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 민간인 학살 현장 찾은 尹…'비살상무기만 지원' 원칙 바뀔까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폴란드에서 국경을 넘어 우크라이나로 이동해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수도 키이우 인근 부차다. 이 곳에서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민간인을 학살했던 현장을 둘러보고 묘역을 참배했다. 부차는 지난해 2~3월 러시아군에 점령당했다가 해방된 이후 '우크라이나 영웅 도시' 지위를 받은 곳이다. 러시아군의 잔학 행위가 전세계에 알려지게 된 계기가 된 곳이기도 하다.

러시아군은 이 곳을 점령한 이후 16~60세 남성을 잠재적 위협으로 간주하고 이들을 무차별적으로 사살했다. 실제 우크라이나군이 부차를 탈환한 이후 도시에 진입하자 일부 시신은 길거리에 버려져있었고, 다른 일부 시신은 손이 등 뒤로 묶여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성앤드류 성당 인근 집단무덤에서 67명의 희생자가 발견됐고, 이들 대부분은 40~60세 사이 민간인인 것으로 확인됐다.윤 대통령은 부차에 이어 이르핀을 방문해 민가 폭격현장을 둘러봤다. 민간인 주거지역이었던 이르핀은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이 집중됐던 곳이다. 러시아군은 23일간 도시를 점령했고, 당시 치열한 전투 때문에 이르핀의 사회 및 주거시설의 70%가 파괴됐다.

우크라이나 방어군은 지난해 3월 28일 이르핀을 해방시켰고, 이르핀은 '영웅도시'라는 지위를 부여받았다. 부차와 이르핀은 견디기 힘든 고난을 겪은 지역이자 국토와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굳건하게 싸운 우크라이나의 의지와 용기를 상징하는 곳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윤 대통령은 키이우에 도착해서도 가장 먼저 전사자 추모의 벽을 찾아 헌화를 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보다도 헌화 일정을 먼저 소화했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참상을 눈으로 목격하면서 비살상무기만 지원한다는 원칙이 바뀌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이와 관련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 "불법적인 침략을 받은 나라를 지켜주고 원상회복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선 국제법적으로나 국내법적으로 제한이 있을 수 없다"며 "만약에 민간인에 대한 대규모 공격이라든지 국제사회에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대량학살 등이 발생할 때는 인도적 지원이나 재정 지원에 머물러 이것만을 고집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당시 대통령실은 대량학살 등 상황을 전제로 한 원론적 입장이라며 확대해석에 선을 그었지만, 정치권과 외교가 등에서는 군사무기 지원 가능성을 열어둔 발언이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와 관련 대통령실 관계자는 "살상무기 제공과 우크라이나 방문은 별개의 문제"라며 "대한민국이 그동안 지켜온 원칙 아래 포괄적이고 구체적으로 우크라이나와 한국 간 돕고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바르샤바=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