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한 인간에 미래 맡겨선 안돼...투표권은 똑똑한 사람에게만"[책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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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에 반대한다민주주의를 보는 학계의 시각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일군의 학자들은 민주주의를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개념으로 여긴다. 자유 평등 행복처럼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데 필수불가결한 요소란 뜻이다.
제임슨 브레넌 지음
홍권희 옮김
아라크네
400쪽│2만2000원
몇몇 학자들은 민주주의를 단지 수단으로 여긴다. 평화와 번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더 나은 도구가 있다면, 이들은 기꺼이 민주주의를 버리고 새로운 대안을 찾아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한국어로 번역된 <민주주의에 반대한다>는 후자에 속한다. 제이슨 브레넌 미국 조지타운대 석좌교수가 2016년에 낸 이 책은 학계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완전무결한 줄 알았던 민주주의에 결함이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내놓은 새로운 도구가 에피스토크라시, 즉 똑똑하고 우수한 사람들한테만 정치 참여의 기회를 줘야 한다는 '지식인에 의한 통치'이기 때문이다.
이전부터 '민주주의 2.0'을 찾으려는 시도는 여럿 있었다. 영국의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은 모두한테 한 표를 주고, 더 우수한 사람한테 투표권을 추가로 부여하는 복수투표제를 고안했다. 미국의 법철학자 알렉산더 게레로는 임의로 선발된 심사위원들이 결정을 내리는 추첨제를 제안했다.
브레넌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대표제 민주주의의 근간인 투표권 자체를 공격한다. 그의 주장대로면 유권자 자격시험에 합격한 사람들만 투표권을 받는다. 점수가 낮은 사람들은 투표권을 아예 박탈당하거나, 다른 사람보다 약한 투표권을 가지게 된다. 얼핏 봐도 논란의 여지가 많은 주장이다. 브레넌 역시 이를 알면서도 '악역'을 자처했다. 그는 "무고한 사람의 운명을 무지하고, 편파적이며, 때론 부도덕한 의사결정자의 손에 맡겨선 안 된다"고 역설한다. 브래넌의 주장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가 바라본 사회의 모습을 살펴봐야 한다. 그는 유권자를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사회의 대다수는 정치에 무관심한 '호빗', 그리고 특정 정치 팬덤에 휩쓸리는 '훌리건'이 차지한다. 합리적·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의견을 표출하는 '벌컨'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유권자가 호빗과 훌리건에 머무르는 것이 그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브레넌에 따르면 인간은 애초에 그렇게 설계됐다. 개인이 던진 한 표가 사회에 미치는 미미한 영향력을 고려할 때, 정치에 무지한 게 오히려 합리적이다. 선입견에 따라 상대방의 주장을 판단하는 인지적 편향도 유권자를 잘못된 길로 이끄는 요소다. 문제는 아무리 정치 참여를 독려해도 이런 문제가 쉽게 고쳐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브레넌에 따르면 호빗과 훌리건은 결코 벌컨이 될 수 없다. 이들의 정치 참여는 개인을 악하게 만들고, 사회를 병들게 할 뿐이다. 결국 정치는 소수의 벌컨한테 맡겨야 한다는 게 주장의 요지다.
브레넌의 주장에도 허점이 있다. '똑똑하고 유능한 유권자'의 기준을 누가 세울 것인지부터 문제다. 선거 때마다 선거구를 어떻게 정할지조차 갑론을박하는 상황에서, 유권자의 기준을 누군가가 나서 정하는 상황은 쉽게 떠올리기 어렵다.
브레넌 역시 그의 모델이 현실에서 구현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세계에서 가장 발전한 국가 대부분에서 채택한 정치체제가 민주주의란 점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완전히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진 않는다. 브레넌이 조목조목 짚어낸 민주주의의 결함이 바로 우리 사회가 헤쳐 나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안시욱 기자 siook95@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