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같은 삶을 살았던 칼로의 마지막 외침…"인생, 만세!" [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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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댓글 기대평 이벤트]여름철 무더위에 당장이라도 베어 물고 싶은 싱싱한 수박이 화폭을 가득 채우고 있다. 가운데 원통의 덩이를 중심으로 설익은 수박부터 잘 익은 수박까지 다양하게 배치됐다. 그 중 먹기 좋게 조각난 한 덩이에는 '비바 라 비다'라고 적혀있다. 영국 록밴드 콜드플레이의 노래 제목으로 익숙한 이 문구는 스페인어로 '인생이여 만세'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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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퍼의 빛과 바흐의 사막
김희경 지음
한경arte
352쪽│1만8800원
멕시코 출신의 화가 프리다 칼로(1907~1954)가 생애 마지막으로 그린 '비바 라 비다'(1954)다. 새파란 하늘과 갈색 땅을 배경으로 배치된 다양한 모습의 수박들은 인생이란 무대를 떠올리게 한다. 생동감 넘치는 색으로 인생을 예찬하는 메시지를 남긴 칼로는 이 작품을 완성하고 8일 뒤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정작 칼로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6살에 소아마비에 걸려 다리를 절었고, 18세에 교통사고를 당한 뒤 평생 후유증에 시달렸다. 나이를 먹고는 남편과 여동생이 불륜을 저지르고 있었단 사실을 마주해야 했다. 임종을 앞두고 오른발이 썩어 잘라냈고, 몸을 가누지 못해 병상에 누워 지내야 했다.
그렇게 몸과 마음이 지친 1953년. 칼로는 고향 멕시코에서의 첫 개인전에 나서며 이런 말을 남겼다. "이 외출이 행복하길. 그리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길." 생애 마지막 순간 '인생이여 만세'를 외치면서도, 다시는 돌아오지 않길 바랐던 걸까. 칼로의 삶을 알고 나면 그 복잡하고 이중적인 마음이 조금은 이해되는 느낌이다. 그림에는 화가의 삶과 철학, 감정이 녹아 있다. 음악의 선율도 작곡가의 생애를 알면 다르게 들린다. <호퍼의 빛과 바흐의 사막>은 오랜 시간 사랑받은 클래식 예술가 39인의 삶과 작품을 다룬 책이다. 예술가들의 인생도 칠흑 같은 어둠이나 막막한 사막처럼 느껴진 순간들이 있었다. 그 안에서 빛과 길잡이가 돼 준 그들의 작품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이다. 책은 음악과 미술을 넘나든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예술경영 겸임교수인 저자는 문화부 기자로 활동할 당시 클래식 음악과 미술을 '7과 3의 예술' '영화로운 예술' 등 칼럼에서 엮어왔다. 이번 책에서는 같은 음악가였던 아버지의 견제로 오랜 시간 재능을 뽐내지 못한 슈트라우스 2세의 비화와, 잘나가던 궁정화가였던 프란시스코 고야가 어둡고 잔인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사연 등을 풀어낸다.
저자는 9장에 걸쳐 예술가들을 주제별로 묶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에는 칼로와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빛으로 바라본 건 어둠이었다'에는 에드워드 호퍼와 에드가르 드가가 등장하는 식이다. 책에 수록된 명화 도판과 QR코드로 본문에 언급된 그림과 음악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클래식 예술이 어렵다고 느껴 멀리하는 사람들, 클래식을 좋아하더라도 새로운 각도에서 감상하고 싶은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 책이다. 책을 읽고 더 많은 예술가의 삶과 작품이 궁금해졌다면 저자의 전작 <브람스의 밤과 고흐의 별>을 함께 읽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