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농사 다 망했지만 다시 일어서야죠" 복구작업 구슬땀

익산 주민들, 군 장병·자원봉사자와 농작물·가재도구 정리 종일 분주
"우리 아저씨랑 나랑 다 70살이 넘어서 '이걸 어떻게 치워야 하나' 하고 있었거든요. 이렇게 나와서 도와주니까 정말 눈물 나려고 해요.

"
기록적인 폭우에 침수 피해를 본 전북 익산시 망성면에서 19일 만난 김미자(72)씨의 비닐하우스 주변에는 육군특수전사령부 천마부대 장병 7명이 김 씨와 함께 부지런히 하우스 주변을 오가고 있었다.

김 씨는 남편과 함께 마을 경로당으로 대피해있다가 전날 밤에 집으로 왔다. 집은 지대가 높은 곳에 있어 다행히 침수되지 않았지만, 비닐하우스 12개 동과 주변 논이 전부 물에 잠겼다.

닷새 넘게 하우스에 물이 차면서 벼 모판은 다 썩어 쓸 수 없게 됐고, 전기가 끊겨 비닐하우스 안 냉장고에 보관하던 음식들도 모두 상해버렸다.

김 씨는 "속상해 죽겠다"면서도 쭈글쭈글해져 나뒹구는 수박을 부지런히 포댓자루에 담았다. 그의 남편은 지원을 나온 육군 장병들과 함께 발목 높이까지 찬 하우스 안으로 들어가 모판을 꺼내 농로에 차근차근 뒤집어 말렸다.

김 씨는 "올해 농사는 다 망해버렸다.

모는 다 버려야 하고, 논에 심어놓은 벼들도 다 말라 죽어서 속이 문드러졌다"면서 "그래도 당장 치워야 하는데 이렇게 다 같이 와서 도와주니 정말 고맙다"며 울먹였다.
김 씨의 비닐하우스에서 400m 떨어진 곳에 사는 은희태(63)씨도 일찍부터 복구 작업에 한창이었다.

그의 집 마당은 며칠 전 집중 호우 당시 허리 높이까지 물이 들어찼다.

은 씨는 반려묘를 데리고 아내와 함께 익산 시내에 있는 한 숙박업소에 가서 닷새를 묵은 뒤 이날 오전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날 오전 10시부터 폭염주의보가 발효되면서 몇 분만 움직여도 땀이 뻘뻘 났지만 은 씨와 장병들은 개의치 않았다.

눈 옆으로 흐르는 땀을 재빠르게 닦은 뒤 다시 양손 가득 기계를 집어 꺼냈다.

은 씨는 "집 짓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 창고에 기계들이 많은데 군인들 덕분에 이 많은 것들을 빨리 꺼내고 있다"며 "작동되는지 확인하고 수리를 맡기든가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주택 현관에 스며든 흙탕물을 씻어내느라 어느새 은 씨의 안경은 흙탕물이 튀어 얼룩덜룩해졌다.

그는 "날씨가 더워도 복구할 수 있을 때 빨리 움직여야 하니 마음이 급하다"며 "아침 일찍 움직여서 주택 안쪽은 대부분 싹 치웠다"며 밝게 말했다.
전날 오후 7시30분께 익산에 내려졌던 호우경보가 해제되면서 익산 망성면 망성초등학교와 성북초등학교, 경로당 등으로 대피한 주민 158명 대부분이 전날 밤부터 집으로 돌아갔다.

육군 제35보병사단 장병들과 대학적십자사 전북지사 자원봉사자 등은 이들이 빠르게 일상을 회복할 수 있도록 복구 작업에 손을 보태고 있다.

전북도에 따르면 이번 폭우로 주택 108채와 축사 및 양어장 42곳 등 총 171곳이 침수되고 벼 1만640ha, 논콩 4천689ha 등 1만5천879ha가 물에 잠겼다. 또 도로 7곳, 하천 17곳 등 공공시설 58건도 피해를 봤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