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없이는 꽃도 없다"…세계랭킹 42위, 윔블던의 기적을 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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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케타 본드로우쇼바, 윔블던 대회 여자단식 우승"비 없이는 꽃도 없다(no rain, no flowers)."
윔블던 역대 최저 랭킹 우승·최초 '논시드' 우승자 기록
마르케타 본드로우쇼바(24·체코)의 오른쪽 팔꿈치 위에는 이같은 문구가 새겨져있다. 몸 곳곳에 자신이 좋아하는 꽃과 숫자(13) 등을 그려넣은 그가 이 문구을 새긴 것은 스스로에게 자신감을 불어넣기 위해서다. 그는 영국 더 선에 "실패 없이 성공도 없다는 뜻”이라며 “실패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믿는다면 결국 보상이 따를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본드로우쇼바가 긴 비를 맞은 끝에 화려한 꽃을 피워냈다. 15일(현지시간) 영국 런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윔블던 테니스대회 여자단식 결승전에서 세계 6위 온스 자베르(29·튀니지)를 2-0(6-4 6-4)으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생애 첫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따내며 우승상금 235만 파운드(약 35억1000만원)을 품에 안았다.
이번 대회 초반, 본드로우쇼바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 선수였다. 세계랭킹 42위, 지난해 왼쪽 손목 수술을 받으며 조금씩 잊혀져가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드로우쇼바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여자 테니스 역사를 새로 썼다. 윔블던 여자 단식에서 세계랭킹 40위대 선수가 우승한 것은 여자 테니스 세계랭킹이 시작된 1975년 이후 본드로우쇼바가 처음이다. 윔블던 여자 단식에서 지난해까지 가장 낮은 세계 랭킹으로 우승한 기록은 2007년 세계랭킹 31위로 우승한 비너스 윌리엄스(미국)였다. 윔블던 대회 여자단식 최초로 시드없이 우승하는 기록도 세웠다. 이번 대회는 랭킹 상위 32위에게 대진 배정을 위한 시드를 배분하는데 본드로우쇼바는 시드를 받지 못한 채 대회를 시작했다. 시드는 상위 랭커들이 초반에 맞붙지 못하도록 대진을 분배하는 제도다. 시드를 못받는 하위랭커는 그만큼 초반에 강자를 만날 가능성이 높아 우승확률이 떨어진다. 본드로우쇼바도 한때는 잘나갔다. 2019년 프랑스오픈에서 준우승을 차지했고 2021년 도쿄 올림픽에서는 은메달을 따냈다. 당시 일본 테니스의 간판 오사카 나오미(26)를 꺾는 파란을 일으켜 주목받기도 했다.
하지만 왼손목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두번째 수술을 받고 6개월동안 라켓을 잡지못했다. 지난해 윔블던 대회는 손목에 깁스를 한 채 관중석에서 친구를 응원했다고 한다. 본드로쇼바는 당시 자신의 상태에 대해 "뼈가 몸속에서 떠다녔다"고 말했다. 세계랭킹은 100위 밖으로 떨어졌고, 4년간 그를 후원했던 나이키는 계약을 종료했다. 재기 희망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본드로우쇼바는 보란듯이 이겨냈다. 후원사가 없어 브랜드 없는 옷을 입고 출전한 그는 7경기 가운데 시드를 받은 선수를 5번 만나 모두 이겼다. 제시카 페굴라(4위·미국)와 8강에서는 1세트를 내주고, 2세트에서도 게임 스코어 1-4로 끌려가던 경기를 뒤집었다.
결승전에서는 지난해 준우승자 자베르를 만났다. 현장에서는 역사상 최초의 아랍계을 노리는 자베르에게 일방적인 응원이 쏟아졌다. 1, 2세트 모두 자베르가 먼저 본드로우쇼바의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며 앞서 나갔다. 하지만 고비마다 자베르는 실책을 범했고 본드로우쇼바는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결국 본드로우쇼바는 마지막 공격을 네트 앞 발리로 마무리하며 1시간 20분만에 우승을 확정했다. 이날 경기에서 본드로우쇼바는 공격 성공 횟수에서 10-25로 뒤졌으나 실책은 13-31로 훨씬 적었다. 우승이 확정되자 본드로우쇼바는 필드에 드러누워 눈물을 쏟았다. 그는 "테니스는 미쳤다. 내가 여기서 우승컵을 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감격했다.
이번 대회 우승으로 그의 몸에는 윔블던을 상징하는 문신이 추가될 예정이다. 그는 "윔블던에서 우승하면 코치인 얀 메르틀이 문신을 새기겠다는 약속을 했다"며 환하게 웃었다. 코치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우승인 셈이다.
조수영 기자 deline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