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인류세(人類世)

캐나다에선 올 들어 남한 면적에 해당하는 10만㎢ 이상의 산림이 불에 탔다. 그리스에선 낮 최고기온이 40도를 넘어서자 파르테논 신전 운영을 중단했다. 유럽을 비롯해 미국 일부 지역은 50도에 육박하는 살인 더위에 시달리고 있다.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지난달이 1850년 관측 이래 가장 더웠다고 발표했다. 올 들어 기후 재난으로 인한 미국의 피해액은 120억달러(약 15조원)다. 이미 작년 한 해(180억달러)의 3분의 2 수준에 도달했다.

전례없는 기후 변화 탓에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미증유의 재해가 속출하자 학계에선 인류세 도입 논의가 활발해졌다. 인류세(人類世·Anthropocene)는 인류를 뜻하는 ‘anthropo-’에 지질시대의 한 단위인 세(世)를 뜻하는 ‘-cene’을 결합해 만든 용어다. 인류세 논의가 시작된 계기는 2000년 멕시코에서 열린 지구환경 관련 국제회의다. 이 회의에서 네덜란드 출신 기후과학자이자 1995년 노벨화학상 수상자인 파울 J 크뤼천은 “우리는 인류세에 살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류가 온실가스, 핵 등 방사성 물질로 지구를 크게 변화시킨 만큼 우리가 살아가는 지질시대 명칭을 홀로세(약 1만 년 전 시작된 신생대 4기의 마지막 연대)에서 인류세로 바꿔야 한다는 얘기였다.국제지질학연맹은 2010년께 산하에 ‘인류세 워킹그룹(AWG)’을 꾸리고 인류세 연구에 착수했다. 최근 AWG는 인류세를 대표할 지층인 ‘국제표준층서구역’으로 캐나다 크로퍼드 호수를 선정해 발표했다. 인류세 도입 여부는 내년 8월 부산에서 열리는 세계지질과학총회에서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인류세 도입에 반대하는 학자도 많다. 인간에 의한 지구 파괴를 강조하는 정치적 목적이 강하다는 게 그 이유다. 인간이 지구를 변화시켰음을 확인하기에 인류의 역사가 너무 짧다는 주장도 있다. 인류가 농경과 산업, 문명을 일군 시간은 지구가 속한 우주의 나이와 비교하면 극히 짧은 찰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지금의 기후 발작이 인류에 의해 초래됐는지, 드넓은 우주에 속한 작은 지구의 자체적인 변화인지는 알 길이 없다. 분명한 것은 점점 더 난폭해지는 재해에 맞서기 위해 인류가 지혜를 모아야 할 때란 사실이다.

전설리 논설위원 slj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