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설 휘말려선 안 된다"…오송 참사에 숨죽인 공직사회 [관가 포커스]

"모든 약속 취소"
사진=한경DB
세종시에 있는 경제부처에서 근무하는 A국장은 지난 15일 오송 지하차도 참사를 비롯해 폭우로 수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이번 주에 예정됐던 모든 저녁 식사 일정을 취소했다. 개인 일정뿐 아니라 관계 기관과의 공식 만찬도 취소했다. A국장은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여러 사람이 모이는 저녁 모임을 갖는 것 자체가 적절치 않다”고 밝혔다.

17일 관가에 따르면 지난주 사상 유례없는 폭우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면서 공직사회는 회식이나 행사 등 단체모임을 일제히 자제하고 있다. 중앙부처 및 지방자치단체는 자체 지침을 통해 조직 구성원들에게 단체 회식과 과도한 음주를 자제하라고 긴급 지시하고 있다. 시급하지 않은 행사도 가급적 연기할 것을 주문했다. 지자체들은 이달 예정된 각종 지역 축제도 일제히 취소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각 부처는 사회적 물의가 우려되는 언행을 하지 말 것을 소속 공무원들에게 특별히 당부하고 있다. 특히 이날 오송 지하차도 참사 현장 방문에서 충북도 고위 공무원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방송 중계를 통해 공개됐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자 공무원들은 더욱 몸을 사리는 모양새다. 세종시에 있는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참사 현장에서 환하게 웃는다는 것은 고위 공무원으로서 최소한의 자질을 갖추지 못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직사회는 대형 참사가 빚어질 때마다 이유를 불문하고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다. 2014년 세월호 당시 한 부처 고위공무원은 유족들이 모인 체육관에서 기념사진을 찍었다가 즉시 해임되기도 했다. 다른 부처 장관은 체육관 한편에서 컵라면을 먹자 유족들이 거세게 항의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한 부처 국장급 간부는 “지금은 무조건 애도해야 할 때”라며 “고위공무원이라면 어떤 구설에도 휘말려선 안 된다”고 말했다.

공직사회가 몸을 사리면서 세종시에 있는 식당들의 예약 취소도 잇따르고 있다. 공무원들이 회식 장소로 많이 찾는 세종시 도담동의 한 고깃집 대표는 “오늘 단체예약은 모두 취소됐다”며 “이번 주 장사는 완전히 물 건너갔다”고 털어놨다.세종시에 있는 중앙부처 공무원들은 당분간 점심도 외부가 아닌 내부 구내식당에서 먹겠다는 계획이다. 외부에서 점심을 해결했다가 자칫 점심시간을 넘겨 복귀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로 이날 점심시간 때 정부세종청사 구내식당은 평소보다 더욱 붐비는 모습이었다.

공무원들은 국회 보고 등의 시급한 업무가 아니면 서울 출장도 자제하고 있다. 더욱이 이달 초부터 공무원 복무실태 특별 점검이 시작된 상황에서 괜한 구설에 휘말릴 것을 우려해서다. 한 경제부처 공무원은 “당초 이달 예정됐던 여름 휴가를 다녀오기도 쉽지 않은 분위기”라며 “폭우에 따른 비상근무 태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경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