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물 쓰레기가 항공유로 변신…마술 같은 기술의 비밀 [현장리포트]

바이오 에너지기업 미국 펄크럼 가보니
세계 최초로 폐기물→합성원유→항공유 생산
펄크럼은 합성원유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대형 분쇄기로 생활 폐기물을 3cm 이하로 잘게 부수는 공정을 거친다. 정인설 특파원
지난 13일(현지시간) 찾은 미국 네바다주 서쪽 리노시. 시내에서 버스로 20여분을 달리면 사막 한복판에 미국 바이오에너지 기업 펄크럼의 생활 폐기물 처리시설이 있다. 시간마다 대형 트럭이 와서 폐기물을 쏟아 부어 쓰레기 산더미를 쉽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다음 단계부터는 여느 쓰레기 처리장과 다르다. 이 회사는 폐기물을 태우거나 매립하지 않는다. 처리장 내 대형 분쇄기를 통해 음식물과 종이를 가리지 않고 3㎝ 이하로 잘게 부순다. 부숴진 물질은 합성원유 생산시설이 있는 펄크럼 시에라 공장으로 보낸다. 이 과정에서 알루미늄과 철, 플라스틱을 가려낸다. 일반 쓰레기 처리장에선 재활용 쓰레기로 분류되겠지만 이곳에선 아무짝에나 쓸모가 없다. 이 회사의 주력 제품 생산에 방해만 되기 때문이다.

50만t 쓰레기에서 원유 26만 배럴 생산

펄크럼은 세계 최초로 재생 불가능한 생활 폐기물에서 합성원유(syncrude)를 생산하는 기술을 보유한 회사다. 합성원유로 만들려면 가스로 바꿀 수 있는 물질이어야 하는데 금속과 플라스틱은 가스화가 불가능하다.

펄크럼은 시에라 공장에서 금속과 플라스틱 등을 제외한 물질에 산소와 증기를 주입해 물질을 분해한다. 그러면 수소와 일산화탄소로 구성된 합성가스가 생성된다. 고온 고압을 유지한 상태에서 이 혼합물에 촉매반응을 일으키면 액화 탄화수소로 바뀐다. 이 물질은 화학적으로 자연산 원유와 유사해 합성원유로 불린다.
펄크럼 시에라공장에 있는 합성원유 제조시설.
펄크럼은 지난해 12월 시에라 공장을 가동해 세계 최초로 폐기물에서 합성원유를 상업생산하기 시작했다. 이 합성원유는 기존의 석유정제시설을 활용하면 항공유와 휘발유, 경유를 공급할 수 있다.

펄크럼은 이 중에서도 항공유에 집중하고 있다. 항공기 중량과 추진력 때문에 자동차 연료 시장과 달리 항공유는 전기 에너지로 대체될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펄크럼은 1년 동안 생활 폐기물 50만t을 처리해 합성원유 26만 배럴을 만든다. 항공기로 미국 워싱턴DC에서 서울을 100회 왕복하는데 쓰이는 연료량이다.

미국 정부도 펄크럼을 지원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시행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합성원유 같은 지속 가능한 항공원료(SAF)에 보조금을 주고 있다. 배럴당 1.25~1.75달러다. 에릭 프라이어 펄크럼 최고경영자(CEO)는 "정부 지원금과 공급처가 꾸준히 늘고 있어 1년 내 흑자전환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에선 규제 때문에 언감생심

펄크럼은 사업성 뿐 아니라 친환경성을 강화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 회사는 두 가지 공정에서 탄소배출을 줄이고 있다. 우선 생활 폐기물을 친환경적으로 처리한다. 미국 가정이 버리는 쓰레기량은 연간 3억t이다. 매년 세계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34억t에 달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매립과 소각으로만 폐기물을 처리하는 게 한계에 다다를 것으로 보고 있다.
항공유를 만들기 전 과정에서 잘게 부순 폐기물. 정인설 특파원
저탄소 공정을 통해 제품을 생산한다. 펄크럼처럼 합성원유에서 연료를 추출하면 자연산 원유를 뽑아내는 시추과정이 생략된다. 제임스 스톤사이퍼 펄크럼 부사장은 "합성원유를 택하면 기존 방식으로 원유를 생산하는 것보다 탄소 배출을 80%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여러 기업들은 친환경적 특성과 사업성을 보고 펄크럼에 투자하고 있다. 미국 유나이티드와 일본항공(JAL) 외에 뉴질랜드 정부도 투자자 대열에 뛰어들었다.

SK와 SK이노베이션도 8000만달러(약 1040억원)를 펄크럼에 투자해 폐기물 가스화 기술 확보에 나섰다. 김양섭 SK이노베이션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달 증권사 대상 투자설명회에서 "합성원유를 비롯한 SAF 시장에 2244억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SK이노베이션은 2026년에 울산에서 SAF 상업생산을 시작하겠다는 목표도 세웠다.

그러나 아직까진 국내에선 합성원유를 생산할 수 없다.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현행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은 자연산 원유에서만 항공유 같은 석유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했다. 바이오가스연료만 석유대체연료로 규정해놨을 뿐 합성원유는 그 범위에서 빠져 있다.

뒤늦게 한국 정부도 지난해 11월 '친환경 바이오연료 확대방안'을 발표하면서 석유제품 원료 확대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후속 작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강동수 Sk이노베이션 포트폴리오부문장은 "SAF 시장 확대에 맞춰 펄크럼과 함께 다양한 대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리노=정인설 워싱턴 특파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