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에세이> 미술계의 에코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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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민 희 필립스옥션 코리아 대표최근 ‘에코시스템’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하나의 ‘생태계’를 의미하는데 미술계도 이와 비슷한 특성을 갖고 있다. 갤러리, 옥션, 작가, 컬렉터, 사립미술관, 국·공립 미술관이 상호작용하면서 미술작품 창작, 전시, 판매, 소비 과정에서 각자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작품을 창작하고 갤러리를 통해 작품을 전시하며 판매한다.
이런 작품들은 미술관이나 전시회를 통해 대중과 만난다. 또한 2차 시장인 경매를 통해 작품 가격이 공개적으로 결정된다. 컬렉터는 갤러리나 경매를 통해 작품을 수집하며, 그중 미술관은 가장 중요한 ‘구매력’을 갖춘 기관으로서 역할을 한다. 이처럼 미술계 발전과 건전한 성장을 위해서는 작가와 컬렉터의 유기적인 상호작용이 필요하다.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한국의 단색화’ 전시가 열린 적이 있다. 이 전시는 ‘단색화’라는 고유명을 공식적으로 표기하며, 단색화 작품을 국제적으로 알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단색화에 대한 리서치와 함께 영문 서적이 발간되고 해외 전시가 연이어 개최되면서 해외 컬렉터의 수요가 늘어났다. 해외 유명 갤러리가 한국 작가들과 전속 계약도 맺었다. 경매시장에서도 기록을 경신하는 등 작가들의 활약이 이어졌으며, 한국 현대미술 전반에 관해 해외 미술계의 관심이 매우 높아지는 계기가 됐다.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은 구겐하임미술관과 공동 기획해 국립현대미술관의 소장품을 해외에 소개하는 대규모 순회전 ‘한국실험미술 1960-70년대’를 열고 있다. 이처럼 국·공립 미술관의 역할은 한국 현대미술을 해외에 홍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오는 9월 ‘프리즈 서울’ 개최와 함께 글로벌 미술계는 서울을 더욱 주목하고 있다. 각국 컬렉터뿐만 아니라 작가들, 그리고 해외 미술계 유명 인사들이 서울을 방문할 것이다. 그러나 해외 미술계 인사들이 방문했을 때 한국 현대미술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상설전시관을 갖추지 못한 것은 매우 아쉽다.국립현대미술관은 2013년 서울관 개관 후 소장품 상설전 등을 통해 미술사적으로 중요한 20세기 한국 미술 대표작들을 선보였다.
특히 한국에 있는 서양화 작품 중 가장 이른 시기 작품인 고희동의 ‘자화상’부터 1950년대 이후 엥포르멜, 단색화, 실험미술, 민중미술, 그리고 세계에서 활동 중인 여성 설치미술가 이불의 작품까지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를 개최해왔다.
우리 근현대미술의 대표작들을 언제든 만나볼 수 있는 공간, 누구나 항상 감상할 수 있는 전시관이 있다면 해외 미술계 인사들도 한국 근현대미술을 더욱 쉽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