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국 기업 옹호하는 대만, 옥죄는 한국 규제 당국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독점은 악이고, 반독점은 선인가? 자본주의의 역사는 이 같은 질문에 항상 같은 대답을 내놨다. ‘Yes’다. 애덤 스미스가 설파한 이론에서 자유로운 시장 경제를 지탱하는 대들보는 ‘도덕적으로 옳은 가격’이다. 시장이 가격 결정에 모든 참여자의 의사를 반영해 최대 공동선을 달성한다는 믿음이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기초다.

이 같은 관점에서 독점은 시장 경제의 적이다. 소수의 기업이 가격 결정 구조를 왜곡함으로써 소비자 후생과 경제 전체 해악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프리드리히 하이예크, 밀턴 프리드만 등 시장 중시론자조차 독점을 막기 위한 국가의 개입만큼은 예외를 인정했다.

연전연패, 리나 칸의 무리수

‘아마존 저격수’로 불리는 리나 칸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의 잇따른 실패는 이처럼 당연시됐던 독점에 관한 명제에 의문을 던진다. 2021년 6월 취임 이후 리나 칸의 FTC는 플랫폼 독점 종식 법안 등 6개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이 중 기업결합 신고 수수료를 인상하는 ‘신고비용 현대화 법안’만 통과되고 나머지는 모두 폐기됐다.

폐기된 법안엔 요즘 국내에서도 논란인 것들이 대부분 포함돼 있다. 예컨데 네이버, 카카오, 쿠팡, G마켓 등의 이커머스 플랫폼이 입점 상인들의 판매 정보를 활용해 자사 상품을 우대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미국 혁신 및 선택 온라인 법안)조차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법원도 칸의 행보에 제동을 걸었다. 11일 미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연방 법원은 MS가 블리자드를 687억 달러(약 89조원)에 인수하려는 계약을 중단하게 해달라는 FTC의 가처분 소송을 기각했다. 13일에는 항소심 완료까지 양사 합병을 미뤄달라는 FTC 요청도 묵살했다. 칸의 빅테크 규제가 용두사미로 끝나 가는 배경엔 미·중 갈등 격화가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알리바바, 틱톡 등 중국의 빅테크를 견제하기 위한 전랴적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중국의 ‘소프트 침공’에 직면해 있는 대만 공정거래위원회의 입장은 이와 관련해 훨씬 직설적이다.

지난해 12월 <디지털 경제시대 경쟁정책 백서>를 발간하면서 ‘각국이 빅테크 기업에 대한 법집행 강도를 높임(사후 통제)과 동시에 사전통제가 필요하다는 압박에 직면하고 있으나, 기존 경쟁법 이외에 다른 기준과 수단이 필요한 지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적시했다.

독과점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논리의 위험성

독점을 글로벌 경쟁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지만, 보다 중요한 건 독점에 대한 선악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의 독점 기업(Morden Monopoly)으로 불리는 거대 플랫폼은 끊임없이 소비자 편익을 증진시키는 것에서 그들의 존재 이유를 찾는다. 미국 이커머스 시장에서 아마존의 시장 점유율이 50%를 넘었음에도 이를 독점으로 재단하지 않는 이유다. 최근 타임즈는 남들이 보지 못한 영역에서 가치를 발견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함으로써 그 결과물로서 얻은 독점을 사전 통제해야한다는 발상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독점을 미연에 방지한다는 논리로 M&A 등을 통한 혁신 성장을 좌절시키면 오히려 기존 기술의 가격을 인상할 수 밖에 없는 빌미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아마존의 역설’이란 개념으로 FTC 위원장에 오른 리나 칸이 반독점 당국의 독점적 횡포라는 비난을 받는 현상은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