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연마저 긴장시킨다 … '웅크린 타짜' 임지연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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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e] 오동진의 여배우 열전이런 걸 두고 미스터리어스하다고 말한다. 우리 말로 할 때는 한자어 쓰지 말고 "거 이상하네"가 맞다. 여배우 임지연을 둘러싸고 나오는(그냥 내 개인이 하는) 얘기이다. 그녀에게 2014년 ‘인간중독’과 2015년 ‘간신’ 때, 그리고 2019년 ‘타짜 : 원 아이드 잭’을 찍을 때 그 4년의 강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는 것이다. 사람이 완전히 달라졌다. 얼굴만이 아니다. 분위기가 전혀 달라졌다. 사람이 바뀌었다. 다른 사람이 됐다. 그것 참.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여배우들을 놓고 원래 이런 짓은 절대 안하는 편이지만(정말?) 임지연의 예전 사진과 현재 사진을 놓고 보면 (남자의 투박하고 미련한 눈으로는) 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성형을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했는 지를 잘 알아 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이건 시술이 굉장히 잘됐다는 얘기이기도 하겠다. 임지연의 이미지는 ‘인간중독’과 ‘간신’에서 청순미 그 자체였다. 보다 정확하게는 청순 섹시미를 내세운 신인배우였다. 사실 이 영화를 찍은 김대우 감독은 전작이 ‘음란서생’ ‘방자전’이었다. 그가 좋아할지 그렇지 않을지 모르겠으나 그는 두 영화로 충무로의 음란서생이란 닉네임으로 등극한 상태였다. 그 말은 곧 ‘인간중독’이 어떤 아우라를 지니고 있는 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임지연은 당연히 청순한 척, 그렇게 치마를 무릎 밑으로 자꾸 끌어 내리는 척, 다리를 오므리는 척, 그렇게 줄 듯 말 듯, 유부남과 카 섹스를 저지른다.
영화는 시종일관 헐떡댄다. 임지연의 숨소리가 극장 안 남성 관객들의 침을 삼키게 했다. 중년여인들은 이 영화를 남자 주인공 송승헌의 하얀 팬티 라인이 만들어 내는 힙 선 때문에 봤다며 키득댔다. 그러나 사람들의 뇌리엔 임지연이 남았다. 아 그렇구나. 원래 청순한 이미지가 더 섹시한 것이구나 하는 것을 입증시켰다. 이 영화가 나올 때는 한국사회가 보수적 기조를 띨 때였다. 대체로 사회가 보수적일 때 여배우, 영화 속 여성 캐릭터들은 팜므 파탈형으로 음란해진다. 감독과 배우의 몇 안되는 사회적 무기 중 하나가 바로 섹스이다. 니들이 우리를 이렇게 억눌러? 금지할 게 그렇게 많아? 그러면 내가 진짜 야한 거 보여줄께, 라는 식이다. 어쩌면 임지연은 매우 영리하게 자신이 갖는 몸값의 사회정치학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녀는 그 어렵다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출신이다.
민규동 감독의 ‘간신’ 때까지도 임지연의 전략은 청순한 척을 내세우는 것이었다. 임지연이 맡은 여인 단희는 애비의 복수를 위해 연산군에게 몸팔이(흥청,興淸)로 나서지만 그녀의 씨쓰루 저고리 안쪽에는 은장도가 숨겨져 있다. 그녀는 등 뒤로 장도를 숨기고는 호시탐탐 연산군(김강우)의 몸에 올라 타 그의 배를 가를 생각에 몸을 떤다. 단희의 여린 순정을 유일하게 아는 사람이 바로 간신인 척하는 임승재(주지훈)이다. 단희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하는 장면은 임지연이 했던 청순 연기의 최고봉이었다. 그러다 임지연이 확 바뀐다. ‘타짜 : 원 아이드 잭’ 때이다. 영화의 등장부터 심상치 않았다. 머리는 노랗게 물들인 단발에 다 헤진 진바지 핫 팬티 차림으로 궁둥이를 씰룩대며 나온다. 싸구려 사기꾼 영미 역이다. 천박하게 야해졌다는 얘기만이 아니다. 입에서 욕이 다발로 터져 나오는 사람이 됐다.
