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잃은 오송 주민들…"눈 뜨니 물바다, 가슴팍까지 차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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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200가구 집 침수돼 임시 거주지로 이동“아침에 눈을 떴는데 갑자기 집이 물바다가 되어 있는 거예요. 그러다 빗물이 20~30분 짧은 사이에 성인 남성의 가슴팍까지 차올라 깜짝 놀랐어요.”
마을 온통 흙바다에 잠겨 주민들 낙담
17일 오후 2시쯤 충북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사무소 체육관에 마련된 임시 이재민 거주시설에서 만난 주민 신유승씨(73)는 주말 동안 폭우로 자신이 사는 전원주택 전체가 잠겼다며 이렇게 말했다. 전날 새벽 폭우로 자신의 집뿐만 아니라 주변 집들이 강물에 잠기듯 침수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신 씨는 “옆방에 있던 아들이 물길을 헤치며 안방으로 왔다”며 “아내와 함께 셋이서 창문을 부순 뒤 간신히 집 밖을 헤엄치듯 집 밖으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갑작스러운 침수에 놀란 나머지 귀중품은 물론 여벌 옷 한 벌 조차 챙길 여유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청주시가 임시로 마련한 이재민 거주시설에는 신 씨처럼 침수로 집에서 생활이 어려운 주민 약 90명이 모여 며칠째 생활하고 있다. 흥덕구청 관계자는 “읍사무소 주변은 온통 논밭과 전원주택으로 이뤄져 있는데 지대가 상대적으로 낮은 탓에 폭우로 온통 물바다가 됐다”며 “공무원들이 상심한 주민들을 달래느라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설명했다.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한 오송 지하차도 인근의 주민들도 이번 폭우에 주목받지 못한 피해자 중 하나다. 청주시 측은 이날 까지 집이 침수 피해를 입은 사례를 약 200건 접수했다고 밝혔다. 대다수 침수 가옥은 당장 생활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집수리에도 적잖은 비용이 들고, 그 동안 지낼 곳도 필요하다. 청주시 관계자는 “피해 현황 집계가 완료되는 대로 시민 보험을 통해 구제를 받을 수 있는지 알아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임시 이재민 거주시설에는 약 20명 정도만 남아 있었다. 약 70명은 비가 그친 틈을 타 침수된 집이나 논밭을 찾아 청소를 하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마련하러 나갔다고 했다.
이들은 생활 터전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것에 낙담하면서도 인근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에서 다수의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뉴스를 접한 뒤 “우리는 그나마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고 했다. 주민들은 “침수된 가전제품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푸념을 서로 주고받았다. 삼성전자와 LG전자 서비스 센터 측은 이재민 거주시설 앞에 천막을 치고 ‘무상 AS 상담소’를 연 뒤 피해 주민들을 돕기도 했다. 청주시, 대한적십자사 등 여러 기관으로부터 담요, 도시락, 생필품 등 구호품이 속속 도착하는 모습도 보였다.오송읍 일대는 도로와 논·밭이 흙탕물로 온통 범벅돼 지저분했다. 시민 자원봉사자, 시청 공무원, 군인 등 약 300명이 침수 피해입은 마을을 청소하기 위해 현장에 나섰다. 육군 측은 군 장비를 동원해 장병들과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대형 나무를 치우는 한편 파손된 도로 등을 정돈하는데 정신이 없었다. 오송읍사무소 1층 로비는 마을 복구 작업에 동원된 자원봉사자들에게 장비를 나눠주느라 분주했다.일부 주택은 유리창이 깨져있거나 지붕까지 흙이 덮여 있어 주말 동안 침수피해가 얼마나 심각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비닐하우스는 기둥이 휘어져 있었고 비닐은 여기저기 찢겨나가 철골만 앙상하게 드러나 있었다.
여전히 저수지처럼 물이 가득 고여 있는 논밭도 여럿 있었다. 현장에서 집 주변을 청소하던 주민 이승규씨는 “집 안에 있는 가구와 침대 등은 모두 못 쓰게 됐다”며 “유리창이나 샤시에 낀 흙더미를 제거하는데 꽤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 오전까지 충남 7764㏊, 충북 1801㏊ 등의 논밭 피해가 발생했다며 농작물 피해가 계속해 증가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농경지 침수는 전북지역이 1만 4569ha로 가장 많았고 이외 경북은 1636㏊, 전남 1195㏊ 순으로 피해를 각각 기록했다.이번 집중 호우로 가축은 57만 9000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전날 집계보다 1만 8000마리 정도 늘어났다. 닭 53만 3000마리, 오리 4만 3000마리, 돼지 3000마리가 폐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지난 2000년 태풍 마이삭으로 인한 가축피해 53만 9000마리를 넘어선 기록이다.
조철오 기자 che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