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친 데 덮친 엘니뇨, 사상 최악 피해 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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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니뇨가 올해 세계 경제를 위협하는 변수로 떠올랐다. 가뭄, 폭염, 홍수를 포함한 수많은 자연재해가 식량 생산을 위태롭게 하고 가격 인상을 유발하고 있다. 기후학자와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엘니뇨 현상으로 인해 세계 경제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으로 예측한다[한경ESG] ESG Now엘니뇨(El Niño)가 올해 세계경제를 위협하는 핵심 변수로 떠올랐다. 엘니뇨는 적도 지역 태평양 동쪽의 해수면 온도가 장기 평균보다 0.5℃ 이상 높아지는 현상이다. 해수면 온도가 올라가면 동쪽에서 부는 무역풍이 약해지면서 대류현상이 일어나지 못하고, 태평양 중부와 동부에 대류가 몰려 온도가 다시 상승한다. 이는 대기 상층의 제트기류 흐름에 영향을 미쳐 예년과 다른 이상기후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엘니뇨가 나타나면 세계 곳곳에서 가뭄, 폭염, 홍수 등 자연재해가 일어난다.기상학자들은 올해 엘니뇨 때문에 인류가 역사상 가장 큰 경제적 대가를 치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엘니뇨로 주요 경작지에 이상기후가 닥치면 식량자원 생산량이 줄어 가격이 뛸 수 있다. 파나마운하 등 물동량이 제한돼 물류 대란이 일어나고, 전력난으로 제조업 기지 가동이 중단될 수 있다.
기후학자와 경제학자들은 이번 엘니뇨가 세계경제에 최악의 영향을 미칠 거라고 평가한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의 바르가비 사크티벨 이코노미스트는 “세계가 여전히 고(高)물가와 경기침체 위험에 노출된 ‘문제의 시기’에 하필 엘니뇨까지 등장했다”며 “엘니뇨는 공급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 효과도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엘니뇨로 식량자원 가격이 급등해 물가가 다시 오르면, 각국 중앙은행의 정책 궤도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전망도 나온다.최악의 시기에 찾아온 엘니뇨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브라질, 호주, 인도 등 엘니뇨 영향권에 드는 나라의 경제 충격이 클 것으로 내다봤다. 엘니뇨 때문에 인도·아르헨티나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최대 0.5%p, 호주· 페루·필리핀은 0.3%p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 다트머스대 연구진이 5월 ‘사이언스’에 게재한 연구에 따르면, 엘니뇨는 세계경제에 중장기적 악영향을 미친다. 다트머스대 연구진은 1982~1983년 엘니뇨가 세계 국내총생산(GDP)을 4조1000억달러, 1997~1998년 엘니뇨가 5조7000억 달러 줄였다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이번 세기에 엘니뇨 때문에 세계 GDP가 누적 84조 달러(약 10경원), 비율로는 1%가량 손실이 날 것으로 예측했다.
6월부터 세계 곳곳에서는 유례없는 더위가 보고됐다. 미국과 유럽, 중국 등에서는 낮 최고기온이 상승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멕시코, 에콰도르 등 중남미 지역은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엘니뇨로 가뭄이 들어 작황이 부진할 것이란 우려가 반영되면서 식량자원 가격은 상승세다. 대표적 예가 로부스타 원두(커피콩)다. 로부스타 원두 선물가격은 6월 말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톤당 2930달러에 거래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로부스타 주요 산지인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브라질은 엘니뇨가 발생하면 가뭄이 들 확률이 높은 지역이다.코코아 선물가격은 올 상반기에만 32%가량 뛰었다. 영국 런던 ICE 선물거래소에서 코코아 선물가격은 지난 6월 46년 만에 최고가 기록을 세웠고, 이어 7월에는 미국 뉴욕 ICE 선물거래소에서도 22년 만에 최고가를 경신했다. 분석가들은 엘니뇨 때문에 코코아 주요 산지인 코트디부아르를 비롯해 가나, 나이지리아, 카메룬 등 아프리카 서부 지역의 기후가 앞으로 몇 달 동안 평년보다 건조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설탕 재료인 원당 선물가격도 상승했다.
식품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치는 밀과 옥수수 가격에도 엘니뇨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미국 곡창지대의 가뭄이 심해 작황이 부진해서다. 호주 농무부는 엘니뇨로 강우량이 줄면서 밀 생산량이 최대 기록 대비 34%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호주의 주요 겨울 작물인 밀은 4월에 파종해 11월에 수확하는데, 7월부터 호주가 엘니뇨 영향권에 들기 때문이다.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주식인 쌀 작황은 엘니뇨로 날씨가 덥고 건조해지면 생산량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세계 1위 쌀 수출국인 인도의 경우 몬순 강우량 감소 우려가 있다. 라면, 과자 등 식품부터 비누 등 생활용품에까지 다양하게 쓰이는 팜유 가격이 하반기에 강세를 보일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다른 식물성기름인 콩기름, 유채씨(카놀라)유의 주요 재료 작황이 엘니뇨로 좋지 않을 수 있어 대체재인 팜유 가격 상승을 자극할 수 있어서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에 따르면, 과거 엘니뇨가 발생한 동안 평균적으로 비(非)에너지 원자재 가격 상승 폭은 3.9%p 확대됐다.공급망 병목 재현되나
‘세계의 공장’ 중국에 무더위가 닥치면서 세계 공급망 교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뭄으로 수력 발전량이 감소하면서 중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산업 활동이 위축되고 있다. 세계 기업들이 중국을 대체할 생산지로 주목하는 베트남도 마찬가지다. 석탄 부족, 가뭄에 따른 저수지 고갈, 노후한 발전소 고장 등으로 사상 최악의 전력난을 겪고 있어서다.
파나마운하도 변수다. 태평양과 카리브해를 연결하며 세계 교역량의 5%가량을 처리하는 파나마운하의 가뭄이 엘니뇨로 더 심해질 가능성이 커서다. 파나마운하는 인근 가툰 호수로부터 물을 끌어와 선박 이동에 쓰는데, 가뭄으로 호수 수량이 줄자 운하 측은 2월부터 흘수를 낮추는 제한을 실시하고 있다. 흘수가 낮아지면 배가 덜 가라앉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컨테이너 수 자체 또는 컨테이너당 적재량을 줄여야 한다. 파나마운하는 물 부족이 더 심각해지면 하루에 통과하는 선박 수를 줄일 예정이다. 모두 해상 운임 상승을 일으킬 수 있다.
조나단 오스트리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는 “2021년 물류 대란으로 운송비가 6배 이상 급증하면서 2022년 미국 물가상승률에 2%포인트가량의 상승효과를 미쳤다”며 “물류비용 증가는 12~18개월 후 경제에 본격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번 가뭄이 미국 중앙은행(Fed)의 목표인 2%의 물가상승률 도달을 방해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운송비가 20% 늘어나면 1년 후 물가상승률이 0.15%p 상승한다고 봤다.주요 산업용 금속인 구리 등 공급 차질도 우려된다. 블룸버그는 주요 구리 생산국인 칠레의 경우 엘니뇨에 따른 폭우로 구리 광산의 조업이 원활하지 않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고운 한국경제 기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