예를 들면 이런 장면이다. 파트너 사기꾼 까치(이광수)가 영미와 떡볶이를 먹다가 갑자기 의자에 무릎을 꿇고 앉는다. 까치의 부탁은 이것이다. “인간적으로 한번 주라.” 영미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진다. 그녀는 나무 젓가락을 팽개친다. 입 안에 떡볶이를 넣은 채 여자가 말한다. “뭘 줘 이 븅신아! 아 XX. 밥맛 떨어지게.” 그러나 영미는 결국 까치에게 ‘한번 준다’. 그녀는 나중에 임신한 것으로 나오는데 만삭임에도 입에서는 거침없이 욕이 터져 나온다. ‘타짜’에서 주연급인 최유화에 비해 임지연은 조연급이었지만 사실은 와호장룡처럼 웅크린 호랑이이자 용이었던 셈이다.‘타짜’를 기점으로 임지연은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1과 파트2’로 점핑한다. 초반에 얼굴이 확 바뀌었다고 한 건 성형 얘기를 하려 했던 것이 아니다. 사실 그렇게 손을 많이 대지도 않았다. 다만 살을 많이 빼고 눈매 화장을 강하게 해서 표독스럽고 나쁜 악녀 이미지로 변신했다. 천박한 사기꾼 이미지를 거쳐 상류층의 극단적으로 이기적인, 정말 죽이고 싶도록 미운 ‘나쁜 년’이 됐다. 이건 임지연이 자신을 시대적 트렌드에 맞게 상업적으로 변신시키는 능력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 마디로 꽤나 똑똑한 연기자라는 얘기다. 주연은 송혜교였지만 송혜교가 절대적으로 긴장할 수밖에 없었던 악당 주연이었다. 사람들은 처음엔 송헤교를 얘기했지만 회를 거듭할수록 임지연의 연기에 감탄했다. 이 드라마에서 임지연은 평생의 욕을 다하며 산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 극악스러워 오히려 드라마를 다 보지 못했다고 했을 정도다.최근 임지연은 또 한편의 드라마로 주목을 받았는데 ‘마당이 있는 집’이 그것이다. 미안한 얘기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를 보면서 김태희 얘기를 하지 않았다. 임지연 애기를 더 했다. 임지연은 거기서 폭력 남편이 죽은 후 우걱우걱 짜장면을 먹는다. 남편 동생이 전화로 뭐라뭐라 할 때도 아줌마 여기 콜라 좀, 하면서 도련님. 형이 죽었어요. 저 밥먹고 있어요. 좀 이따 다시 얘기해요, 라며 입 안 가득 우물우물 짜장면을 밀어 넣는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다들, (밉살스러운 남편이나 아내를 죽여 버리고) 짜장면을 시켜 먹고 싶게 만든다. 임지연은 악녀는 악녀인데 이상하게 동화하게 만든다. 이건 그녀가 연기자로서 전법과 전술을 잘 구사하고 있는, 실력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임지연 같은 배우가 요즘 시대에 왜 뜨고 있는 가. 그만한 나이대의 여배우 중 이런 류의 진짜 연기, 이런 정도의 에너지를 뿜어 대는 여자 연기자가 없어서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너무 적기 때문이다. 멜로영화나 로맨틱 코미디에서 여배우는 연기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있다. 예쁘게만 하고 있으면 된다고들 한다. 임지연이 연기하는 거칠고 때론 폭력적인 캐릭터는 어쩌면 악랄해져야만이 살아나갈 수 있는 한국의 엄혹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이 실제로 욕망하는 모습일 수 있다. 지금의 현대 여성들은 거침없이 욕을 해대고 때론 폭력을 써가면서라도 남성중심의 가당찮은 사회 구조에서 벗어나 스스로 권력을 쥐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솔직히 임지연은 매력적이긴 해도 (지금껏 보여준 이미지만으로 볼 때) ‘같이 살고 싶은’ 여자=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좀 무섭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그녀의 행보에 촉각이 세워진다. 하루 밤 사이에 대형 스타가 됐다는 건 이럴 때 하는 얘기일 것이다.
‘무뢰한’으로 영화인들 사이에 작가주의 감독으로 정평이 나 있는 오승욱 감독이 새영화 ‘리볼버’를 준비중이다. 역시 전도연이 나온다. 임지연이 새로운 상대역이다. 아무리 전도연이라도 긴장 좀 해야 할 것이다. 여배우들의 세대 교체가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그 주역은 임지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