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세기에 재즈라는 심장을 두고 간 '뉴욕의 별' 토니 베넷

토니 베넷 별세…향년 96세
1936년부터 70여년간 재즈 가수 활동
70장 이상 음반 발매…수많은 히트곡 남겨

미국 최고 권위 '그래미상' 20차례 수상
순탄하지 않았던 인생사…음악으로 극복
"토니는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세계에서 가장 품격 있는 예술가였다. 나는 그를 열렬히 사랑했다."
-영국 팝스타 엘튼 존
"그는 진정한 천재이자 진정한 신사, 진정한 나의 친구였다. 아주 오랫동안 그를 그리워할 것이다."
-전 미국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


"토니 베넷은 완벽한 예술가였다. 그의 음악은 온전히 우리의 삶에 스며들어 있다."
-거장 영화감독 마틴 스콜세지
‘아이 레프트 마이 하트 인 샌프란시스코’ 등을 부른 미국 재즈 거장 토니 베넷(Tony Bennett)이 지난 21일(현지 시각) 별세했다. 향년 96세. 베넷의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는 2016년부터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고 투병 생활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 퀸스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1936년부터 70여년간 재즈 가수로 활동하면서 미국 음악계에 돌풍을 일으킨 인물이다. 글로벌 음반사 컬럼비아레코드와 계약하면서 본격적으로 음악 활동을 시작한 그는 '비코즈 오브 유', '콜드 콜드 하트', '랙스 투 리치스'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면서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1963년 ‘아이 레프트 마이 하트 인 샌프란시스코’로 ‘올해의 레코드상’을 받은 그는 미국 음반 업계 최고로 권위 있는 상인 그래미상을 20차례 거머쥔 가수로 기록돼 있다. 2001년에는 그래미상 평생 공로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가 지금까지 발표한 음반은 무려 70장 이상으로, 공식적으로는 그가 이룬 음반 판매고만 6000만 장이 넘는다.



그는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비틀스의 엘튼 존·폴 매카트니, 윌리 넬슨, 존 메이어, 어리사 프랭클린 등 당대 최고 가수들과 협업하면서 음악에 대한 식지 않는 열정을 보여줬다. 2014년에는 세계적인 팝스타 레이디 가가와 앨범을 낸 뒤 콘서트 투어까지 함께하면서 화제를 모았다. 2021년 레이디 가가와 한 번 더 호흡을 맞춰 발매한 음반 '러브 포 세일'은 베넷의 마지막 앨범으로 남았다.
겉으로 보기엔 누구보다 화려했지만, 한 인간으로서 그의 인생은 순탄한 편이 아니었다. 이탈리아계 이민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10살 때 아버지를 여의면서 극심한 생활고를 겪어야 했다. 재봉사로 일하며 세 자식을 돌봐야 했던 어머니를 돕고자 16살 때 학교를 중퇴한 그는 돈을 벌기 위한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고 뛰어들었다.

세탁소 직원, 웨이터 등을 전전하며 생계유지에 몰두하던 그가 자신의 재능을 돌아보게 된 건 아이러니하게도 세계 2차 세계대전 때문이었다. 1944년 육군에 징집되면서 참전하게 된 그는 악단 가수로 활약하면서 가수로서의 싹을 틔우게 된다.
일생일대의 기회는 예기치 못한 순간에 찾아왔다. 가수 펄 베일리의 요청으로 함께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한 클럽에서 공연하던 때였다. 당시 다른 연유로 클럽을 찾은 유명 코미디언 밥 호프는 베넷의 목소리에 큰 감명을 받았고, 그길로 자신의 공연 오프닝 무대에 베넷을 올리게 된다.그렇게 이름을 알린 베넷은 본격적으로 미국 음악계에 발을 들이면서 슈퍼스타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활동 중 코카인 중독, 세금 체납 등의 부정적 이슈가 터지면서 위기를 겪었으나 아들의 도움으로 재기에 성공하면서 그간 쌓은 명성을 이어올 수 있었다.



전설적인 가수로 평가받는 프랭크 시내트라는 베넷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단연코 최고의 가수다. 그는 언제나 음악으로 나를 흥분시킨다. 그에겐 음악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김수현 기자 ksoohyun@hankyung.com

▲Tony Bennett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on The Ed Sullivan Show


▲레이디 가가와 2014년 뉴욕 링컨센터에서 함께 부른 'CHEEK TO CH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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