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세 "내가 죽어도 내 신념은 AI로 미래와 소통…통쾌한 기분"

AI프로젝트 뛰어든 만화가…'천국의 신화'·'아마게돈' 재창조하고파"
"차기작으로 곽경택 감독과 누아르 작품 협업 준비 중"

"인공지능(AI) 프로젝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끔찍하지만 재밌는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요. 나는 죽고 없어지지만, 내 신념과 화풍은 영생을 얻어 100년, 200년 뒤에도 그 시대 사람들과 소통하고 공명한다는 거잖아요.

유한한 생명에 대해 일종의 복수랄까? 어쩐지 조금 통쾌한 기분도 들고요.

"
지난 13일 서울 강남구 개포동 화실에서 만난 이현세(67) 작가는 '이현세AI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이현세AI 프로젝트는 이 작가가 지금까지 그려온 4천174권 분량의 작품 데이터를 AI에 학습시킨 뒤 새로운 결과물을 얻어내겠다는 시험적인 작업이다.

웹툰 업계에서 여전히 AI 활용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한국 만화계의 거목인 이 작가가 나서서 프로젝트에 참여해 이목을 모았다. 이 작가는 AI를 통해 '천국의 신화' 뒷이야기, '아마게돈'의 재창작을 하는 것이 꿈이라고도 밝혔다.

그는 "'천국의 신화'가 중단됐고, 이제는 제 미학이 바뀌어버려 그때의 그림체로 '천국의 신화'를 그릴 수 없다"며 "이럴 때 AI가 완벽히 학습한다면 그 뒷이야기를 마무리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설명했다.

또 대우주의 스케일을 담은 '아마게돈'도 당시에는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했지만, AI를 활용하면 재창작해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표했다. 다만 AI로 이현세의 그림을 학습시키고 결과물을 내는 과정은 사람들의 생각처럼 쉽지 않다.

지금이야 웹툰 속 효과음과 말풍선, 그림 데이터가 모두 분리가 되지만, 예전에 그린 만화책에서는 이를 떼어낼 수 없다.

말풍선을 없애고 나면 여기저기 선이 잘려 나간 인물 그림이 남는데, 이를 AI가 이해하지 못하니 이 작가가 일일이 손으로 그려야 한다는 것이다.
AI가 웹툰 그림체나 요즘 유행하는 패션 등을 반영해 새로 만들어낸 까치도 모두 '이현세의 까치'라고 볼 수 있을까?
이 작가는 이에 대해서 "아이들도 자라면서 변하지만, 변한다고 해서 자기 자식이 아닌 것은 아니다"라며 "누가 까치와 엄지를 트렌디하게 재창조하고 요즘 유행과 합친다고 해도 그것은 여전히 '이현세의 까치'일 것"이라고 답했다.

언제까지 AI가 작품을 만들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는 "우주의 미아가 될 때까지"라며 "지구가 없어지고 난 뒤에도 까치의 메시지와 그림은 계속 살아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AI 프로젝트의 전면에 서 있고, 웹툰 작업도 꾸준히 하고 있지만 이 작가는 여전히 고집스럽게 손으로 그린 뒤 스캔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데뷔 40년이 훌쩍 넘은 현재도 여전히 현역 작가로 왕성히 활동하고 있다.

작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네이버웹툰에서 웹툰 '늑대처럼 홀로'를 연재했고, 이달 6일까지는 10박11일 일정으로 만화가 지망생들과 함께하는 '지옥캠프'를 다녀왔다.

그 원동력으로는 '그리는 즐거움'으로 꼽았다.

이 작가는 "여전히 쓰고 그리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라며 "즐거운 놀이는 지치지 않는다"고 명쾌하게 말했다.

벌써 흥미로운 차기작 작업에도 착수했다.

이 작가는 "곽경택 감독과 협업을 하고 있다"며 "하나의 시나리오를 가지고 곽 감독은 드라마로, 저는 웹툰으로 '투트랙' 제작을 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장르는 누아르며, 레드아이스 스튜디오와 함께 제작한다고 귀띔했다.

요즘 업계에서 가장 트렌디한 웹툰·영상 동시 제작 프로젝트인 셈이다.

'5㎝의 기적'이라고 불리는 경주 마애불을 소재로 한 웹툰도 그릴 계획이다.

경주 남산 열암곡 마애불은 2007년 넘어진 채로 처음 발견됐는데, 지면의 바위와 불과 5㎝의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어 콧날 등 안면부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그는 "(만화 인생) 1기는 자전적인 이야기인 '까치'의 시대고, 2기는 '남벌', '천국의 신화'처럼 어른이 되어 나오는 이야기, 3기는 한국사, 세계사, 신화, 골프 만화처럼 목적성이 뚜렷한 이야기"라며 "이현세 4기를 말하자면 (마애불 웹툰이) 4기에 들어간다는 의미가 있는 상징적인 작업"이라고 덧붙였다.
웹툰이라는 거대한 산업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현 상황을 언급하며 대형 플랫폼들의 역할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 작가는 "지금이 한국 웹툰의 르네상스라고 한다면 지금쯤 메디치 가문이 나와줘야 할 때"라며 "이제는 한국의 이야기 산업에 철학, 미학, 작가주의가 같이 가야 하는데,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등 플랫폼이 이를 키우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말미에는 '공포의 외인구단'이 나온 지 40주년을 맞아 이제는 불혹이 된 까치에게도 한 마디를 남겼다.

"40년이라고 하면 꽤 많이 산 것 같지만 아직 핏덩이거든요.

'세상은 새로움으로 가득 차 있으니 생각하느라 멈춰있지 말고 우물쭈물하지 말라' 이게 저한테도, 까치한테도, 그리고 같이 성장한 팬들에게도 해주고 싶은 이야기예요.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