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철의 글로벌 북 트렌드] 싼 맛에 '화학물질 범벅' 초가공식품 먹는 우리, 괜찮을까?

초가공인간

英 의사의 '셀프 생체 실험'

한 달간 필요 열량의 80%를
초가공식품으로 섭취했더니
"갑자기 열살 더 먹은 느낌"
영국 서점가에서는 음식에 관한 책이 자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다. 7월 셋째주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목록만 보더라도 10위 가운데 무려 다섯 권이 음식에 관한 책이다. 대부분 어떻게 하면 ‘맛있게’ 그리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있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 <초가공인간(Ultra-Processed People)>은 ‘우리가 먹고 있는 것이 과연 음식인가, 아니면 화학 물질인가’라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초가공식품(UPF)으로 넘쳐나는 우리 식탁에 문제를 제기하는 이 책은 과학, 의학, 경제학, 역사 등 다양한 렌즈를 통해 초가공식품의 정체와 영향력을 탐구한다.

초가공식품은 일반적으로 집에서 음식을 만들 때 추가하지 않는 유화제, 트랜스 지방, 화학 물질, 착색제, 감미료, 방부제 등이 많이 포함돼 당분과 염분, 지방 함량이 높은 식품을 의미한다.

런던 열대병 병원의 전염병 전문의이자 아동영양학 분야 전문가인 크리스 반 툴레켄 박사는 우리가 완전히 새로운 영양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분석한다. 현대인 대부분은 초가공식품이라는 새로운 화학 물질 세트를 통해 대부분의 열량을 섭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초가공식품의 역사는 생각보다 오래됐다. 1879년 화학자인 콘스탄틴 팔버그가 의료용 화합물을 생산하기 위해 실험하다가 실수로 설탕보다 300배 더 단 화학 물질 사카린을 발견했다. 1차 세계대전으로 설탕이 부족해지자 사카린은 본격적으로 식품으로 활용되기 시작했고, 이후 천연 물질에 고도의 가공 기술을 더한 합성 식품 시대가 열렸다.

식품 가공 기술이 발전을 거듭하며 이제 우리 식탁에는 진짜 음식보다 화학 물질 범벅인 초가공식품이 주를 이룬다. 대량으로 생산된 식품을 더욱 오랫동안 신선하게 보관하기 위해 탄생한 초가공식품은 비용에 민감하고 시간이 부족한 소비자에게 신의 선물처럼 여겨졌다.

식품기업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화학 물질을 연구해 음식에 첨가했고 중독성 있는 성분으로 식탁을 정복했다. 그렇게 현대인은 초가공식품에 길들여진 초가공인간이 되고 말았다.툴레켄 박사는 초가공식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초가공식품으로 하루 열량의 80%를 섭취하는 식단을 한 달간 유지하며 몸에서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관찰했다.

초가공식품 섭취량을 늘리는 실험을 시작한 지 4주가 지나면서 툴레켄 박사는 수면 부족, 속 쓰림, 불안 증세, 성욕 감퇴, 인지 기능 저하, 변비, 체중 증가 등을 경험했다. 단지 4주가 지났을 뿐인데 그는 마치 자신이 열 살이나 더 먹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비만과 당뇨를 비롯한 각종 성인병의 원인이 되고 수명까지 단축하는 초가공식품의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이유가 뭘까. 1900년 전형적인 미국 가계에서 식비는 가구 예산의 43%를 차지했는데 오늘날 가계 예산에서 식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10% 미만이다.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초가공식품은 진짜 음식을 물리치고 현대인의 식탁을 점령했고, 그러는 동안 우리 건강은 더 많은 위험에 노출됐다. 우리가 먹고 소비하는 방식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홍순철 BC에이전시 대표·북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