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코르뷔지에와 한국 전통 건축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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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년만에 리모델링한 佛대사관서울 서소문로 빌딩 숲 사이에는 한국 건축의 걸작이 숨어 있다. 한국 현대건축의 선구자로 불리는 고(故) 김중업 건축가가 설계한 주한프랑스대사관 건물(사진)이다. 1962년 완공돼 한국과 프랑스 양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했다.
佛 거장 손길이 닿은 뼈대에
한국의 美 담은 건물 새로 지어
이 프랑스대사관이 61년 만에 새 단장을 했다. 5년간의 리모델링 작업을 거쳐 지난 4월 개관식을 열었다.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대사는 14일 대사관에서 개관 후 첫 기자간담회를 하고 “이곳에는 한국의 얼이 살아 숨 쉰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리모델링은 김중업의 유산을 계승하면서도 늘어난 대사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을 조성하는 데 초점을 뒀다. 1962년 완공 당시 프랑스대사관은 정사각형 건물에 처마 모양 지붕을 얹은 파빌리온(대사 집무실)과 직사각형 대사관저 두 개 건물로 구성됐다.
리모델링에 참여한 조민석 매스스터디스 대표와 윤태훈 사티코리아 대표는 수직과 수평의 특징을 지닌 업무공간 두 개를 신축하기로 했다. 그렇게 파빌리온을 중심으로 10층 높이 업무동인 몽클라르관과 55m 길이 장루이관이 탄생했다. 몽클라르관은 대사를 비롯해 직원들이 업무하는 공간으로, 장루이관은 대사관 방문객을 맞는 데 쓰인다.
신축 건물에는 김중업의 건축 언어가 깃들었다. 김중업은 프랑스 건축 거장인 르코르뷔지에에게 배웠고, 여기에 한국 전통 건축양식을 결합했다. 대사관 초기 설계는 경북 영주 부석사에서 영감을 얻었다. 건물 위에 처마를 얹은 형태, 여러 각도에서 봐야 전체를 알 수 있는 파빌리온 형태 등이 그 영향이다.리모델링팀은 여기에 착안해 사찰처럼 여러 건물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구조를 만들어냈다. 보행자가 건물 사이로 거닐 때 예술적 효과를 느낄 수 있도록 한 르코르뷔지에의 ‘건축적 산책’ 개념도 담았다.
몽클라르관과 장루이관에도 르코르뷔지에와 한국 전통 건축의 개성이 살아있다. 몽클라르관은 철골을 그대로 드러내게 해 외벽과 실내 사이에 공간을 뒀다. 기둥이 하중을 지탱하되 내부 입면을 자유롭게 한 르코르뷔지에 건축 원칙이 드러나는 요소다. 동시에 한국 전통 건축의 처마가 연상된다. 정민주 사티코리아 디렉터는 “김중업의 건축적 언어를 따라갈지, 대비시켜서 각각의 특징을 살릴지 고민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김인엽 기자 insid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