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화가] 포스터 한장으로 인생 뒤바뀐 무하
입력
수정
지면A2
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1895년 1월 1일, 프랑스 파리 광고탑에 붙은 연극 ‘지스몬다’ 포스터. 정식 계약자가 아닌 ‘대타 작가’가 그린 이 광고는 공개되자마자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그림을 그린 작가는 현대 일러스트레이터의 시조로 불리는 알폰스 무하. 당대 최고의 배우 사라 베르나르는 지스몬다 작업 이후 무하에게 포스터, 무대 제작을 일임하며 6년이라는 초대형 계약을 맺었다. 무명의 신인 작가는 파리 최고의 상업화가로 거듭났다.
1900년대 프랑스 대중에게 무하는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그림을 넘어 조각과 무대 의상 디자인에도 손을 뻗었다. 특히 무하가 디자인한 옷을 무대 밖에서도 입고 싶어 하는 배우들이 생기며 당시 파리 패션 유행을 선도했다. 의상 디자인 주문이 쏟아지자 지친 무하가 자신의 노하우를 담은 책인 <공식 자료집>을 출판하며 “제발 내 디자인을 베껴달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 무하의 디자인은 파리를 넘어 세계에까지 알려지는 ‘역효과’를 초래했다.무하는 40대가 되기 전에 유럽을 넘어 미국에서도 일러스트레이터와 디자이너로 명성을 떨쳤다. 말년에는 상업예술을 그만두고 민족 예술가로 활동했고, 그 분야에서도 큰 성공을 거뒀다. 1939년 나치 정권에서 고문을 받고 사망했다.
무하의 원작 30점과 미디어아트가 오는 22일부터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통해 한국 관객을 찾는다. 전시는 10월 30일까지.
최지희 기자 mymasak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