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물건에도 '손맛'이 있다

홍지수 '미술평론가, 크래프트믹스(CraftMIX) 대표'
남의 말은 잘 듣지 않고 자기 말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친해지고자 혹은 배려 차원에서 열심히 상대의 말을 경청하지만, 이게 지속되다 보면 집중도도 떨어지고 피로해진다. 어쩌다 내 이야기를 꺼내도 상대가 공감은커녕 자기주장만 하면 관계는 불편해지고 다음엔 이 사람을 만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사람과 사람 사이 관계뿐 아니라 사람과 물건 사이에도 소통이 있다. 우리는 매일 많은 물건을 사용한다. 기계가 만든 공산품도, 인간의 손으로 만든 공예품도 있다. 사용자 관점에서야 디자인 예쁘고, 가격 싸고, 사용하기에 불편하지 않으면 공산품이든 수제품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기계가 만든 물건과 손으로 만든 물건의 속성은 다르다.

사람은 물건과도 소통한다

같은 용도라도 ‘자기중심적’ 사물이 있고 ‘타인중심적’ 사물이 있다. 소통과 공감이 안 되는 사람과의 대화가 피곤한 것처럼 자기중심적인 사물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자기중심적 사물은 대부분 산업생산 시스템 속 기계가 만든다. 기업이 제각각 다른 인간의 몸 구조, 욕망, 필요를 알맞게 채워준다면 좋겠지만 대량생산 시스템은 인간의 불완전함과 복잡함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다. 서로 다른 요구에 일일이 부응할 수도 없다.

머그컵을 예를 들어보자. 카페에서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 모습을 살펴보면, 같은 컵이라도 사람마다 사용법이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검지와 중지를 손잡이에 휘감아 컵을 잡는다. 어떤 이는 검지, 중지, 약지만 사용한다. 비슷한 습관을 지녔어도 컵을 잡는 손의 형태와 손가락의 굵기, 힘에 따라서도 사용하는 방식이 다르다.

공산품엔 없는 수제품의 매력

손자국 없는 매끈한 질감과 간결한 형태를 선호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질감이 거칠고 불맛과 수공 흔적이 물씬한 것을 좋아하는 이도 있다. 조금 무게가 나가고 불편하더라도 나의 손과 입술로 느끼는 질감이, 손으로 넘기고 쓰다듬는 동작의 쾌감이, 나의 눈으로 본 반짝이는 순간이 좋아서 물건을 소유하고 오래 사랑하기도 한다.이런 수많은 변수에 ‘맞춤형’으로 응대하고 소통할 수 있는 일은 사람이 기계보다 우위에 있다. 공예가들은 오래전부터 개인화된 맞춤 제조 방식으로 물건을 만들어왔다. 기계는 사용자들의 행동과 취향 등을 평균화해 그에 상응하는 보편적 디자인을 제품화한다. 하지만 공예가는 사용자의 요구에 개별적으로 대응한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공예가가 자연재를 가지고 자연법칙에 순응하며 오랫동안 유일성과 개별성, 협업 정신을 추구하는 생산 시스템을 추구해왔기 때문이다.

생산의 표준화, 제품의 규격화, 공정의 단순화 등을 통해 만들어낸 물건에는 획일주의가 스며들어 있다. 물론 가격이나 공급 측면에서 기계 생산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내가 매일 사용하는 물건이 나와 맺는 관계와 변화를 생각해본다면 가격이나 외양만으로 물건을 사기는 망설여진다. 기왕이면 물건에 나의 몸과 취향을 꿰맞춰 살기보다 선한 가치와 공력이 담긴 물건, 이야기가 담긴 사물과 인연을 맺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