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찬밥"…여자 인형들만 힘을 갖는 이곳은 바비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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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비'(2023)
그레타 거윅 감독, 마고 로비 출연
19일 개봉. 114분. 12세 관람가.

어딘가 불편한 느낌이 들어도, 당신 잘못이 아니다. 영화 자체가 현실을 풍자하는 블랙 코미디다. 이전 작품들에서 다양한 여성들의 삶을 그려온 그레타 거윅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그는 자신이 바라본 남성중심적 현실과 정반대 모습의 '거울 세계'를 스크린에 옮겼다.

바비랜드에는 다양한 바비가 함께 살아간다. 인종이나 체형은 제각각이다. 트랜스젠더 장애인 임산부 등 개성 넘치는 바비도 있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은 완벽하다. 자기를 바라봐주길 기다리는 켄들을 뒤로한 채, 밤마다 '여자들의 파티'에서 춤과 노래를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평온했던 일상은 어느 날 마고 바비가 인간처럼 변하며 틀어진다. 하이힐에 맞춰 까치발 형태였던 발은 평평해지고, 군살 하나 없이 날씬했던 몸엔 셀룰라이트가 붙는다. 이상 증세의 원인이 현실 세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켄(라이언 고슬링 분)과 함께 현실로 떠난다.

한편 켄은 현실 세계에 빠져든다. 여기서는 자기가 주인공이 된 듯했다. 남성들이 정·재계를 주름잡고, 근육질 몸매로 힘을 과시하는 모습에 환호한다. 바비랜드로 돌아간 그는 가부장제 사상을 전파한다. 마고 바비는 '켄덤(켄+킹덤)'으로 변해버린 고향을 원래대로 되돌리려 한다.
핵심 주제는 페미니즘, 즉 여성의 평등권 문제다. 그동안 여성 개인의 삶에 머물렀던 감독의 시선이 사회로 확장했다. 감독은 전작 '레이디 버드'(2017)에서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았고, '작은 아씨들'(2019) 속 각자 다른 삶을 선택하는 네 자매를 통해 여성성의 범위를 넓혔다. '바비'는 현실과 대조적인 세계를 비추며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한층 끌어올렸다.
그런 면에서 마고 바비 못지않게 중요한 인물은 켄이다. 바비랜드가 현실의 거울 이미지라면, 켄은 현실에서의 여성에 대응한다. 지난 세월 주류 바비들에 밀려 소외된 삶을 살아왔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가 '켄덤'을 세우며 소동을 벌여도 그 모습이 밉지 않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