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무대 오른 사라 오트... 그 발끝에서 베토벤이 울었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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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KBS교향악단, 베토벤 피아노협주곡
크리스티안 라이프 지휘,
'맨발의 피아니스트' 사라 오트 협연
지난 14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피아니스트 알리스 사라 오트(34)가 KBS교향악단과 협연을 앞두고 리허설을 하고 있다. KBS교향악단 제공
협연자인 알리스 사라 오트는 이날도 맨발로 무대에 등장했다. 올해 서울시향과 협연한 파트리샤 코파친스카야 이후 두 번째로 맨발의 연주자였다. 코파친스카야도 마찬가지지만 알리스 사라 오트 역시 맨발로 무대에 오르는게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다. 맨발로 페달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녀는 맨발로 페달을 밟으면서 피아노와 더 가까워진다고 믿는다. 물리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3번에서 오케스트라의 긴 서주가 끝나고, 협연자가 따라 붙으며 1악장이 시작됐다. 알리스 사라 오트는 명료하고 감각적인 터치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을 시작했다. 매순간 반짝이는 터치였다. 순간적으로 톤이나 리듬을 변화시키며, 자신이 얻고자 하는 표현 역시 확실히 성취했는데, 때로는 베토벤 음악의 구조 그 자체보다도, 스스로가 느끼는 표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했다.섬세한 페달 운영이 이를 가능하게 했다. 음악을 리드미컬하게 만들다가도 긴 프레이즈에서는 대범하게 페달을 운용해 작품의 소리를 멋지게 번져나가게 했다. 1악장의 2주제에 이르러서는 노래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왼손으로 베토벤 특유의 '스포르찬도'(그 음을 특히 세게 연주)로 통통 튀는 에너지를 전달하면서 오른손으론 노래를 했다. 서로 다른 캐릭터가 한 음악 위에 올라와 있었다. 3악장에 이르러서는 베토벤의 멋진 유머도 생생하게 표현해냈다.
KBS교향악단 제공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2악장이었다. 2악장을 시작하는 방법은 아주 효과적이었다. 1악장이 끝나고 지휘자는 한참을 지휘봉을 허공에 두고 있었고, 협연자는 침묵 속에서 그대로 2악장으로 나아갔다. 마치 시간이 모두 멈추고, 피아노만 홀로 무대에 있는 것 같았다. 이날 공연에서 베토벤의 가장 깊은 내면까지 갔던 순간이기도 하다. 단순히 여린 음악들이 잘 표현된 걸 넘어서, 음악들 사이의 침묵이 효과적으로 연출됐다. 소리를 가진 음들보다 오히려 침묵이 그 정서를 만드는데 더 큰 역할을 했다. 적절한 침묵 속에서 긴장감은 한층 높아졌다. 1악장과 3악장에 비해 테크닉은 까다롭지 않지만, 표현하기는 가장 어려운 음악임을 보여줬다.
2부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였다. C장조(메이저) 자연의 주제가 우렁차게 연주되면며 작품의 시작을 알렸다. 첫 곡을 C메이저로 시작한 공연이 C단조(마이너)를 지나 다시 C메이저로 돌아오는 순간이었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연주되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는 웅장한 파이프 오르간 덕분에 더욱 위력적으로 들렸다.지휘자는 소리의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다. 그 덕분에 첫 곡인 베토벤의 레오노레 서곡 3번과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이 더욱 입체적으로 들릴 수 있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에서도 거대한 소리 덩어리에 묻힐 목관악기의 작은 주제까지 살뜰히 챙겼다. 한편으론 과장을 해서라도 그 표현들이 무대 위에서 들릴 수 있도록 노력했다.
프랑크푸르트 방송 교향악단에서 날아온 객원 악장의 활약도 눈부셨다. 솔로파트 뿐만 아니라, 큰 몸 동작으로 오케스트라 전체를 리드했다. 가장 선두에서 노를 잡았다.
말러나 브루크너의 음악도 연주하기 무척 까다롭지만, 국내 오케스트라의 무덤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라고 생각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처럼 온갖 두꺼운 소리들이 아주 여린 소리들과 균형을 맞추고, 또 그 질서를 단단히 잡고 있어야 하는 작품은 더욱 그렇다. 그 어떤 오케스트라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를 자주 연주하는 천하의 빈 필하모닉조차 작년 내한공연 당시 완벽한 연주를 보여주진 못했다(물론 눈부시게 아름다웠지만).그런 의미에서 이날 KBS교향악단의 공연은 자신들의 기량을 상회했던 공연이었다. 물론 ‘과학에 관하여’에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설계해둔 푸가가 온전히 드러나지 못하기도 했고, 또 후반부에 진입해서는 단원들의 체력적인 한계로, 앙상블이 불안하고 잦은 실수들이 나왔다.
하지만 중요한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입체적인 음향을 실제 무대로 즐길 수 있었다는 점이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자체가 척박한 국내 여건 속에서 그의 음악을 실연으로 즐길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특별한 공연이 아닐까.
허명현 음악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