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공방(漢詩工房)] 買蓑觀漲而還(매사관창이환), 金時習(김시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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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장마로 인해 돌아가신 모든 분들의 명복을 빌며, 수해를 입은 모든 분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말씀을 올립니다.[원시]
買蓑觀漲而還(매사관창이환)

金時習(김시습)

百錢新買綠蓑衣(백전신매록사의)
觀漲溪橋帶晩歸(관창계교대만귀)
細雨斜風吹不斷(세우사풍취부단)
一肩高聳入蓬扉(일견고용입봉비)[주석]
* 買蓑(매사) : 도롱이를 사다. / 觀漲而還(관창이환) : 불어난 물을 구경하고 돌아오다.
* 金時習(김시습) : 본관은 강릉(江陵)이고 자는 열경(悅卿)인데, 호로는 매월당(梅月堂), 청한자(淸寒子) 등 여러 개가 있다. 3살 때부터 시를 지을 줄 알아 신동으로 소문이 났고, 이를 들은 세종이 5살 때 불러다 상을 주어 ‘오세(五歲)’라는 별호를 얻기도 하였다. 그러나 수양대군(首陽大君)이 단종(端宗)을 내몰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는 책을 태워버리고 중이 되어 전국을 방랑하며 살다가 부여의 무량사(無量寺)에서 생을 마쳤다. 평생토록 단종에 대한 절개를 지킨 것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유불(儒佛)을 관통한 사상과 빼어난 문장으로 일세를 풍미하였다. 시호는 청간(淸簡)이다.
* 百錢(백전) : 백 전. 시인이 상당한 돈이라는 뜻으로 사용한 말이다. / 新(신) : 새로. / 買(매) : ~을 사다. / 綠蓑衣(녹사의) : 초록 도롱이, 푸른 도롱이.
* 溪橋(계교) : 시냇가 다리. / 帶晩歸(대만귀) : 저물녘에 돌아오다.
* 細雨(세우) : 가랑비. / 斜風(사풍) : 비껴 부는 바람, 엇비슷하게 스쳐 가는 바람. / 吹不斷(취부단) : (바람이) 그치지 않고 불다.
* 一肩(일견) : 한 어깨, 한쪽 어깨. / 高聳(고용) : 높이 솟다, ~을 높이 세우다. / 入蓬扉(입봉비) : 쑥대 사립문을 들어가다, 쑥대 사립문을 들어오다. ‘蓬扉’는 쑥대로 엮은 엉성한 사립문을 가리키는데, 보통 은자나 빈자의 처소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번역]
도롱이를 사서 <걸치고> 불어난 물 구경하다가 돌아오다


백 전으로 새로 산
푸른 도롱이 걸치고
시내 다리께 불은 물 구경하다
저물녘에야 돌아왔노라
가랑비에 비끼는 바람
그치지 않고 불어도
한쪽 어깨 높이 세우며
쑥대 사립문 들어왔지[번역노트]
역자가 보기에 이 시는, 매월당 선생이 저자[시장]에서 무엇인가 볼일을 마쳤을 무렵에 갑자기 비가 후득이기 시작하자 큰맘 먹고 푸른 빛이 감도는 새 도롱이를 하나 사서 걸치고 돌아오다가, 시냇가 다리께에 이르러 불어난 물을 꽤 오래도록 구경하고 귀가해서 지은 시로 추정된다. 백전(百錢)이라는 돈을 요새 시세로 얼마로 환산할 수 있을지 잘은 몰라도 최소한 만만한 돈은 아니었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에 역자가 의도적으로 ‘큰맘’이라는 말을 쓰게 되었던 것이지만, 어쩌면 집에 있는 도롱이가 너무 낡아 폐기할 때가 거의 다 되었을 터라 새로 샀을 수도 있을 법하다.

