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시각에서… 'K'에 기대는 예술, 'K'를 넓히는 예술

[arte] 변현주의 Why Berlin
K-pop, K-drama, K-film, K-classic….

한국 혹은 한국인을 뜻하는 ‘K’를 접두사로 붙여 만든 이 신조어는 한국 최고의 문화 수출품이라는 K-pop에서 시작해 최근 거의 모든 단어에 붙일 수 있을 정도로 일상에 스며들었다.이처럼 국내에서는 한국 문화예술에 자부심을 불러 일으키는 신조어 ‘K’를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그렇다면 해외에서 한국, 한국인, 한국 문화예술에 대해 실제로 어떻게 느끼고 받아들이고 있을까. 개인의 경험을 일반화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한국에 대한 관심과 호감이 무척 커졌다는 것을 피부로 느낀다.

처음 해외에 거주했던 2002년 미국 생활 속에서 만난 이들은 월드컵이 열리는 나라 대한민국을 알고 있었지만 여전히 남한과 북한을 헷갈려 했고, 15여 년 전 런던에서 석사 공부를 하고 있을 때 김기덕, 박찬욱, 봉준호, 이창동 감독 등의 영화에 매료된 이들이나 광주 비엔날레 같은 한국 문화예술 이벤트에 관심을 가진 이들을 종종 접했으나 백남준 작가가 한국 출신인지도 모르는 이들을 만나기도 했다. 반면, 최근 몇 년간 베를린에 살면서는 한국 음식이나 화장품부터 한국 음악, 드라마, 영화, 미술까지 한국 문화예술 전반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과거 상상하지 못했던 수준으로 커졌음을 절실히 느낀다.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도 한국 출신 작가의 전시를 해외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국제 아트 페어에서 한국 갤러리는 물론 해외 갤러리에서 한국 작가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으며, 해외 전시에서 예상치 못하게 한국 문화에 대한 레퍼런스를 마주하기도 한다. 그 예로, 지난 3월 우연히 보게 된 전시 《책과 물건이 주는 힘과 기쁨 (The Power and Pleasure of Books and Possessions)》에서는 오히려 필자가 모르던 한국 문화예술을 배우기도 했다.
책거리 그림, 작가 미상,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작품.

베를린의 갤러리 노이게르리엠슈나이더(neugerriemschneider)에서 열린 이 전시는 한국의 ‘책거리’ 예술에 오마주를 바치며 책거리 혹은 책가도에서 볼 수 있는 그림 구도를 전시 구조로 취했다. 전시를 보기 전 필자가 알고 있던 책거리란 책 한권에 대한 공부를 마치면 함께 공부한 동문들이 스승에게 감사를 표하며 간단한 음식과 음료를 함께 나누는 행사였다.

그러나 이 전시를 보면서 책거리는 ‘책’과 소재나 대상 등 물건을 뜻하는 ‘거리’를 그린 정물화로 조선시대 후기인 18-19세기에 유행했던 그림 종류를 의미하기도 함을 알게 되었다. 이처럼 책거리는 책을 중요하게 여기던 문치국가 사회를 반영하고 책의 문화와 책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책과 물건을 그림으로써 지식과 대상의 소유를 향유한 한국의 전통문화는 동시대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해석되며 노이게르리엠슈나이더의 소속작가인 아이 웨이웨이(Ai Weiwei),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 이자 겐즈켄(Isa Genzken), 실파 굽타(Shilpa Gupta), 호르헤 파르도(Jorge Pardon), 엘리자베스 페이톤(Elizabeth Peyton), 토비아스 레베르거(Tobias Rehberger), 리르크리트 티라바니자(Rirkrit Tiravanija) 등의 회화, 사진, 태피스트리, 조각, 책 형태를 한 설치 작업 등을 통해 펼쳐졌다.

