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존재에 관한 지적 논쟁 '라스트 세션'…87세 신구 열연

'무신론' 프로이트 vs '유신론' 루이스…관객에게 질문 남기는 연극
신구, 작년 심장박동기 삽입술 받아…90분간 무대 완벽 장악
"루이스는 무신론이었다가 갑자기 신을 믿게 된 거야?", "프로이트는 인간에게 양심이 없다는 거야?"
연극 '라스트 세션'의 막이 내린 극장, 관객들이 저마다 의구심을 갖고 자리를 떠난다. 연극은 신의 존재 여부를 두고 90분간 치열한 논쟁을 펼친다.

무신론과 유신론, 그 누구도 풀지 못한 담론의 대결이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티오엠 1관에서 개막한 '라스트 세션'은 무신론자인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와 판타지 소설 '나니아 연대기' 작가이자 수많은 저서에서 기독교 변증을 펼친 유신론자인 C.S. 루이스가 논쟁을 벌인다는 설정의 2인극이다. 두 사람의 대화는 "신은 존재한다"는 루이스의 직설적인 발언으로 단번에 핵심 주제를 무대에 던져놓는다.

이후 이들의 대화는 도덕률(양심), 고통, 성욕, 자살 등에 관한 것으로 이어진다.

대사 자체에 어려운 용어들이 난무하지는 않지만, 워낙 거대하고 형이상학적인 담론들이기에 내용이 이해하기 쉬운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극의 분위기가 마냥 무겁지만은 않다.

두 사람은 팽팽한 입장 차이로 마치 래퍼들의 얌전한 '디스전'을 보는듯한 긴장감을 만들되, 서로에 대한 존중과 대화 속 유머는 잃지 않는다.

서로의 주장에 반박 근거를 내세우며 비난이 아닌 비판으로 지적 논쟁을 이어간다. 이는 관객들이 감명받는 대목 중 하나다.
프로이트와 루이스는 관객들이 저마다의 믿음 속에서 고개를 끄덕일만한 무신론과 유신론의 논리를 펼친다.

신을 믿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것이야말로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라는 루이스의 주장에, 프로이트는 유니콘이 있다는 걸 부인하면 유니콘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냐고 반박한다.

도덕규범은 인간이 만들어낸 사회적 의무라는 프로이트의 주장에 루이스는 인간이 느끼는 최초의 죄책감은 어디서 오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양심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남겨준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이라는 것이다.

대화 주제가 많다 보니 논쟁이 가열되다 말고 다음 주제로 넘어가는 부분도 있다.

고통은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 만든 것이지 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던 루이스는 프로이트가 그렇다면 자신이 앓고 있는 구강암을 자기가 일으켰냐고 되묻자 "어려운 문제"라고 대화를 끝낸다.

무신론과 유신론 각각의 명료한 근거를 찾고 싶거나, 어느 쪽이 더 타당한지 따지고 싶었다면 다소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이 연극의 진가는 막이 내린 뒤 발현된다.

지적 논쟁에 대한 갈증을 품고 극장을 찾았던 관객들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자신에게, 함께 연극을 본 이들에게 수긍되지 않았던 대목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프로이트나 루이스의 주장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그들이 쓴 저서의 요약본이라도 찾아보고자 인터넷 검색을 하기도 한다.

화려한 볼거리와 유쾌한 웃음을 보장하는 즐길 거리가 넘쳐나는 시대, '라스트 세션'은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고, 이를 충족시키려는 작품이 얼마나 큰 가치가 있는지를 보여준다.

공연은 2020년 초연과 지난해 재연에 이어 올해가 세 번째 시즌이다.

프로이트 역은 신구와 남명렬, 루이스 역은 이상윤과 카이(본명 정기열)가 맡았다.

올해 87세인 신구는 지난해 공연 기간 급성 심부전으로 심장박동기 삽입술을 받고 무대를 잠시 비우기도 했지만, 올해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는 구강암 때문에 입 안에 넣은 보철이 살을 파고들어 고통스러워하는 프로이트를 실감 나게 연기한다.

평생 신이 없다는 확신을 갖고 살아온 학자가 죽음을 앞두고, 유신론자에게 확인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신구는 프로이트의 복잡한 속내를 체화한 듯 90분간 무대를 완벽하게 장악한다. 공연은 9월 10일까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