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이토추의 기적' 한국서도 일어나길

정영효 도쿄 특파원
워런 버핏의 투자로 글로벌 인기주가 된 일본 종합상사 가운데 이토추상사는 또 다른 이유로 일본에서 주목받고 있다. 출산율 때문이다. 2021년 이토추상사 여성 사원의 합계특수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1.97명을 기록했다. 일본 전체 평균인 1.3명을 크게 웃돌았다. 2005년 이토추의 출산율은 0.6명이었다. 똑같은 회사의 출산율이 15년 만에 세 배로 뛰어오른 기적에 일본 사회 전체가 놀랐다.

이토추는 매출의 80%가 생활·소비용품이다. 데상트 등 다수의 의류 브랜드를 운영하고 편의점 프랜차이즈 패밀리마트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여학생 비율이 높은 문과 계열 대졸자가 취업하고 싶은 기업 순위에서 최상위권을 놓치지 않는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이토추가 종합상사인 점은 변함이 없다. 24시간 사무실 등이 꺼지지 않는 종합상사의 업무 특성상 노동 강도 역시 최고 수준이다. 이토추의 출산율이 바닥을 기었던 이유다.

기적 일으킨 '아침형 근무제'

기적이 일어난 건 일하는 방식을 바꾸면서다. 특히 2013년 도입한 아침형 근무제는 기적의 시작으로 평가받는다. 2010년 0.94명이던 출산율이 2015년 1.54명으로 뛰었다.

아침형 근무제란 오후 8시 이후의 잔업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오전 5~8시 업무를 심야근무로 취급해 추가 근무수당을 지급하는 제도다. 이토추 여성 사원들은 거의 매일 정시에 퇴근하는 대신 다음날 오전 5시에 일어나 자녀가 일어나는 시간까지 전날 남은 일을 처리하고 당일 스케줄을 정리한다. 아이가 깨면 먹이고 씻겨서 어린이집에 맡긴 뒤 9시까지 출근한다. 아침형 근무제가 없었다면 일과 출산·육아의 병행은 어려웠을 것이라고 이토추의 여성 사원들은 입을 모은다.

일본을 대표하는 종합 건설기업 다이세이건설에서도 기적이 일어났다. 2014년 30명뿐이던 여성 관리직이 300명으로 10년 만에 열 배로 늘었다. 다이세이건설이 보다 의미를 두는 변화는 또 있다. “둘째, 셋째를 가지려는 여성 사원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력 높이려 바꾼 '일하는 방식'

다이세이건설은 시간차 출근, 단축 근무 등 여성 사원의 근무 환경을 뜯어고치는 개혁을 2006년부터 시작했다. 2014년부터는 사내 커플인 남편이 해외 연수를 가면 아내도 같이 보내는 ‘동반 연수제’도 도입했다.

이토추와 다이세이건설의 일하는 방식 개혁 모두 원래 목적은 출산율을 높이는 게 아니었다. 이토추의 아침형 근무제는 여직원의 능력 향상을 위해 고안된 제도다.

다이세이건설의 개혁은 일종의 생존전략이었다. 건설 경기가 고꾸라지는데 기존 남성 중심의 사업 모델로는 살아남기 어렵다고 봤다. 여성 사원의 활약을 생존의 열쇠로 봤다.

한마디로 직원의 능력을 최대한 ‘뽑아 먹으려고’ 일하는 환경을 바꿨더니 출산율이 따라 오른 것이다. 가계의 70%가 맞벌이인 일본에서 이토추와 다이세이건설의 사례는 직원 삶의 질 향상과 회사의 성장이 양립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인구 절벽의 낭떠러지에 선 한국도 곧 심각한 인력난을 겪는다. 한국에서도 이토추와 다이세이의 기적이 많이 일어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