프카의 문제의식은 ‘직장인 카프카’의 경험도 영향을 미쳤을 거예요. 카프카는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에서 태어나 법학을 공부하고 보험회사 관리로 근무했어요.
<변신> 등을 번역한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명예교수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해설에서 “(카프카는) 초기 산업화 사회 산업재해의 피해자들을, 손가락이 잘렸는가 하면 여기저기 다치고 병든 사람들을 날마다 대했다”며 “현대사의 격동기를 체감하고 현대 사회의 문제들을 피부로 느꼈다”고 설명했어요. 소설을 읽다 보면 ‘나’란 무엇인지도 궁금해집니다. 내 겉모습이 다른 사람도 아닌 다른 종으로, 그야말로 변신해버렸을 때 내가 나인 걸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요.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