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의 노란소포 2000여건…대만 "광둥성서 첫 발송"

시민들 호흡곤란·팔저림 호소
대통령실, 긴급 점검회의 개최
관세청 "의심나면 즉각 반송"
경찰 "독극물 의심사례 없어"

대만정부 "끝까지 추적하겠다"
보호복을 입은 소방대원이 지난 21일 전남 여수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독극물이 들어 있을지 모르는 해외 소포를 밀봉해서 처리하고 있다. 전남소방본부 제공
소포에 독극물이 든 것으로 의심된다는 신고가 전국에서 2000건 넘게 접수되면서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소포를 개봉한 일부 시민이 호흡 곤란과 팔 저림을 호소하는 등 다양한 피해가 접수되고 있다.

관세청은 신고된 소포와 비슷한 국제 우편물을 반송 조치하는 등 통관 강화에 나섰다. 소포가 중국에서 최초 발송돼 대만을 경유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가운데 관계당국은 발신지 추적에 총력을 다하고 있다.

나흘간 의심신고 2058건 접수

23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 20일부터 이날 오후 5시까지 해외에서 배송된 독극물 의심 소포와 관련한 112 신고는 전국에서 2058건 접수된 것으로 나타났다. 전날 오후 5시 1647건에서 24시간 만에 411건 늘었다. 경찰은 이 가운데 645건을 수거해 조사 중이며 1413건은 오인 신고로 확인됐다.

지역별로는 경기가 641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서울 506건, 경북 98건, 인천 98건, 전북 84건 등이었다. 신고가 계속돼 접수 건수는 늘어날 전망이다. 이날 대통령실은 외교부와 경찰청, 관세청 등 유관 기관과 상황 점검 회의를 열고 정체불명의 소포 상황 파악에 나섰다. 경찰청 관계자는 “현재까지 우편물로 인해 피해가 발생하거나 독극물로 의심되는 사례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당초 우편물의 발신지가 대만으로 알려졌지만 최초 발송지는 중국인 것으로 나타났다. 대만 부총리 격인 정원찬 행정원 부원장은 “1차 조사 결과 소포는 중국 광둥성 선전에서 경유 우편으로 대만으로 보내졌고 이후 대만 우체국을 거쳐 한국으로 발송됐다”며 “끝까지 추적 조사해 사건의 실체를 명확히 파헤칠 것”이라고 말했다.주한 대만대표부는 “조사 결과와 관련 자료를 즉각 한국 경찰 및 유관 기관에 공유했고 현재 양국 관련 부처가 긴밀히 연락을 취하며 공조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당국이 제시한 의심 소포 사진. 대만 우체국인 중화우정(CHUNGHWA POST)이 적혀 있거나 중국(CN)에서 발송돼 대만을 경유해 운송된다는 내용이 쓰여 있다. 우정사업본부 제공

관세청, 의심 소포 해외 반송 조치

20일 울산의 한 장애인복지시설에서 기체 독성 물질이 들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소포가 배달됐다는 신고가 처음 접수되면서 전국에서 비슷한 소포를 발견했다는 신고가 이어졌다. 당시 소포를 개봉한 시설 관계자 3명은 어지럼증과 호흡 곤란을 호소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이후 국방과학연구소가 정밀 분석에 나섰지만 소포에서 화학·생물·방사능 위험물질은 발견되지 않았다.울산에 도착한 소포엔 수취인 주소와 이름, 전화번호 등이 적혀 있었지만 해당 직원과 이용자는 없었다. 21일에는 서울 명동 중앙우체국에서 독극물 의심 소포가 발견돼 1700여 명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관세청은 통관을 강화하는 등 긴급 조치에 나섰다. 21일부터 국내에 신고된 미확인 국제 우편물, 특송 물품(해외 배송 택배)과 발신자 및 발송지가 같거나 비슷한 물품은 통관을 보류하고 있다. 세관 엑스레이 검사에서 내용물이 없거나 가치 없는 물품이 담긴 ‘스캠 화물’이 확인되면 통관을 보류한 뒤 즉각 반송하고 있다. 또 수상한 내용물이 들어 있는 것으로 의심되는 경우 경찰에 통보하고 있다.

경찰과 관계당국은 ‘브러싱 스캠’ 가능성을 두고 발송지를 추적하고 있다. 브러싱 스캠은 쇼핑몰이 주문하지도 않은 물건을 아무에게나 발송한 뒤 판매 실적을 부풀리는 행위를 뜻한다. 2020년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도 중국에서 온 정체 불명의 씨앗들이 배달되면서 생화학 테러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조사 결과 브러싱 스캠으로 중국 온라인 쇼핑몰들이 판매량을 늘리기 위해 무작위로 보낸 나팔꽃 양배추 장미 등의 씨앗으로 밝혀졌다. 관세청은 “본인이 주문하지 않았거나 자신과 무관한 곳에서 발송된 소포는 개봉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장강호/박상용 기자 callm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