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가 죽는다] ⑫"마약 중독자를 두들겨 팬다고 낫나요?"

중독범죄학회장 박성수 교수 "단속·처벌 중심 '마약과의 전쟁'은 실패" 비판
"지역사회 중심 치료·재활시설 필요…가장 효과적인 예방교육 의무화해야"
마약범죄 암수율 '28.57배' 추정 연구 주목…"약물 사회적 비용 2조2천300억 추산"
이슈팀 = "'마약과의 전쟁'은 모두가 실패했다고 인정했어요. 미국 등 서구에서도 잡아들여서 처벌하는 식의 형사사법적 대응은 실패했다고 얘기를 합니다.

왜냐고요? 사회적 비용만 커지고, 재범률을 높였기 때문입니다.

"
최근 충북 제천의 연구실에서 만난 박성수 세명대 경찰학과 교수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정부에 이같이 따끔한 지적을 내놨다. 국내 살인·강도·절도·폭력 등 4대 강력범죄 재범률은 16∼20%를 오가는 데 반해 마약사범 재범률은 무려 36%에 달한다.

10명 중 3∼4명이 마약범죄로 첫 감옥을 다녀온 뒤로 다시 동종 범죄에 연루돼 교도소로 향하게 된다는 뜻이다.

박 교수는 "마약사범 재범률은 엄청나게 높은 것"이라며 "결국 처벌로서는 마약을 막을 수 없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한 사회가 마약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은 보통 예방과 단속·처벌, 치료·재활의 순환 과정을 밟는다.

한국의 경우 단속·처벌 중심의 정책을 펴다 보니, 상대적으로 예방, 중독 치유에 소홀하며 해법 찾기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내 마약범죄는 높은 재범률에다 최근에는 초범이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 작년 서울지역에서 마약류 사범 검거인원은 2천590명으로, 이중 초범이 75.8%(1천962명)에 달했다.

최근 3년 사이 가장 높은 수준이다.

호기심이든 주변의 권유든 마약의 세계에 발을 내딛는 이들이 그만큼 많아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교수는 "마약 투약과 공급 사범은 다르게 대응해야 한다.

공급 사범은 강력하게 처벌해야 하지만, 단순 투약사범은 처벌이 아닌 치료 재활을 우선 해야 한다"면서 "미국질병관리본부에서는 마약류 중독자를 범죄자가 아닌 환자로 본다.

환자를 두들겨 팬다고 낫겠느냐"고 반문했다.

범죄학자인 그는 작년부터 한국중독범죄학회 학회장을 맡아왔다.

마약범죄 관련 분야에서 그의 선행 연구는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중에는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드러나지 않은 범죄비율)을 28.57배로 추정한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 측정에 관한 질적 연구' 논문이 있다.

그는 전문가와 마약사범에 대한 광범위한 설문조사, 주요 변수에 대한 가중을 고려해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을 도출해냈다.

기존에 대검찰청 등 사법당국에서는 마약류 범죄의 암수율을 비공식적으로 약 10배 정도로 추정해 왔으나, 최근에는 우리 사회에 숨어있는 마약사범수를 추산할 때 박 교수의 추정치인 28.57배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박 교수는 "미국 백악관 마약관련 위원회에서는 마약류 범죄 암수율을 약 25∼30배 정도로 추산한다"면서 "제 연구결과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객관적으로 계량적인 검증이 아니라 질적연구에 그쳤다는 점"이라고 짚었다.

그는 2016년에는 마약류 등 유해 약물이 가져오는 사회적 비용을 약 2조2천300억원으로 추산한 바 있다.

유해 약물로 인한 의료복지적 비용과 노동생산성 하락, 형사사법적 비용, 범죄자 주변인들이 가지게 될 고통 비용이 고려됐다.

"누군가는 마약이 피해자 없는 범죄라고 하는데요.

피해자가 없는 게 아닙니다.

피해자 눈에만 안 보일 뿐 단기적으로 피해자 본인은 물론, 바로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이 피해자일 수도 있는 것이죠."
박 교수는 중독 치유는 지역사회 중심으로 이뤄져야 하며, 마약과 중독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길목을 차단하는 예방 교육이 최선의 대책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올 3월 말 기준으로 마약류 치료자 치료보호 지정병원은 전국에 24곳이 있다.

이중 인천 참사랑병원, 경남 창녕의 국립부곡병원 2곳만이 마약류 중독자 치료를 하고 있다.

나머지는 전문의료진 부족 등으로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민간 치료시설로는 약물중독재활센터로 불리는 '다르크(DARC·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가 있다.

일본 다르크 시설을 모델로 2012년 서울에 처음 문을 연 한국 다르크는 마약 경험자가 시설운영을 맡고, 마약 중독자들이 그룹홈 형태로 공동생활을 하며 스스로 재활치료를 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르크는 현재 경기 남양주, 경남 김해, 인천, 대구 전국 4곳에 있다.

각종 교육 프로그램, 자체 미팅, 운동시간이 일일 프로그램에 포함된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이들은 1년 단위 프로그램을 마치게 되면 중독을 이겨낸 것으로 보고 비로소 사회와 학교로 복귀하게 된다.

다르크는 유해시설이 아님에도 학교에서 가깝거나 사람이 많이 사는 곳에 있을 경우 혐오시설로 받아들여져 배척당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 퇴계원에서 호평동으로 시설 위치를 옮긴 남양주 다르크는 주변 학교 학부모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통학로에 들어선 마약중독자 치유시설을 두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시설 신고요건을 갖추기 위한 비용이 부족해 시설 신고가 늦어지면서 불법 논란까지 휩싸였다.

박 교수는 "마약류 사범이 교도소에 평생 있는 것이 아니다"며 "원래 있었던 자리로 돌아가려면 이전에 살던 곳에서 치료받고 회복해 취업도 하고, 생활도 할 수 있어야 한다.

치료·재활시설은 지역사회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는 마약류 예방 교육을 두고는 법제로 의무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현행 학교보건법은 음주·흡연, 스마트폰 중독 등과 함께 마약류를 포함한 약물 오남용 예방을 위해 보건교육을 실시하도록 하고 있으나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음주, 흡연 중심으로 보건교육이 이뤄져 왔다.

이러다 보니 초·중·고교생 대부분이 마약류가 왜 위험한지를 모르고, 중독문제에 경각심은커녕 호기심을 갖는 일이 생기고 있다고 박 교수는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한 연구사례를 언급하며 마약예방 프로그램에 1달러를 투자하면 18달러 이상의 형사사법적 효과를 본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산술적으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있다.

장기적으로 마약정책은 예방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부에서 마약류에 관심을 갖고 대책을 마련해 나가는 것은 고무적인 일입니다.

이런 기조가 유지되려면 법제화가 필요합니다.

특히 학교에서 예방 교육은 의무 교육화시켜야 합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으로 단속하고 처벌하는 것보다 예방하고 나서는 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더 효과적인 게 아닙니까?"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