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재난대응 기본도 안 지켜" 人災 질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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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 직후 수해 현장 방문“몇백t 바위가 산에서 굴러 내려올 정도로 이런 것은 저도 지금까지 살면서 처음 봤습니다. 얼마나 놀라셨겠습니까.”
중대본 회의서 신속 조치 지시
"기상이변 탓이란 인식 고쳐야
사무실 있지 말고 현장 나가라"
예천 산사태 현장서 이재민 위로
"얼마나 놀라셨냐…정부가 복구"
윤석열 대통령은 17일 경북 예천 감천면 벌방리 노인복지회관에서 집중호우로 인한 산사태로 집을 잃은 이재민들을 만나 “저는 해외에서 산사태 소식을 듣고 그냥 주택 뒤에 있는 그런 산들이 무너져 민가를 덮친 모양이라고만 생각했다”며 이같이 말했다.윤 대통령은 이날 6박8일간 리투아니아·폴란드·우크라이나 순방을 마치고 오전 5시께 공군 1호기 편으로 서울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오전 6시에 용산 대통령실에서 수석비서관 회의, 8시30분엔 정부서울청사에서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를 주재한 뒤 곧바로 헬기를 타고 예천으로 향했다.
예천 등 경북 북부 지역에서는 산사태 등으로 최소 19명이 숨지고 8명이 실종되는 등 인명 피해가 났다. 83가구 143명의 주민이 살던 작은 마을 벌방리는 산사태로 주택 30채가 전파 또는 반파되고 주민 50여 명이 노인복지회관 등 임시주거시설로 대피했다.
산사태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80~90대 할머니들은 윤 대통령의 손을 잡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울먹였다. 윤 대통령은 “여기서 좁고 불편하시겠지만 조금만 참고 계시고 식사 좀 잘하시라”며 “정부에서 다 복구해드릴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라”고 위로했다.윤 대통령은 복구 작업이 한창인 마을을 둘러보며 주민들을 격려했다. 장광현 감천면장은 “지난 14~15일간 400~500㎜ 정도의 물폭탄이 산등성이에 퍼부어지면서 물을 머금고 있던 계곡이 손 쓸 틈도 없이 무너져 내리며 이런 커다란 바위와 나무들이 마을을 덮쳤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토사가 쏟아지는 모습이 찍힌 CCTV 영상이 있는지 묻고는 “이를 활용해 비슷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 보자”고 했다. 구조 및 복구에 나선 군 장병들을 격려하면서는 “마지막 실종자 한 명이라도 끝까지 찾아달라”고 당부했다.
앞서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윤 대통령은 “특별재난지역 선포 등 정책 수단을 모두 동원해 후속 조치를 신속하게 추진하라”고 지시했다.윤 대통령은 “위험 지역에 대한 진입 통제와 선제적 대피를 작년부터 거듭 강조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재난 대응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국민 안전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했다.
이어 “이상 현상이니까 어쩔 수 없다는 식의 인식은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며 “공무원들은 집중호우가 올 때 사무실에 앉아만 있지 말고 현장에 나가 상황을 둘러보고 미리미리 대처하라”고 덧붙였다.
여야 지도부는 일제히 충청권 등 수해 현장을 찾았다. 정치 일정은 최소화했다. 전날 미국에서 돌아온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오전에 예정된 최고위원회의를 취소하고 충남 공주에 있는 주택가 침수 현장을 찾았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소속 의원들에게 ‘해외 출장 자제령’을 내리기도 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에서 연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를 향해 “특별재난지역 선포 등 피해 복구에 행정력을 총동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광온 원내대표는 공주와 부여, 청양 등 수해 현장을 방문했다.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호우 피해에도 순방 일정을 연장해 우크라이나를 방문한 것에 대해 공세를 이어갔다. 권칠승 민주당 수석대변인은 “최근 12년 내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났는데 사실상 컨트롤타워가 부재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그동안 수차례나 사전 대비를 철저히 하고 저지대 주민을 대피시키라는 지침 등을 구체적으로 내렸다”며 “정부가 그런 지시를 제대로 이행했는지는 추후 점검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