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아더가 전쟁터에 갖고 다닌 시 [고두현의 아침 시편]

청춘
새뮤얼 울만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밋빛 볼, 붉은 입술, 부드러운 무릎이 아니라
풍부한 상상력과 왕성한 감수성과 의지력
그리고 인생의 깊은 샘에서 솟아나는 신선함을 뜻하나니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뿌리치는 모험심,
그 탁월한 정신력을 뜻하나니
때로는 스무 살 청년보다 예순 살 노인이 더 청춘일 수 있네.
누구나 세월만으로 늙어가지 않고
이상을 잃어버릴 때 늙어가나니

세월은 피부의 주름을 늘리지만
열정을 가진 마음을 시들게 하진 못하지.
근심과 두려움, 자신감을 잃는 것이
우리 기백을 죽이고 마음을 시들게 하네.

그대가 젊어 있는 한
예순이건 열여섯이건 가슴 속에는
경이로움을 향한 동경과 아이처럼 왕성한 탐구심과
인생에서 기쁨을 얻고자 하는 열망이 있는 법.그대와 나의 가슴 속에는 이심전심의 안테나가 있어
사람들과 신으로부터 아름다움과 희망,
기쁨, 용기, 힘의 영감을 받는 한
언제까지나 청춘일 수 있네.

영감이 끊기고
정신이 냉소의 눈에 덮이고
비탄의 얼음에 갇힐 때
그대는 스무 살이라도 늙은이가 되네.
그러나 머리를 높이 들고 희망의 물결을 붙잡는 한,
그대는 여든 살이어도 늘 푸른 청춘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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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시인 새뮤얼 울만(1840~1924)이 78세 때 쓴 시입니다. 이 작품은 그가 죽고 난 뒤에야 빛을 보았습니다. 그것도 의외의 인물 덕분이었죠.

태평양 전쟁이 끝나갈 무렵, 종군기자 프레더릭 팔머는 필리핀에 주둔 중인 미국 극동군 총사령관 맥아더를 방문했습니다. 그때 그가 주목한 것이 책상 위의 액자에 들어있던 ‘Youth(청춘)’라는 시였죠. 수년 전 선물 받았다는 이 시를 맥아더는 매일 암송할 만큼 좋아했습니다.

시는 기자의 손을 거쳐 ‘리더스 다이제스트’ 1945년 12월 호에 ‘How to stay young(어떻게 젊게 살 것인가)’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소개됐습니다. 이후 오카다 요시오라는 사람이 이 시를 보고 감동해서 일본어로 번역해 책상에 붙여놓았지요. 이를 본 그의 친구가 신문 기사로 소개한 뒤 일본 지식인층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습니다.저는 이 시를 읽으면서 98세에 글을 배우기 시작한 한 남자를 생각했습니다. 그의 이름은 조지 도슨입니다. 미국 뉴올리언스의 가난한 흑인 집안에서 10형제의 맏이로 태어난 그는 학교 갈 시기를 놓쳐 글을 배우지 못했지요.

하지만 자기가 문맹이라는 걸 밝힐 수도 없었습니다. 간신히 얻은 일자리에서 쫓겨나지 않으려면 글을 읽을 줄 아는 척해야 했기 때문이지요. 표지판이나 노동지침 같은 건 남에게 한 번 듣고 몽땅 외웠습니다. 그에게 문맹은 ‘고통스러운 비밀’이었지만 일에 쫓겨 어쩔 수가 없었죠.

긴 세월 동안 힘이 되어준 것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가르침대로 ‘인생이란 좋은 것이고 점점 더 나아진다’는 믿음이었습니다. 그 힘으로 그는 묵묵히 자기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의 삶이라고 생각하며 ‘못 배운 설움’을 이기곤 했지요.

남북전쟁에서 북군의 승리로 흑인이 ‘해방’됐지만, 사회는 여전히 흑백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특히 백인들에게 오해받아 아무 죄도 없이 죽은 형의 기억 때문에 그는 열 살 이후 평생 백인들과는 어떤 거래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는 스물한 살 때부터 미국 전역과 캐나다, 멕시코로 오가며 부두 노동자와 공사장 인부 등 수십 개의 직업을 전전했죠. 늘그막에 고향으로 돌아와 낚시를 하며 소일하다 성인 교육과정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학교로 달려갔습니다.

이때 나이 98세. 알파벳 26자를 외우며 열심히 학교에 다니면서 ‘장례식 때문에 빠진 사흘’을 제외하고는 한 번도 지각하지 않았죠. 101살이 되던 해 그는 놀랍게도 책을 펴냈습니다. 제목은 <인생은 아름다워>였습니다. 그의 드라마틱한 인생 여정이 거기에 오롯이 담겨 있었죠.

책을 내기까지 초등학교의 백인 교사 글로브만의 도움이 컸습니다. 도슨의 인생 얘기를 책으로 출간하자는 글로브만의 간곡한 설득을 받아들인 끝에 도슨은 90여 년 전의 다짐을 깨고 백인과 힘을 합쳐 책을 만들었습니다.

만년에 발견한 독서의 기쁨과 세상과의 교감으로 그가 얻은 행복은 어떤 것보다 값지고 아름다웠습니다. 각급 학교와 선도기관 등으로 강연을 다니며 좌절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힘도 3세기의 삶을 관통한 그의 경험에서 나온 것이었지요.나이나 학벌 때문에 새로운 출발을 머뭇거리는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실화입니다. 그는 ‘늦었다고 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삶의 교훈을 온몸으로 보여준 ‘청춘’의 주인공이기도 하지요.


■ 고두현 시인 : 199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 『늦게 온 소포』, 『물미해안에서 보내는 편지』, 『달의 뒷면을 보다』 등 출간. 유심작품상, 김만중문학상, 시와시학 젊은시인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