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을 집어삼킨 폭우…'산사태 취약지역'에서 속수무책 당했다

예천군 전체 66곳 지정…해빙기 2곳 추가 점검·건의
대피방송·안내문자에도 인명피해 못 피해
'물폭탄'에 특히 대비해야 할 '산사태 취약지역'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16일 오전 6시 현재 집계로 경북 예천의 인명 피해는 사망 10명·실종 8명.
산사태로 마을이 떠내려가며 피해를 키운 효자면 백석리는 지도상 '산사태 취약지역' 4곳으로 둘러싸인 지형이다.

산사태 취약 지점 4곳이 1.5㎞ 반경의 꼭짓점 4개로 수해가 난 마을을 감싸고 있다.

'산사태 취약지역'은 2011년 서울 우면산 산사태 이후 집중 호우와 태풍으로 인한 산사태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 산림을 보호하고자 산림보호법에 따라 정한다. 산림청 기초조사와 지자체의 현장 실태조사, 전문가 검증 등을 토대로 위험도를 4개 등급으로 분류한 뒤 산사태 위험이 높다고 판단한 상위 1∼2등급에 해당한 곳을 지자체장이 취약지역으로 지정·고시 집중 관리를 해야 한다.
◇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둘러싸인 마을서 큰 피해
비극은 산사태 취약지역에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효자면 백석리는 산사태로 5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되며 예천에서 인명 피해가 가장 크게 발생했다. 군이 2017년 6월부터 2022년 12월까지 산사태 취약 지구로 지정한 네 지점으로 둘러싸인 곳이기도 하다.

대피소를 각기 백석경로당, 예천곤충연구소, 고향경로당으로 정했다.

이 산사태 발생 5시간 후인 오전 10시 21분께 바로 옆 동네인 효자면 도촌리 한 농막 수로에서 주민 1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산사태로 주택이 매몰되고 4명이 실종된 감천면 진평리도 2019년 10월 취약지역으로 지정된 곳과 불과 640m 거리다.

대피소는 벌방리 노인복지회관로 지정된 상태였다.

은풍면 은산리와 금곡리에서는 2명이 사망하고 3명이 실종됐다.

두 사고지점 가운데에 낀 송월리 산림은 2014년 10월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됐다.

산사태로 주택이 매몰돼 2명이 사망한 용문면 사부리는 2017년 6월 28일 산사태 취약지역으로 지정된 지점과 산 하나를 사이에 낀 마을이다.
◇ 점검하고 대피 방송했지만…"피할 엄두도 못 냈다"
예천군이 지정·관리 중인 산사태 취약지역은 66곳이다.

군은 해빙기인 지난 2월 15일부터 4월 2일까지 47일간 예천군 산림조합과 산사태 취약 지구를 점검하며 산사태 우려 지역 2곳을 추가해 경북도 산림환경연구원에 '2024년도 사방사업지'로 건의했다.

경북도 역시 지난 4월부터 국지성 집중 호우에 따른 산사태 재난에 대비해 산사태 취약지역 5천136곳에 대한 종합 예방 대책을 수립하며 배수로 점검, 대피 유도, 응급조치 등 취약 지역 대응책 마련에 나선 바 있다.

주민 중 '산사태 취약 지역'의 존재를 아는 이를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백석리 주민 정성화(62)씨 "여태껏 산사태가 일어난 적이 없었고, 비가 이 정도로 온 적도 없어서 대피 방송을 계속해도 피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말했다.

주민에 따르면 밤새도록 예천군의 대피 방송과 안내 문자가 계속됐다고 한다.
그러나 유례없는 재난을 대부분 예상치 못했고, 이런 노력은 기록적인 호우 앞에서 많은 피해로 이어졌다.

공공기관 한 관계자는 "어르신들을 경로당이나 마을회관에 모셔다 놓으면 집이 걱정돼 어느새 또 집에 가 계셔서 경찰관을 대동해 설득해서 다시 모시고 온 경우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16일 오전 6시 기준 경북도가 잠정 집계한 도내 사망자 17명 중 '산사태 매몰'로 인한 직접 사인(死因)은 12명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