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는 배고프다"…남 끼니 만드느라 '굶는 날'이 더 많은 우리

[arte] 장준우의 씨네마 브런치
(2022)
처음 보는 누군가에게 요리하는 일이 직업이라고 이야기하면 종종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 “와! 그러면 맛있는 거 많이 드시고 좋으시겠어요!” 사실 진지한 대답을 바란 질문이 아니란 걸 알지만 그럴 때마다 진지하게 대답하고 싶어 좀이 쑤신다. 대개 웃음으로 답을 대신하지만 내심 질문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정말로 요리사는 맛있는 걸 많이 먹는 직업일까.

맛있는 음식을 만들기 위해선 맛있는 음식을 먹어봐야 한다는 논리라면 어느 정도 맞다고 할 수 있겠다. 또 요리사라면 본인이 만든 음식을 맛을 봐야 하고, 맛없는 음식을 만들어 낼 수 없으니 본인이 만든 맛있는 음식을 매일 맛보는 게 아니냐는 논리라면 이 또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해 보니 요리사란 매일 맛있음의 세계에 빠져있는 황홀한 직업처럼 느껴진다. 안타깝지만 요리사의 현실은 황홀함과는 꽤 거리가 있다. 맛있는 음식을 만드려 애쓰지만 정작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닐 여유도 없고 만든 음식이 늘 맛있으리란 법도 없다. 마치 완벽한 도자기 하나를 위해 수십 개의 도자기를 깨는 장인 마냥 하나의 완성된 맛있는 음식을 위해 수십 번의 맛없음을 감내해야 하는 게 요리사의 숙명이랄까.

요리사의 의의란 본인이 맛있는 걸 먹는 게 아니라 만드는 데 있다. 맛있는 음식을 온전히 즐기는 건 최종 소비자의 몫이다. 정작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는 자신이 만든 음식을 즐기지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단지 음식을 맛있게 먹는 손님을 보며 보람을 느낄 뿐이다. 온 힘을 다해 그날의 서비스를 완벽하게 마치면 다가오는 내일을 위해 또다시 일을 반복한다. 마치 끊임없이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지프스처럼.
<더 베어>는 이 같은 요리사의 숙명과 주방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묘사해 준다. 음식과 요리사를 다룬 많은 영상물들이 무대 위 밝은 부분을 비춰주었다면 <더 베어>는 무대 뒤편을 가리고 있던 커튼을 활짝 열어젖힌다. 주인공 카미는 미식계에서 전도 유망한 셰프였지만 부모님이 물려준 식당을 운영하던 형이 죽고 나자 고향인 시카고로 돌아온다. 형이 남긴 건 엉망진창인 식당과 통제불능의 오합지졸 직원들, 그리고 상당량의 빚 뿐. 드라마는 어떻게든 식당을 운영해 나가기 위해 분투하는 카미의 모습을 그린다. 주방에서 진땀 흘리는 주인공을 보며 처음 식당을 오픈했을 당시가 떠올랐다. 나름 야심 차게 준비한다고 했지만 처음이라 일은 제대로 되지 않고 하면 할수록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것 같은데 손님이 올 시간은 다가오는 그 참담한 심정이란.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숨어 들어가고 싶지만 새 주방이라 쥐구멍도 없는 상황에서 맞는 손님들, 음식이 좋았다고 하지만 진심인지 아닌지 믿을 수가 없어 매일매일 머리를 쥐어뜯었던 암담한 시간들, 야속하게 찾아오는 내일 등 요리사이자 셰프, 그리고 식당 오너로서 겪을 수 있는 스트레스와 압밥감은 그동안 겪었던 어떤 고난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엉겁결에 오너셰프가 된 카미 역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제대로 잠도 못 자고, 겨우 잠들면 꿈에서 자꾸 물건들이 없어지고, 곰이 나타나 자신을 집어삼키려고 하는 것도 모자라 주방에 불을 질러버리라고 속삭인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나름의 이유 때문에 만신창이가 되면서도 하루하루 버텨낸다. 식당에서 어떤 이벤트가 열리게 되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팔아 수익을 얻으려고 준비하는데 당장 고기 살 돈도 없자 카미는 아끼던 구제 청바지도 헐값에 팔아버린다. 카미가 짊어진 짐의 무게를 아는지 모르는지 직원들은 새로운 레시피를 거부하고 원래 하던 대로 쉽게 가자며 야속하게도 속을 썩인다.
폭풍우 같은 준비 시간이 지나고 곧 손님들이 들이닥치기 직전 직원들은 평소처럼 서로 농담을 하며 여유롭게 직원식사를 하지만 카미는 식사를 하지 않는다. 아니, 식사를 못한다는 게 더 정확하겠다. 다가오는 이벤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지, 제대로 서비스가 될지 초조함과 긴장감 속에 발을 동동 구르며 밥을 먹을 생각조차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장면이야 말로 처음의 질문, ‘요리사 또는 셰프는 맛있는 걸 많이 먹는가’에 대한 대답이라 할 수 있겠다. 끼니를 만들지만 정작 끼니를 거르는 일이 허다한 게 요리사의 삶이다.

더 나은 방식과 시스템으로 식당을 새롭게 바꾸려고 하는 카미의 분투는 어쩌면 무언가를 대표하고 있는 이들 모두가 짊어져야 하는 일의 무게와 다름이 없다. 매일매일 몸과 마음이 다치고 혼돈과 공포 속에서 허우적거릴지라도 그 안에서 천천히 질서를 잡아나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성장하고 배워나간다.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카미는 곰(bear)이라는 공포에 잠식 당해 무너져 버릴까, 아니면 인내하고 버티며(bear)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성장할 수 있을까. 자기 일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진 이들에게 <더 베어>를 건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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