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에게 물려줄 아버지 고사성어] 갈등 해결의 열쇠는 공감력이다

한경닷컴 더 라이프이스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결혼 전날 밤 아버지가 시부모와 같이 살겠다고 한 내 아내를 칭찬한 뒤 한 얘기다. 들려준 옛 얘기는 이렇다. 아내가 남편한테 늙은 시어머니를 느닷없이 장에 내다 팔라고 했다. 기가 막혔지만, 아들은 어머니를 지게에 업고 장날에 팔러 갔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고운 반지와 맛있는 국밥을 사드리며 “집에 어미가 사드리라고 했어요”라고 했다. 못 팔고 돌아오자 성화를 부리는 아내에게는 “몸이 야위어서 거들떠보지 않더라. 몇 가지 보신 될 만한 걸 사 왔으니 살찌워 다음 장날에 팔겠다”라고 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 살을 찌우기 위해 정성을 다해 음식을 해 받쳤다. 다음 장에도 팔지 못하고 온 남편은 아내에게 “아직도 눈길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동네 사람들에게 며느리가 해준 음식이며 아들이 대신 사준 반지 등을 자랑했다. 모두 며느리가 해준 거라며. 동네에 며느리 칭송이 자자했다. 칭찬을 여럿한테 들은 아내는 더욱 정성으로 시어머니를 모셨다. 볼살까지 오른 어머니를 장날에 팔러 나가려 하자 아내가 남편에게 “잘못했다. 팔지 말라”며 울며 매달렸다.

아버지는 “민간에 오래 전해지긴 하지만, 비현실적인 중재법이다”라면서 그래도 오래 입에 올려진 이유를 고부간 갈등에서 아들이자 남편인 중간자 역할의 중요성 때문으로 해석했다. 아버지는 “이제 며느리가 이 집에 들어와 같이 살면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서로 다른 문화, 가치관, 경험이 있어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게 걱정이다. 네가 중재자가 돼야 한다”고 했다. 이어 아버지는 “이쪽에 얘기할 땐 이편이 돼야 하고 저쪽에 얘기할 땐 그쪽 편이 돼야 한다. 너는 마중물이다. 남편은 내 편이고 아들은 내 편이라고 서로 여기게 마중물을 퍼부어줘야 마음에 깊숙이 담아둔 얘길 꺼낸다”라고 했다.아버지는 갈등 해결을 다섯 단계로 설명했다. 첫째 갈등의 원인 파악이다. 원인은 사소한 데서 비롯한다. 갈등을 경청하면 말하면서 풀어지기도 한다. 원인을 명확하게 파악하면 갈등 해결의 반은 이루어진다. 둘째 갈등 해결의 성공 여부는 객관화에 있다. 객관화는 다른 이들이 둘 사이의 갈등을 보는 것을 뜻한다. 아무런 이해 관계없는 사람들은 둘 사이의 갈등을 당연히 이해하지 못한다. 아버지는 “중간자는 문제 된 갈등을 그렇게 봐야 한다. 절대 추측하지 마라. 연구에 의하면 추측은 90%가 틀린다. 편향과 오류에 쉽게 빠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복잡한 존재다. 감정이 다양하고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한다. 그러니 사람의 마음을 추측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라고 했다.

셋째 둘에게 어떻게 해주는 것이 가장 좋을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아버지는 “남이 나에게 이런 행위를 했을 때, 나 같으면 어떻겠는가를 미루어 짐작하는 방법이 좋다”며 예를 든 고사성어가 '추기급인(推己及人)'이다. '자기를 헤아려 다른 사람의 마음에 이르다'라는 말이다. 추기급인은 중국 제(齊)나라 재상으로 세 분의 왕을 모신 안자(晏子)의 고사에서 유래했다. 경공(景公)이 여우 털로 만든 두툼한 외투를 입고 큰 눈이 내려 온천지가 환난을 겪는 데 오직 눈 덮인 경치만을 감상하며 엉뚱한 얘길 하자 화가 난 안자가 직설적으로 “폐하께서는 다른 사람들의 처지는 조금도 생각하지 않고 오직 폐하 자신만 생각하고 있군요”라고 일침을 놓은 데서 유래했다. 안자춘추(晏子春秋)에 나온다.

넷째 갈등 해결책은 결국 타협이다. '칡 나무 갈(葛)' 자와 '등나무 등(藤)' 자가 합해진 말이 갈등이니 둘을 다 없애면 쉽게 해결될 일이지만 그렇지 못하니 타협밖엔 길이 없다. 이어 아버지는 “문제는 소통력이다. 소통의 힘은 공감에서 나온다. 경계를 풀고 다가오게 하는 기술이 공감력이다. 그렇게 마련한 자리에서 진솔한 대화를 통해 서로의 의견을 조정하고 양보하도록 해야 한다. 이때 갈등을 중재할 마지막 카드가 도덕률이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느냐’고 독촉하면 이제껏 몸에 밴 도덕심이 우러나와 타협점을 찾을 거다”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세상의 모든 갈등이 저런 구도 속에서 중간자들이 애쓴 덕택에 타협점을 찾는다. 결국은 공감력이 원천이다. 쉽게 가르치기는 어려워도 손주들에게도 꼭 물려주고 싶은 성품이다.<한경닷컴 The Lifeist> 조성권 국민대 경영대학원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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