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살기 싫다" 대낮 칼부림…전과 3범에 소년부 송치 14건

1명 사망 3명 부상…1명은 위독한 상태
충격 빠진 시민들…헌화 물결도
'묻지마 살인' 무게
서울 신림동에서 대낮에 발생한 살인사건 소식이 알려지자 이를 추모하려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공간을 만들어 헌화하고 추모글을 붙이기 시작했다. /안정훈 기자
대낮에 서울 도심서 30대 남성이 행인들을 상대로 흉기를 휘둘러 사람이 1명이 숨지고 3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묻지마 살인’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를 하고 있다.

21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 관악경찰서는 이날 오후 2시 20분경 서울 신림동서 주변 사람들을 상대로 칼을 휘두른 조모 씨(33)를 살인 혐의로 체포했다. 조 씨는 이날 오후 2시 7분부터 약 10분간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림역 4번 출구 인근 골목에서 행인들을 상대로 흉기를 휘두르며 공격했다. 조 씨가 사용한 흉기는 20~30㎝ 길이의 칼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씨가 저지른 범행으로 20대 남성 한 명이 숨지고 세 명이 다쳤다. 피해자 가운데 한 명은 위독한 것으로 알려졌다.
21일 오후 2시7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동 인근 칼부림 사건 범인이 도주하고 있는 장면. / 사진=뉴스1
경찰은 “누군가 사람을 찌르고 도망간다”는 내용의 신고를 접수한 뒤 사고 발생 13분 후인 오후 2시 20분경 현장에 도착해 조 씨를 체포했다. 체포 당시 조 씨는 흉기를 든 채 범행 장소 주변의 한 상가 앞 계단에 앉은 채 물리적 저항은 하지 않았다. 조 씨는 경찰이 다가오자 “세상 살기 싫다”며 소리친 것으로 전해졌다.

범행 현장 인근의 한 가게서 일하는 직원 A씨는 “습격을 당한 남성과 상황을 목격한 여성이 동시에 가게로 들어오더니 문을 잠그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해당 여성은 A씨의 설명에 따라 문을 잠근 뒤 범인이 골목을 지나가자 뒤이어 골목을 빠져나갔다. 피해를 입은 남성은 119를 불러달라고 요청했다. A씨는 “피를 흘렸지만 큰 자상을 입지는 않았다”고 했다.경찰은 조 씨를 상대로 피해자들과의 관계와 범행 동기 등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체포 당시 피의자가 정상적인 의사소통을 하지 못하고 횡설수설했다”며 “정황상 ‘묻지마 살인’일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서울 신림동에서 21일 '묻지마 살인'으로 의심되는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했다. /안정훈 기자
조 씨는 과거 폭행 등 강력범죄를 저지른 전과 3범으로, 법원 소년부로 14차례 송치된 전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조 씨는 경찰 조사에서 “사는 게 어려워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단 조 씨는 마약을 투약하거나 음주를 하진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이날 오후부터 인천에 있는 조 씨의 자택과 서울 금천구에 있는 조 씨 할머니의 자택을 수색했다.사건을 접한 시민들은 충격에 빠졌다. 국내선 지난 5월 부산서 발생한 ‘정유정 살인 사건’이나 지난해 6월 대구서 발생한 변호사사무실 방화 사건 등의 묻지마살인 사건이 있었다.

2016년 5월 발생한 ‘강남역 살인 사건’에 이어 2018년 10월에는 서울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20대 남성이 김성수(당시 29세)에게 얼굴과 목을 흉기로 찔려 살해당하기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한낮에 도심의 길거리서 아무 연관 없는 다수의 행인을 상대로 직접 흉기를 휘두른 사례는 흔치 않다.

이날 경찰은 범행 현장을 청소했지만 여전히 바닥엔 검붉은 핏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신림역 인근은 서울 서남부권을 대표하는 상권으로 유흥주점이 밀집해있어 통상 주말을 앞둔 금요일 저녁엔 유동 인구가 많지만, 이날 현장엔 지나다니는 사람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일부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범행 장소 인근에 피해자를 추모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바닥에 직접 청테이프를 붙여 헌화 공간을 마련한 시민 B씨는 “너무나 끔찍한 사건이 일어났는데도 범죄 현장을 시민들이 아무렇지 않게 밟고 지나가는 것이 안타깝다”며 “이곳이 범행이 일어난 곳이라는 점을 표시하고 보존하고 돌아가신 분을 기리기 위해 공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밤 10시경 사건 현장엔 40여개의 국화가 놓여있다.

안정훈/박시온/이광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