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도 해도 너무하네요, 절망스럽다는 말밖에 나오지를 않습니다. " 장맛비가 잠시 그친 24일 오전 전남 함평군 엄다면 학야리 들녘에서 농민 박모(69) 씨는 먹구름 낀 하늘을 올려다보며 푸념했다.
엄다면 학야리 들녘은 올해 장마가 시작했던 지난달 말에 이어 또다시 여름 들녘이 흙탕물에 잠기는 피해가 났다.
당시 이 마을에서는 농경지 침수를 막으려 한밤중 수문을 점검하던 주민이 급류에 떠내려가 숨지는 사고도 있었다. 농민들은 밤새 퍼붓던 비가 그치자 논밭을 살펴보러 저마다 집을 나섰다.
하룻밤 사이 한 달 전 침수 상황으로 돌아간 농경지를 확인한 농민들은 한참을 말없이 제자리에 서서 한숨만 쉬었다.
거대한 저수지로 변한 들녘에서 물 위로 떠 오른 곤포 사일리지가 배수펌프장까지 이어지는 하천 쪽으로 떠내려가려 하자 맨몸으로 물에 뛰어든 일가족도 있었다. 젊은 아들이 구명조끼를 챙겨입고 가장 깊게 물이 차오른 논에서 곤포 사일리지를 가장자리로 밀고 나오면, 아버지는 중장비가 대기하는 논두렁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대나무 지팡이를 짚은 어머니는 허벅지까지 다리를 물에 담그고 서서 남편과 아들을 걱정스럽게 지켜봤다.
중장비를 끌고 나와 이들을 돕던 이웃 주민은 "무게가 수백㎏ 달하는 곤포 사일리지가 배수펌프장을 막아버리면 여러 사람이 피해를 본다"며 "물에 떠 있을 때 건져내려다 보니까 저 고생을 하는 것"이라고 혀를 찼다. 대형 곤포 사일리지와 한바탕 씨름하는 농민들 주변 축사에서는 흙탕물에 온몸이 젖은 소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울려 퍼졌다.