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명 사상자 낸 '오송 참사', 총체적 부실이 부른 인재

충북도·청주시·경찰·행복청 등 부실대응 의혹 잇따라
감찰 나선 국조실…89명 규모 전담수사본부도 조사 착수

24명의 사상자를 낸 청주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는 재난·재해 대응 기관들의 총체적 부실이 부른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곳곳에서 부실 대응 정황이 드러나고 있지만 '네 탓' 공방만 반복하는 이들 기관에 사정의 칼날이 향하고 있다.
◇ 지하차도 관리주체 충북도 매뉴얼 타령만

참사가 발생한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가 포함된 508번 지방도의 관리주체는 충북도이다.홍수 등 재해가 발생했을 때 교통 통제 결정은 도로법에 따라 해당 도로 관리를 맡는 관청이 1차 판단을 해야 한다.

적절한 시점에 지하차도의 차량 통행을 통제했다면 이번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충북도는 사고의 원인이 된 미호강 제방 붕괴 전까지는 지하차도를 통제할 정도의 징후가 없었다는 입장이다.대응 매뉴얼 상 지하차도 중심 부분에 물이 50㎝ 이상 차올라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고 당일 오전 4시 10분 지하차도 인근 미호천교 지점에는 홍수경보가 내려졌고, 불과 2시간여 뒤 수위가 계획홍수위(9.2m) 턱밑까지 차올랐지만 매뉴얼만 따지고 있던 셈이다.

충북도 관계자는 "홍수경보가 있었지만 지하차도 내 CCTV로 상황을 관리하면서 통제 가능하다고 판단했다"며 "하지만 인근 제방이 무너지면서 단시간에 물이 차올라 차량 통제 시간을 확보할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 위험 정보 충북도와 공유 안 한 청주시

금강홍수통제소는 미호강이 범람 위기에 다다른 오전 6시 34분 해당 지역 관할청인 흥덕구 건설과에 전화를 걸어 주변 주민통제와 대피에 나설 것을 경고했다.

사고 발생 2시간 전의 일이다.

오전 8시 11분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소방당국도 "제방 둑이 무너져 미호강이 범람하고 있다"고 청주시에 알렸다.

당시 오송 일대 침수 피해가 극심했고, 청주시는 각종 피해 현장을 살폈다.

하지만 지하차도가 속한 508번 지방도는 충북도 관할이라는 이유로 관심 두지 않았고, 위험 정보도 공유하지 않았다.

청주시는 사고 발생 20분 뒤인 오전 9시가 돼서야 오송읍으로부터 연락받고 지하차도가 침수된 사실을 알았다.

그때야 충북도에 연락했다.

청주시는 심지어 사고 발생 9분이 지난 시각 강내면에서 미호강을 건너 오송역으로 향하는 도로가 침수되자 시내버스 업체들에 이미 침수된 궁평2지하차도로 우회 운행하라고 안내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까지 벌였다.
◇ 40분 전 긴급통제 신고에 대처 못 한 경찰

경찰 상황실에는 오전 7시 58분께 "궁평 지하차도 차량 통행을 막아달라"는 익명의 신고가 접수됐다.

추후 이 신고자는 오송∼청주(2구간) 도로확장공사 현장의 감리단장으로 밝혀졌다.

그는 당시 미호강 제방에 물이 넘쳐 지하차도가 잠길 수 있으니 차량 통제를 해달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감리단장은 앞서 오전 7시 2분에도 미호강 제방이 넘치려고 해 주민 대피가 필요하다고 경찰에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출동 지시를 받은 관할 파출소 직원들은 궁평1지하차도와 쌍청리교차로 등 엉뚱한 지역에 배치됐다.

신고자가 '궁평 지하차도'라고 지칭해 궁평1지하차도로 오인 출동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궁평1지하차도는 미호천교에서 직선거리로 1㎞, 궁평2지하차도는 300m 떨어져 있다.

경찰이 최종적으로 궁평2지하차도에 도착한 시각은 사고 발생 20여분 뒤인 오전 9시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 관계자는 "다른 침수현장을 챙기느라 남은 인력이 없었다"며 "지자체 재난안전망을 통해 충북도, 청주시에도 신고 내용을 알렸다"고 말했다.

사고 당일 오전 7시 51분께 "미호강 제방이 유실될 것 같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소방당국 역시 청주시에 이 사실을 공유하면서 정작 소방본부가 속한 충북도에는 알리지 않았다.
◇ 침수 원인 제공한 제방공사, 행복청은 "문제없다"

이번 참사는 지하차도와 400∼500m가량 떨어진 제방이 무너지면서 몰려든 하천수가 차도를 덮쳐 발생했다.

인근 주민들은 문제의 제방이 부실하게 관리됐다고 입을 모은다.

무너진 제방은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행복청)이 미호천교 확장 공사를 진행하면서 설치한 임시제방이다.

정찬교(68) 궁평1리 전 이장은 "유실 사고가 나기 몇시간 전 미호강 제방은 3m 밑으로 강물이 차올라 있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었지만, 임시로 쌓은 둑은 30㎝ 밑까지 물이 출렁였다"고 전했다.

이어 "사고가 나기 1시간 전쯤 문제가 된 임시 제방을 둘러봤는데 굴삭기 1대가 주변의 모래를 긁어모아 둑을 쌓고 있었다"며 "이렇게 엉망으로 제방을 쌓은 것이 말이 되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러나 행복청 관계자는 "작년에도 이런 방식으로 공사했고, 임시제방은 미호강의 계획 홍수위에 맞춰 조성했다"며 임시제방 설치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또 "임시제방도 (물이 새지 않도록 하는) 천막을 깔고, 흙을 올려 견실하게 만들었다"며 "이번에 홍수 수준을 넘을 정도로 엄청난 폭우가 쏟아지는 천재지변으로 제방이 유실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 국무조정실 감찰 착수…경찰 전담수사본부 구성

이번 참사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기관들은 모두 사정기관의 조사를 받는다.

국무조정실은 이번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는 감찰에 착수했다.

지난 17일 국무조정실 공직복무관리실은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국민의 소중한 생명을 지키지 못한 원인을 밝히기 위한 것"이라며 "모든 관련 기관이 예외 없이 조사 대상에 포함된다"고 강조했다.

국무조정실은 조사 결과에 따라 징계·고발·수사 의뢰·제도개선 등 필요한 모든 조처를 한다는 방침이다.

충북경찰청도 이번 참사 전담수사본부를 꾸려 전방위 수사에 나섰다.

수사부장을 본부장으로 89명의 수사관이 배치됐다.

경찰은 교통 통제가 이뤄지지 않은 경위와 보고 체계를 우선 조사하고 제방 관리가 참사의 원인이라는 의혹도 살필 계획이다.

관계 공무원들의 부실 대응이 확인되면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와 중대재해법의 시민재해 조항 등을 적용해 입건하는 방안이 검토된다.

궁평 제2지하차도에서는 지난 15일 오전 8시 40분께 인근 미호강 제방이 터지면서 유입된 하천수로 시내버스 등 차량 17대가 침수됐다.이 사고로 14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