특히 전시는 책거리에서 자주 보이는 밀집된 구도를 전시 디스플레이에 그대로 차용해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인간의 욕망과 행위가 연구와 수집, 그리고 프레젠테이션으로 드러남을 시각적으로 훌륭하게 재현했고, 이를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으로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Pae White, Bookshelf South, 2013
© Pae White. Courtesy the artist and neugerriemschneider, Berlin. Photo: Jens Ziehe, Berlin
installation view:the power and pleasureof books and possessions, March 4-April 8, 2023© neugerriemschneider. Courtesy the artists and neugerriemschneider, BerlinPhoto: Jens Ziehe, Berlin
한국 작가를 전시에 포함하지 않았어도 《책과 물건이 주는 힘과 기쁨》에서 한국 문화예술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고 있음을, 그 맥락으로까지 관심이 확장되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1차원적인 문화 선전, 한국 문화예술을 소비하도록 부추기는 지원이 아니라 그 맥락을 탐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인프라를 만드는데 더욱 힘을 써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애국심 고취와 문화 상품화의 전략으로 변질되어 가는 접두사 ‘K’에 대해 내부적 반성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는 사례로 신조어 ‘K’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한국의 동시대 미술 현장을 작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선보이는 한국 작가 영문 인터뷰집 『K-Artists』(K에 취소선)을 소개하려 한다.
최초의 한국 작가 영문 인터뷰집 『K-Artists』표지.
베를린의 아카이브북스와 한국의 독립출판사 더플로어플랜이 공동 출판한 『K-Artists』는 주목 받는 작업을 하는 젊은 한국 작가 47명의 인터뷰를 수록한 인터뷰집으로 한국의 동시대 미술 현장의 역동성과 ‘지금, 여기’를 국제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그러나 제목의 ‘K’에 있는 취소선이 상징하듯 이 책은 K-신드롬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다. 국가 주도의 민족주의적 ‘K’에 대한 홍보는 시대착오적이지 않은가? ‘K’는 단지 자본주의적 전략이 아닐까? 국적을 기반으로 한 집단적 분류나 일반화는 오히려 개별 아티스트의 개성과 특성을 한계 짓는 일이 아닐까?

『K-Artists』는 ‘K’에 취소선을 긋고, 한국 문화예술에 대한 국제적 관심에 집단적 나르시시즘을 느끼기보다 K-신드롬이라 불리는 현상에 대해 비평적 성찰을 해야 할 시점임을 역설한다. 신조어 ‘K’가 지닌 양가성을 조명하고, 이를 부정하는 동시에 수용하며 용어의 쓰임을 확장함으로써, 책에 수록된 작가들이 한국 국적이나 한국인으로서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지만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구획을 넘어섬을 드러낸다.

개별 작가의 예술적 실천을 인터뷰를 통해 작가의 스스로의 목소리로 소개하고, 국적이 미치는 영향에 관해 인식론적 질문을 던지며 고찰하고, 더 나아가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 작가의 작업을 받아들일 때 국적이 미치는 상호적 영향에 대한 담론의 장을 연다.

출판과 더불어 지난 6월 30일 베를린에서는 47명의 작가들 중 7명과 서문을 쓴 큐레이터 김현진을 초대해 ‘K’에 대해 토론하는 토크가 개최되었다. 토크에서는 한국 국적으로 작가를 규정짓는 외부적 시각에 대한 생각, 시대에 따른 한국 문화예술에 대한 국제적 인식 및 내부적 시각의 변화, 한국의 동시대 미술 현장의 진화, 한인 디아스포라 등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아카이브북스가 위치한 베를린의 비영리 예술공간 사비 컨템포러리.

6월 30일에 베를린 아카이브북스에서 열린 『K-Artists』의 북런칭 토크&스크리닝.
스스로를 ‘K’라는 라벨 혹은 특정 집단에 속함을 수용하든 부정하든 한 개인이 집단적 사상과 사고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고 독립적일 수는 없다. 그렇기에 오히려 그 집단을 단순히 선전하거나 부정하는데 그치기보다 특정 집단에 대한 정의와 그 영향에 대해 고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제 특정 집단은 같은 피부색이나 같은 국적, 혹은 한민족이 단일민족이란 환상을 기반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집단은 균질하지 않고 다층위적이라는 것을 밝히고, 집단에 대한 개인 및 사회의 인식이 어떤 결과를 만드는지 논의하는 게 필요하다.

실제로 한국은 국제결혼과 이민 및 이주 등으로 다문화가정이 증가하고 사회가 다양화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가까운 미술 현장의 사례를 보아도 모든 지원 정책과 국립, 시립기관의 채용 등은 한국 국적자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국적이 아니라 유사한 정체성과 신념, 가치관, 문화 등을 공유하는 이들을 함께 포용하며 ‘K’의 범위를 확장하는 사고를 시작할 때, ‘K’에 관심을 갖는 전 세계인을 문화예술 상품 소비자가 아닌 공유자, 향유자로 아우를 때, 우리는 더욱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즐기며 지속할 수 있는 진정한 ‘K-신드롬’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