어쨌거나 비가 내려 새로 사서 걸친 도롱이가 시인의 맘을 어지간히도 흡족하게 했던 모양이다. 무엇인가를 새로 샀을 때 느끼게 되는 기쁨 내지 뿌듯함은 기실 시인만이 느낄 수 있는 특수한 감정은 아니지만, 시인처럼 이를 시로 노래한 사람은 있었다손 치더라도 결코 많지는 않았을 것으로 짐작된다. 시인이 임시에 느꼈을 기쁨 내지 뿌듯함은 마침내 호기(豪氣)까지 더하여, 저물도록 돌아가기를 잊게 하였다. 중국 신안(信安)의 석실산(石室山)이라는 데서 동자(童子)들이 두던 바둑을 구경하느라 도끼자루가 썩는 줄도 몰랐다는 그 옛날 진(晉)나라 사람 왕질(王質)에 비할 바는 아니라 하더라도, 시인에게는 불어난 물을 구경하는 재미가 무척이나 쏠쏠했을 것이다. 더욱이 모양 나게 새로 산 도롱이까지 걸치고 있었음에야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3대 구경거리 가운데 하나로 일컬어져 온 ‘물 구경[觀漲]’은 홍수가 나 마을이 쓸려가는 것과 같은 참혹한 상황을 지켜보는 게 아니라, 비 때문에 불어난 하천을 굽어보는 것이다. 곧, 범람하지 않은 물을 구경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타인의 아픔을 즐기는 것으로 여길 필요는 없다.

이렇게 역자가 이 시의 제1구와 제2구의 함의를 나름대로 풀어보았는데, 이 과정에서 역자의 눈길을 오래도록 머물게 한 단어로는 단연 ‘도롱이[蓑]’를 들 수 있다. 이 글을 읽고 있을 사람들 가운데 아직 젊거나 어린 독자라면 아마도 도롱이의 실물을 본 적이 없을 공산이 매우 크다, 아니, 어쩌면 역자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야말로 도롱이의 실물을 본 마지막 세대가 되는 게 아닐까 싶다. 역자는 초등학교 시절에 도롱이를 걸친 마을 어른들을 이따금 뵐 때마다, 짚으로 만든 도롱이를 걸치면 몸이 쉽게 젖을 것이고 비를 오래 맞으면 으레 그렇듯 추울 것으로 생각했더랬다. 그 당시에 이미 우산이나 비옷과 같은 신식 우장(雨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롱이가 생각 밖으로 따뜻하고 비에 잘 젖지 않는다는 얘기와 함께, 도롱이만 걸치면 머리가 젖기 때문에 삿갓을 써야 한다는 얘기를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던 기억이 아련하기만 하다.각설하고, 이 시 제3구의 그치지 않는 비바람을 순탄하지 못한 인생행로에 대한 비유(譬喩)로 볼 수 있는 것이라면, 제4구에서 구현된 시인의 모습은 그 길 위를 의연하게 걸어가고 있는 시인의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투영된 의지(意志)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처지가 고단하다고 해서 언제나 괴로움이나 슬픔 같은 것만을 안고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고단한 처지 속에서도 무엇인가 의미를 찾고 또 얼마간 즐거움을 느끼면서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그의 삶은 찬사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제4구의 ‘쑥대 사립문[蓬扉]’이 은자적 삶을 추단(推斷)하게 하는 주요 단서로 쓰이기는 하나, 시인이 이 시를 통해 세속의 소소한 행복을 얘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자면 초속적(超俗的)인 은자의 모습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속(俗)에 살면서도 속에 물들지 않은 은자라고나 할까?

가난한 사람들은 자질구레한 소품들이 가져다주는 행복감을 잘 안다. 그러므로 그런 소품들을 통해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매월당 선생이 느꼈을 그 소확행을, 누릴 수 있는 것이라면 다 누릴 수 있었을 당시 고관대작들은 아마 절대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하여 그 당시나 심지어 지금에도 매월당 선생이 누린 그 소확행을 무슨 궁상쯤으로 치부하는 사람들 역시 없지는 않을 듯하다.

이제 어느 시골에 가도 도롱이를 걸친 농부를 만날 수 없는 시절이 되었다. 겨우 정통 역사극에서나 만날 수 있는 도롱이와 같은 물건들을 떠올리노라면, 역자는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짙은 그리움을 지울 수가 없다. 우리 집 큰애가 말아 먹은, 역자의 결혼식 주례사와 같은 것도 담겨 있었던 카세트용 크롬 테이프는 물론, 그 크롬 테이프 자리를 대신했던 씨디(CD)까지도 유물 취급을 받는 시대가 되었으니, 이미 환갑을 넘겨버린 역자가 골동품으로 간주되는 게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리하여 역자는 ‘양자강(揚子江) 뒷 물결이 앞 물결을 밀어낸다.[長江後浪推前浪]’는 말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세월이라는 강을 고요히 떠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마치 불어난 물에 떠내려가는 그 무엇인 것처럼……

오늘 역자가 소개한 매월당 선생의 시는 칠언절구(七言絶句)이며 압운자는 ‘衣(의)’, ‘歸(귀)’, ‘扉(비)’이다.

2023. 7. 18.<한경닷컴 The Lifeist> 강성위(hansh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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